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국 경희대학교 명예교수/경제학 박사
 김상국 경희대학교 명예교수/경제학 박사

나는 역사를 좋아하는 편이다. 우리나라 역사를 제외하고는 실크로드, 차마고도 그리고 대항해 시대 역사를 좋아한다. 그 이유는 무슨 심각한 이유가 있어서가 아니다. 그저 재미있기 때문이다. 실크로드나 차마고도 그리고 대항해 시대를 단순히 비단이 팔려나갔던 길, 차와 말이 교환되던 길 또는 사탕수수와 커피가 운반되던 길이라고 생각하면 정말 역사는 재미없는 존재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우리는 고등학교 때 역사를 그렇게 배웠다. 그래서 가장 재미없는 공부가 역사공부였다. 그러나 나이 들어 이런저런 책을 보며 역사를 공부해 보니, “오! 이런 것이 그 안에 있었어?” 너무 재미있고, 재미있는 것이 역사였다.

차마고도를 말하기 전에 잠시 사족을 하나 부쳐 보겠다. 우리나라 역사책에는 왜 당쟁만을 가르치는지 모르겠다. 우리 역사에는 시사점이 많은 부분이 그리도 많은데 우리 역사에서 가장 치부에 가까운 당쟁이 우리 역사책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것은 이해되지 않는다. 일제의 잔재가 지금까지도 가장 많이 남아있는 학문분야가 바로 우리나라 역사학계가 아닌가 생각된다. 일제로부터 우리 역사를 처음 배운 우리나라 역사학계(진단학회)에 나는 불만이 많다.

더욱이 중국이 동북공정(東北工程) 등 말도 안되는 소리를 해도 아무런 대꾸조차 없는 것이 우리나라 역사학계다. 도대체 우리나라 역사학계는 무얼하는 단체인지 모르겠다. 그러니 대학입시에서 국사과목이 빠진다고 해도 아무 말도 못하고 있는 그들이 아닌가 싶다.

옆으로 살짝 이야기가 빗나갔지만 역사는 특히 세계사는 재미있다. 내가 그 중에서도 실크로드, 차마고도 그리고 대항해시대 역사를 좋아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그 안에 우리의 생활과 종교, 문명의 흐름 그리고 무엇보다 인간들의 황금을 추구하는 욕심이 가득 차있기 때문이다.

이번에는 그 중에서도 차마고도에 대해 말해 보고자 한다. 우리는 역사책에서 ‘차마고도는 중국의 차와 티베트지역의 말이 교환되는 길이었다. 그리고 그것을 관장하는 관서가 차마사(茶馬司)였다.’라고 배웠다. 정말로 재미없는 공부였다. 그러나 수천 년이나 지속되고 현재도 움직이고 있는 차마고도가 단순히 ‘차와 말이 교환되는 길이었을까?’ 아무리 생각해도 아닌 것 같다.

왜냐하면 차마고도가 단순히 차와 말을 교환하는 것이라면 중국과 티베트 국경 몇 개의 시장만 만들면 충분할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차마고도의 주인공인 마방은 당연히 사라졌어야 한다. 또한 차마고도의 길도 운남에서 라싸 티베트를 거쳐 인도, 파키스탄까지 가는 4,000km가 넘는 먼 길이 되어야 할 이유가 없을 것이다.

차마고도는 비단길과 대항해 시대의 바닷길과는 상당히 다른 성격의 도로다. 차마고도는 인간들의 더 많은 사치심(허영심)을 만족시키기 위해 비단이 오고가던 길도 아니고, 인간들의 더 많은 이윤 추구를 위한 바닷길도 아니였다. 어떤 의미에서 비단길과 대항해 길은 ‘탐욕의 길’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차마고도는 이런 성격의 길과는 너무 다른 ‘생명의 길, 종교의 길’이었다.

차마고도는 히말라야 오지에 있는 티베트인, 인도인, 파키스탄인들의 마을과 마을을 잇는 좁고 좁은 소롯길이다. 그것은 운남 또는 사천에서 시작하여 티베트를 지나 인도에 까지 이르는 약 4,000km에 달하는 길고 긴 실낱같은 길이다.

