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미영
황미영

우리는 돼지갈비집 앞에 줄을 선다.

우식이는 숯불갈비가 먹고 싶다고 한다. 돼지고기는 자주 먹지만 숯불로 구워 먹는 건 휴가 나올 때뿐이라고 한다.

“파스타나 햄버거 그런 거 먹고 싶지 않아?”

“그런 건 군대에서도 특식으로 나오는데 숯불고기는 진짜 절대 안 나와.”

우린 4인분을 시킨다. 나는 우식이를 위해 고기를 굽는다. 우식이는 자기가 굽겠다는 말만 하고 너무 맛있게 먹는다.

엄마는 이런 우식이를 참 좋아했었다. 우스갯소리도 잘하고 눈치도 빠르지만 먹을 때만큼은 눈치가 없는 우식이를 엄마는 참 좋아했었다.

“그래서 살은 어쩔 건데?”

웬만큼 먹었는지 먹는 속도가 느려지며 내 안부를 챙긴다. 이제야 눈치가 발동한다. 예전에는 이런 우식이가 무식해 보였는데 지금 보니 귀엽다.

“너 내가 하는 말 듣고 웃지마. 그냥 조용히 듣기만 해.”

“알았어.”

“사실을 말하자면 내 몸이 내 몸이 아니야.”

우식이가 나를 물끄러미 바라만본다. 반응이 없다.

“왜 말이 없어?”

“듣기만 하라며.”

“그래 듣기만해 내가 묻기 전까지.”

“응. 그나저나 우리 까페로 자리 옮기자.”

우식이는 자기가 돈을 내겠다며 기어이 음식 값을 낸다.

요즘은 휴가 나온 군인을 사회인이 만나주는 것만도 고맙게 생각해서 돈을 지불하는 거란다. 사회인은 군인보다 시급이 높아서 그 시간을 돈으로 지불하는 거란다.

어쩔 수 없이 이 땅에 태어나 군대라는 곳을 보내게 한 부모님이 사랑과 안타까움 그리고 미안함을 돈으로 표현한다는 우식이의 괘변이 쏟아진다.

“내가 알기로는 휴가 나온 애들은 용돈이 넉넉해서 그런다고 하던데. 할아버지 할머니 부모님 이모 삼촌 고모 작은아빠 등등 용돈 주시는 분들이 많다며?”

“그것도 그렇긴 하지. 근데 요즘은 휴가를 너무 자주 나오니까 용돈도 줄더라,”

“그리고 니네 부모님은 미국시민권까지 만들어주셨는데 니가 선택한 거잖아.”

“아니지 내 의견도 중요하지 이 땅에 살려면 절대 군대는 가야 하는 거야, 대한민국의 남자는. 우리 부모님이 내가 이 땅에 살기를 바라면서 군대를 가지말라는 것은 자기만족 이기주의지. 내가 영원한 바보 멍청이 왕따로 살게 될 거라는 건 당신들이 알 수가 없으니까. 그리고 당신들이 겪을 일이 아니니까.”

“너를 누가 이기겠니.”

우식이는 우기기 시작하면 끝을 보는 애다. 하지만 우식이는 현명하다. 우리 사회의 현실을 잘 파악한듯하다.

“한국말은 많이 늘었겠네.”

“정말 많이 늘었어. 이제 읽고 듣고 하면서 그 뜻을 즉시 다 이해할 수 있어.”

“잘됐네. 읽고 들으면서 해석이 안 돼서 고생하더니.”

“오죽하면 내가 학교를 중퇴하고 검정고시를 봤겠니. 읽기는 읽는데 뜻 파악 안 되고 듣긴 듣는데 정확한 뜻 파악이 안 되니, 하아! 사는 게 참 힘들었다.”

“이해하지, 난. 우리가 영어문장을 읽긴 읽는데 해석이 안 되는 거랑 같은 거잖아.”

“그렇지! 그런데 사람들은 그 말을 이해 못 하는 거야. 정말 답답했다.”

나는 별다방 커피가 마시고 싶다는 우식이를 갤러리아포레 1층 커피숖으로 데려간다.

“아니 휴가 나와서 별다방 커피를 마셔줘야 깔끔해지는 건데.” “이 집 커피가 정말 끝내줘, 마셔봐.”

“난 커피 맛 몰라, 그냥 평범한 인간 사회에서 커피 문화를 즐기고 싶은 거야, 몰랐냐?”

“알지, 니 문화지향적인 삶을 내가 왜 모르겠니. 그리고 미국시민권까지 버린 토종 한국인임을 자부하는 니가 미국 문화를 좋아하고 즐기려는 건 모순 아니니.””

“난 모순도 즐겨.”

“그냥 마셔봐, 날 위해서.”

“이건 또 무슨 괘변이냐. 맨날 나보고 괘변 덩어리라더니 이젠 니가 그러네.”

나는 창가 자리에 앉는다.

“커피는 내가 살게.”

“당연하지. 군인이 밥도 샀는데 커피까지 사게 하면 넌 양심불량이지. 나라를 지키는 군인 아저씨에게 밥을 얻어먹었으면 당연히 커피 대접은 해줘야 이 나라 국민이지.”

“네네, 아저씨. 아아?”

“그렇지! 얼어죽어도 아이스 아메리카노지, 그리고 달달한 케익도 알아서 사와.”

우식이는 입으로 우스개소리를 쏟아내면서도 눈빛에는 염려와 걱정이 가득해 보인다. 정말 좋은 애다. 몇 년 겪어보니 경우도 바르고 현명하다는 걸 느끼겠다.

문득 나영 이모에게 우식이를 소개해주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어울리지 않게 조용히 달달한 케익과 아이스아메리카노를 마시는 우식이가 우습다.

“우식아.”

“응.”

우식이가 나를 본다.

“나 괜찮아. 벌써 일 년이 넘었어.”

“미안하다, 난 그런 것도 모르고 니 욕을 엄청 했거든. 용서해라. 대신 니 수명은 내가 많이 키워놨어, 욕으로.”

“고맙네, 니 덕에 오래 살겠네.”

“너도 내 욕 많이 해서 수명 좀 키워줘.”

“그래.”

우린 서로 바라보며 웃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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