최동식(고전학자, 학교법인 인덕학원 이사)
최동식(고전학자, 학교법인 인덕학원 이사)

증삼(曾參)은 공자의 제자 중에서 나이가 가장 어리고 공자 사후에도 오래 생존함으로써 공자의 가르침을 정성껏 갈고 닦아 후세에 전한 인물이다. 공자보다 무려 46세나 아래인 제자로 그래서 그런지 공자가 평소에 노둔하다는 인물평을 한 일도 있다. 매우 끈질긴 성격과 독실한 성품을 가진 사람으로 그려져 있고 후세에 남긴 업적도 탁월하다. 그는 평소에 “남들이 한 번에 해 낼 수 있는 일을 나는 백번을 하며(人一能之 己百之), 남이 열 번에 해 내거든 나는 천 번을 한다(人十能之 己千之)”는 무서운 집념을 표현하여 길이 후세에 교훈을 남기기도 하였다.

논어에서 증삼을 일컬을 때 스승인 공자가 그를 이름으로 부를 경우 외에는 대개 높임말을 써서 “증선생께서 말씀하시되(曾子曰)”로 시작하는 문장이 많은 것을 보면 증자의 제자들이 논어 편집에 주도적인 역할을 하였을 것으로 추측되기도 한다. 전통사회에서 청소년의 필수과목으로 중요하게 여겼던 효경(孝經)에는 공자와 증자의 대화 및 증자의 가르침이 담겨 있어 이 책을 증자의 저술로 간주하기도 하며, 사서 중에 수기치인의 도를 명료하게 정리한 경서인 대학(大學)을 편집한 사람도 증자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후세 사람들이 “학문은 대학을 바탕으로 하고 실천은 효경공부로부터 시작해야 한다(學以大學爲本 行以孝經爲先)”고 말한 것을 보면 공자 사상의 중추를 이은 사람이 곧 증자임을 거듭 확인하게 된다.

오늘날엔 효(孝)를 전근대적인 낡은 유산처럼 여기는 세상이 되었다. 오죽하면 “자식이 늙은 부모를 봉양할 의무가 있는 것인가” 하는 설문에 젊은이들의 긍정적인 대답이 채 20%에도 못 미치는 형편이 되었을까? 하긴 노인 부양문제가 사회적 과제로 간주되는 추세이니 자식이 굳이 부모봉양을 위해 희생할 필요가 없어졌거니와 젊은이들의 삶이 그리 녹녹하지 않은 형편이니 자식들에게 효도를 힘주어 요구하기도 어려운 노릇이다. 다만 부모자식과 형제간의 특별한 천륜의 관계가 남남만도 못하거나 오히려 타인을 대하듯 무관심하다 못해 험악한 사이로까지 전락하는 모습들을 보게 되면 이 땅에 도의가 떨어졌음을 절감하면서 탄식을 금하지 못할 뿐이다.

증자가 나이 들어 죽음에 직면했을 때 제자들에게 말하였다. “이불을 들치고 내 손과 발을 보거라(啓予足 啓予手). 시(詩)에 이르지 않았느냐? ‘조심하고 또 조심하여戰戰兢兢,전전긍긍) 깊은 물가에 서 있는 듯, 살얼음을 밟는 듯 세상을 살아야 한다( 如臨深淵 如履薄氷,여임심연 여이박빙)’고. 이제야 내가 몸을 온전히 보존하여 불효를 면했음을 알겠구나.” 증자는 부모에게 효성이 지극했던 인물로 잘 알려져 있다. 부모가 내 몸을 온전하게 낳아주셨으니 나 또한 천수를 누린 후 내 몸을 온전히 보전한 채로 죽음을 맞을 수 있어야 비로소 효도가 완성되는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어찌 몸의 보전이 육체를 훼상하지 않는 것만을 의미하겠는가? 도덕성에 흠이 가서 명예를 잃고 법을 어겨 신체구속의 수치를 당하는 일 또한 불효의 극치가 아니겠는가. 부모가 자식에게 날마다 길조심하고 차조심하며 매사에 조심하라 이르는 심정을 우리는 나이 들어서야 그 뜻을 새삼 깨닫게 된다.