차마고도는 우리 외부인들이 부친 이름이고 그들이 부친이름은 조로서도(鳥路鼠道)다. 즉 너무 길이 험하고 좁아서 ‘새가 날아서 가거나 또는 쥐나 다닐 수 있는 길’이라는 뜻이다. 차와 말을 바꾸기 위해서 이런 먼 길을 갈 필요는 분명히 없을 것이다.

인간의 생명은 정말 모질다. 15만년 전에 아프리카를 떠난 인류는 앞으로 앞으로 전진하여 아시아를 거쳐 아메리카를 종단하여 남아메리카 끝까지 도달하는데 불과 4~5만년 밖에 걸리지 않았다고 한다. 마치 무슨 달리기 운동을 한 것처럼 느껴진다. 그리고 이러한 이동과정 중에 일부는 히말라야 산악지대에도 정착하였을 것이다. 정확한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식량 부족 또는 전쟁을 피해서 등등 다양할 것이다.

그러나 사람이 살기위해서는 기후가 중요하고 특히 온도와 비가 중요하다.

우리는 가끔 수목한계선(트리라인, Tree Line)이라는 말을 들었다. 그것은 나무가 자랄 수 있는 한계 높이다. 이 보다 더 높아지면 풀만 자라고, 그 보다도 더 높아지면 아무것도 없는 빈 땅 또는 만년설 지대가 된다.

그런데 히말라야 고산지대에 사는 수많은 사람들은 수목한계선을 훌쩍 넘는 초원지대 또는 그 보다 더 높아 풀도 드문드문 자라는 곳에서 살고 있다. 티베트의 평균 높이는 약 4,700미터나 된다.

그런데 그들도 사람이다. 필요한 것이 많다. 또한 그들은 야크와 조랑말을 키운다. 동물들도 먹어야 산다. 비단이나 황금, 커피, 사탕수수가 필요한 것은 아니지만 식량, 소금, 의약품 그리고 기타 생필품이 필요하다. 고산지대에서는 채소를 키울 수 없기 때문에 당연히 비타민을 제공하는 차도 필요하다.

누가 뭐라해도 차마무역에서 차는 가장 중요한 교역품 중 하나다. 그러나 차마고도는 차 이외에 소금과 식량, 약품 그리고 생필품이 운반되는 길인 것이다. 또한 이 차마고도를 통해 인도의 불교가 티베트와 중국, 한국, 몽골에 전달되는 길이기도 하였다.

우선 하나하나를 살펴보기로 하자.

첫째는 역시『차마무역』이다.

차는 중국에서는 넘쳐나는 자원이지만, 채소를 기를 수 없는 고산지대 사람에게 차는 생명과 같은 음료다. 그래서 중국인들은 차를 기호음료로 마시지만 티베트인들은 수유차로 마신다. 그것도 하루에 수십 잔을 마신다. 어찌 보면 식사와 비슷한 등급이다. 수유차는 야크 버터와 차를 섞어 마시는 따뜻하면서도 기름진 음료다. 기호식품이 아니라 열량과 비타민을 제공해주는 생명 유지수단인 것이다. 그러나 기호음료가 아니기 때문에 좋은 차재료로 만들 필요는 없다.

티베트 변방에 수출되는 차는 주로 운남 보이(普洱)현과 아안(娥安)시에서 만든다. 거친 차잎과 줄기를 이용하여 키 높이 가까이 퇴적하여 숙성한 후 꾹꾹 눌러 담는다. 마치 벽돌을 찍는 것 같다. 정말 거칠게 만든다. 품질도 물론 나쁘다. 그러나 값이 싸고 대량생산이 가능하다. 그래서 다량으로 티베트로 수출되며 그 량은 무려 년 11만톤, 600만 티베트인이 1년에 약 20kg을 소비할 수 있는 량이다. 그리고 티베트로 가는 차를 티베트 변방으로 수출하는 차라고 하여 변차(邊茶) 또는 장차(藏茶)라고 부른다. 장차라고 부르는 이유는 티베트인의 90%가 장족(藏族)이기 때문이다.

이 변차는 아안과 보이에서 생산 된 후 일차적으로 려강(麗江, 리장)에 모이고, 다시 티베트와 인도, 파키스탄까지 길고 긴 여행을 한다. 1950년대 아직 마방이 살아있을 때는 매일 려강을 출발하는 말이 수천필, 야크도 8~9천필 정도였다고 하니 그 규모가 얼마나 대단하였는지 쉽게 짐작할 수 있다. 본인도 여행을 가서 잠시 차마고도를 걸어 본적이 있었다. 돌로 덮은 길이 마치 로마의 ‘아피아’ 가도처럼 말굽에 의해 깊게 파인 자국이 선명한 것을 보았었다.

그런데 차마고도는 차의 거래량도 많았지만 거래되는 차 가격을 보면 중국의 횡포를 너무 강하게 느낄 수 있다. 앞서 말한바와 같이 중국에서 차는 넘쳐나지만 티베트에서 차는 생활필수품이다. 당시 차마사에서 차 가격을 결정하였는데 송대에는 말 한필에 차 1,800근이었다. 그러나 명대에는 상등마 한필에 차 120근으로 차 가격이 폭등하였다(明食貨誌).

중국 독점 무역의 갑질은 꽤 역사가 긴 것을 알 수 있다. 얼마 전에도 중국은 희토류 가격을 마음대로 정하였고, 때로는 수출금지로 무기화 하였다. 싸드 배치문제로 중국이 했었던 소국인(小國人) 질을 기억하면 될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 유의해야 할 일이 있다. 지금은 티베트가 중국의 변방 국가로 별 볼일 없는 나라지만 과거 티베트 왕국은 당 나라의 수도 장안(長安)을 위협할 정도로 강성한 나라였다. 그러나 나라가 힘이 없어지니 차 1,800근의 말 값이 120근으로 떨어지는 수모를 당하면서도 중국에 굴종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힘이 없을 때 당할 수 밖에 없는 티베트의 슬픔 운명이었다.

현대를 사는 우리도 명심해야 할 일이다. 우리가 강성하지 않으면 굴종이라는 처참한 결과를 가져 올 수밖에 없는 것이다.

둘째; 『교역의 길』이다.

히말라야는 우리 모두가 알듯이 높은 고산지대다. 대부분 4,000km 가 넘는 고산지대다. 일반인들은 고산병에 걸리는 높은 지역이다. 당연히 수목 한계선을 넘고 그러기 때문에 풀 이외에는 자라지 않는다. 특히 인간과 동물에게 절대적으로 필요한 소금은 구하기가 매우 어렵다. 차보다도 더 절대적으로 필요한 상품은 소금이다. 인도양에서 가져오기에도 너무 멀고, 중국 동쪽에서 가져온다는 것은 상상하기도 힘들다.

그런데 자연이란 참으로 오묘한 것이다.

아마 많은 분들이 지구는 일곱개의 판으로 이루어졌고 그 판들은 끊임없이 움직인다는 말을 들었을 것이다. 히말라야 산맥은 과거 5천만년 전쯤에는 바다였었다. 그러나 인도를 구성하는 인도판과 유라시아판이 ‘꽝’하고 크게 부딪혀서 땅이 솟아오른 것이 지금의 히말라야 알프스 산맥이다. 지각판은 보통 년 약 30mm 정도의 속도로 움직인다. 꼭 우리 손톱이 자라는 속도다. 그런데 인도판은 그 속도가 두배나 빨라 약 50mm속도로 움직인다. 속도가 두배나 빠른 인도판이 덩치가 큰 유라시아판과 크게 부딪혔으니 더 높게 튀어 오를 수밖에 없다. 그래서 히말라야 알프스 산맥은 높은 산맥이 된 것이다.