맹경자(孟敬子)는 노나라 정사를 총괄하는 위치에 있는 사람으로 평소에 사납고 신의가 없으며 말도 함부로 할 뿐만 아니라 사람이 쩨쩨해서 자질구레한 일들이나 챙기는 위인이었다. 그가 어느 날 임종을 기다리며 앓아누워있는 증자에게 문병을 왔다. 이 때 증자가 그에게 한 말이 우리를 감동시킨다. “새는 죽을 때가 되면 그 울음소리가 구슬프고(鳥之將死 其鳴也哀,조지장사 기명야애), 사람이 죽음에 직면하면 그 말이 진실한 법이오(人之將死 其言也善,인지장사 기언야선).” 사람이든 동물이든 갈 길 다하면 근본으로 돌아가지 않는가? 동물은 단지 그 생명의 다함을 슬피 여길 뿐이지만 사람은 다르다. 과거를 회고하고 자기 자신을 돌아보며 자손을 내다보아야 하니 그 입에서 나오는 말이 진실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아마도 평소에는 증자가 그에게 진솔한 말을 하기 어려웠던 것 같다. 난폭한 사람이어서 말하기가 쉽지 않았을 수도 있고 말해 보아야 먹혀들지 않을듯하여 아예 입 다물고 있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이제 생을 다하고 죽음에 임박하여 하는 말이니 부디 내 진실한 충고를 들으라는 뜻으로 이 말을 한 것 같다.

증자는 오래 전 30대 초반의 젊은 나이에 작고한 안연을 예로 들어서 충고를 이어간다. 안연은 증자보다 열 살 쯤 위였던 것으로 보인다. “안연은 유능한 인물이었지만 능력이 뒤지는 사람들에게 묻기를 꺼려하지 않았고, 지식이 넘쳤지만 무지한 사람들에게도 곧잘 물었으며, 있어도 없는 듯, 가득 찼어도 빈 듯이 처신하였을 뿐만 아니라 남의 잘못을 함부로 따지지 않았소. 군자가 되려면 어찌 해야 하겠소? 어린 나이에 즉위한 임금을 잘 보필하고 대부의 직분을 알아서 잘 수행하며 죽음을 감수할지언정 절개를 버려서는 안 되오. 선비는 도량이 넓고 의지가 굳세지 않으면 안 되니 짐은 무겁고 갈 길은 먼 법이오(任重而道遠,임중이도원).” 죽음을 앞둔 증자가 평소에 마음에 두고 있던 말을 거침없이 쏟아내었다.

맹경자에게 준 증자의 충고는 하늘이 내린 금쪽같은 보물이었을 것이다. 증자와 같은 덕망있는 선비가 죽음에 직면하여 이런 진실한 충고를 해 줄 수 있음이 어찌 천운이 아니겠는가? 맹경자가 자신을 돌아보고 개과천선을 하였는지는 잘 알 수 없지만 증자의 충고가 어찌 맹경자에게만 유효한 것이겠는가? 누군들 지나고 나서 곰곰이 자신의 과거를 생각해 보고 그 치우친 생각과 편벽된 사고방식이 초래한 숱한 과오들에 마음 아파하지 않겠는가? 훌륭한 스승을 만나고 좋은 벗들과 함께 함으로써 주옥같은 가르침을 받고 진솔한 충언을 듣는 것은 소중하기 이를데 없는 일이다. 마치 앞이 꽉 막혀버린 울창한 숲속에서 길을 헤쳐 가는듯한 험난한 삶의 여정에 더없이 다행스런 길잡이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도량이 넓지 못하면 짊어진 짐을 이겨낼 수 없으며 굳센 의지를 지니지 못하면 먼 길을 끝까지 갈 수 없는 일 아니겠는가.

증자는 죽음의 자리가 깔끔하기로도 유명하다. 임종할 때 그는 화려한 대부의 침상에 누워있었는데 그 침상은 정권을 쥔 실력자 계손이 선물로 준 것이었다. 대부도 아니면서 대부가 사용하는 침상을 써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지만 앓아누워 있으니 일어날 수가 없어 꼼작 못하고 있었는데 마침 시중들던 동자가 “침상이 참 아름답다”고 감탄하는 바람에 정신이 퍼뜩 들었던 것이다. 즉시 자식들에게 명하여 자리를 바꾸게 하고는 자리가 바뀌자마자 곧 운명하였다는 기록이 있다. 증자가 제자들에게 내 손과 발을 보라고 한 말과 맹경자를 향해 던진 진솔한 충언은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도 퍼뜩 정신을 들게 하는 날카로운 가르침이 아닐 수 없다.

누가 그랬던가? 죽음을 잊지 말라(Memento mori)고. 우리의 삶은 종착지를 향해 무거운 짐을 지고 힘겹게 그리고 조심스럽게 발자국을 옮기는 여행자의 짧지 않은 여정에 비유하여 무리가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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