가장 쉬운 예로 히말라야 산 꼭대기에 가면 암모나이트 화석을 파는 많은 아낙네들을 볼 수 있는 것이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이다. 같은 이유에서 일부 바닷물들은 땅속으로 스며들어 짠 우물이 히말라야에 존재하게 되었다. 티베트의 염정(鹽井, 옌징)이라는 곳에서는 이 짠 우물물이 솟아나고, 사람들은 그 짠물을 말려 소금을 만든다. 도화꽃이 필 때 얻은 가장 좋은 도화염은 사람이 먹고, 빨간 진흙이 섞인 홍염은 동물들이 먹는다고 한다.

차는 없어도 힘들지만 그래도 살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소금이 없으면 사람들도 동물들도 금방 힘들어질 것이다. 차마고도의 가장 귀중한 교역품 중의 하나는 당연히 소금이 될 수밖에 없다.

                                 염정 마을의 소금밭에서 소금물을 나르는 모습
                                 염정 마을의 소금밭에서 소금물을 나르는 모습

유럽의 오스트리아를 가면 모차르트의 고향 ‘짤즈부르크’가 있다. 짤즈부르크는 ‘소금의 도시(Salt city)’라는 뜻이다. 옛날에 바다였던 알프스 산맥이 지금의 높은 산맥이 되었고, 4천만년 전의 바다는 지금도 우리에게 혜택을 주고 있다. 아마 이런 소금으로 부유해진 짤즈부르크가 모차르트 같은 위대한 음악가 탄생할 수 있는 경제적 기반을 가져왔을 것이다. 당시 짤즈부르크 주교는 유럽에서도 가장 부유한 주교였다고 한다.

셋째는 『종교의 길』이다.

원래 티베트 족은 매우 호전적인 종족이었다. 당시 수십만도 안되는 국민으로 티베트는 물론 운남과 사천 지역을 차지하였고, 당의 장안까지 위협할 정도였으니 티베트 세력이 매우 강성했음을 알 수 있다. 고려에서 원나라로 시집 간 기황후(奇皇后)가 유명한 것처럼, 당나라 공주로서 티베트로 시집 간 ‘문성공주’가 매우 유명하고 존중의 대상이기도 하다. 티베트에 불교가 언제 전래되었는지는 여러 설이 있지만, 불심이 돈독한 문성공주가 641년 티베트로 시집가면서 부처님의 실제 존상과 많은 불교서적을 가지고 간 것이 티베트에 불교가 전파된 계기였다는 설이 가장 유력하다.

조캉 사원의 부처님 상
                조캉 사원의 부처님 상

지금도 문성공주가 가지고 간 불상은 조캉사원에 있으며, 티베트 최고의 예불 대상이다. 그런데 전설에 따르면 부처님 생존에 3개의 실물 부처님 상을 만들었다고 한다. 문성공주가 모시고 간 부처님은 12세 부처님을 본 딴 존상으로 중국 개원사에서 보관하던 상이었다. 중국에서는 좌대만을 천여년 이상 모시다가 최근 조캉사의 부처님을 본 딴 부처님 상을 모셨다고 한다. 역사적 기록과 여러 사실을 살펴 볼 때 이 전설은 진실에 가까울 것으로 생각된다.

그런데 어떤 일이든 지나치면 문제가 되는 것 같다. 불교가 융성해지면서 수많은 왕족과 귀족이 승려가 되었고 또 천여개의 많은 사찰들이 새워졌다. 결국 인력의 상실과 세금 수입의 감소 그리고 지나친 불살생 계율은 티베트 왕국을 쇠약하게 하는 원인이 되었다. 우리나라도 또 다른 모든 나라들도 종교의 힘이 지나치게 강해지는 것은 경계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한다.

지금까지 차마고도가 갖는 여러 의미를 살펴보았다. 차마고도를 차와 말이 교환되는 ‘차마고도’라고만 부른다면 차마고도의 역할을 너무 축소해서 부르는 이름일 것 같다.

차마의 길, 교역의 길, 종교의 길 이 모두를 아우르는 어떤 좋은 이름이 없을까?

새로운 좋은 이름이 기다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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