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일보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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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 겨울

 

가슴에 따뜻한
추억 한 자락도 없이 나야 하는
겨울이라면 너무 추워,

바람인듯 다가왔다
구름처럼 흩어진 사랑의 여울
잔잔한 파문으로 가슴살 헤집다가
찬 바람에 얼어붙는
눈물자욱 위에 흥건히 고이어도
겨울 그렇게 가고,

나의 추억은 우울하게 숨쉬며
세상을 다- 덮는데

 

시의 창 

사계절 중에서 유독 겨울만이 야릇한 특징을 지니고 있다.

마치 서너달 동안의 시간을 모아서 다른 어느 누구도 건드리지 못하게 꽁꽁 싸매서는 어딘가에 푹 담가놓았다가 실컷 고생을 하고나면 포상으로 봄이라는 계절을 꺼내주는 것 같은 기분이다.

그래서 겨울이 가고 봄이 올 때 쯤이면 사람들은 항상 새로 살아나는 느낌과, 마침내 벼르고 벼르던 무언가를 다시 시작하는 느낌에 젖곤 한다.

그렇기에 이름하여 겨울을 벗어난다고도 하고 질곡에서 탈출한다고도 한다.

실제로 어떤 모질고 긴 마수로부터 벗어남, 놓여남, 그리고 부활함의 의미가 새봄을 맞이하는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느끼게 되는 신선한 해방감이다.

어찌 보면 겨울의 입장에서는 참으로 억울하기 짝이 없는 노릇이다.

그냥 사계절 중의 하나로 다람쥐 쳇바퀴 돌리듯 매해 오고 가는 시절인 것을, 그래서 순서상으로 올 때가 되었으니 찾아온 것이거늘 굳이 겨울만 유독 특별한 어려움이라 이름지어 마치 나쁜 계절의 대명사인 것처럼 취급당하니 말이다.

그래서 제 딴에는 억울한 화풀이라도 해보려는 심사인지 유난히도 심통을 부려 올해 겨울은 아주 많이 춥다.

다른 해에 비해서 폭설도 많이 내리고 이미 기상한파특보도 여러번 발동되게 하는 걸 보면 아마도 작심하고 몽니깨나 부리는 듯 하다.

실제로 겨울이라고 하는 계절적인 한계가 시기적으로 언제부터 시작해서 언제까지이라고 딱 꼬집어 단정지을 수는 없다.

그냥 겨울은 추운 거고 추우면 겨울이다.

추워지면 겨울이 이미 온 거고 지금도 추우면 아직 겨울은 안 간 거다.

겨울이 길면 그만큼 겨울의 날 수가 많은 거고 더불어 우리는 겨우살이를 오래 해야 한다.

그러니 자연히 겨울 나는 이야기가 길어질테고 누구든지 겨울의 추억도 아울러 많이 쌓여지게 될 거는 당연지사다.

한데, 이렇게도 긴 긴 겨울에 추억할만한 가슴 따뜻한 이야기 하나 변변히 장만하지 못한 채로 그저 멍하니 삭풍처럼 메마른 소리만 지르면서 휭하니 보내버린다면 그처럼 무미건조하고 허무맹랑한 삶이 어디 있겠는가?

물론 애틋한 추억이라고 하는 놈이 억지로 만들자 해서 만들어지는 건 아니지만 하루하루 열심히 살다보면 필경 이 겨울의 끝자락에서는 입가에 잔 미소라도 띄울 수 있는 추억거리 몇 점은 주울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로 오늘을 산다.

아랍의 속담 중에 이런 것이 있다.

‘계속되는 햇볕은 옥토를 사막으로 만든다.’

우리는 대개 해가 뜨고 맑은 날, 따뜻한 날을 좋아하고 지금처럼 추운 계절이나 눈비가 오고 흐린 날은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하지만 진정 우리의 삶을 생명력 있게 만드는 것은 계속되는 승승장구의 나날이 아니라 우리 삶의 진솔한 맛과 보람을 그립게 하는 풍파의 날, 그리고 거기 시달리면서 견뎌내는 우리의 인간적인 약함의 나날, 사랑할 수 밖에 없는 인고의 나날이다.

모쪼록 우리가 사는 동안에 만나게 되는 많은 겨울날들을 충실하게 엮음으로 해서 보다 많은 추억들을 만들어 소중하게 간직하고 아울러 그것들을 거울 삼아 우리 모두가 100점짜리 삶을 살 수 있기를 기원한다.

그러나 가만히 있는다고 저절로 그런 축복이 그냥 주어질 리는 없을테고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우리의 삶을 건강하고 기름지게 만드는 삶의 몇가지 철학을 배워 실천할 필요가 있다.

우선은 정말 좋은 것을 고를 줄 아는 안목을 우리는 길러야 한다.

본질적으로 정말 좋은 것과 눈에 좋아 보이는 것을 구별할 줄 아는 지혜가 바로 삶에 생명을 불어넣어주는 원동력이 된다.

내가 좋아하는 말 중에 ‘생명’이라는 말이 있다.

생명이 있다는 것은 단순히 심장이 뛴다는 뜻이 아니다.

생명(生命)이란, 말 그대로 어떤 명령이 살아있어야 하는 거다.

주어진 삶을 잘 살아내라는 명령이 생생하게 실천되는 걸 생명이라고 부를 수 있다.

그렇게 생생한 삶이 우리에게서 이루어지고 있을 때에 비로소 우리는 생명력 넘치는 삶을 산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우리는 살아가면서 혼자만의 독선에 사로잡혀 자신이 믿는 바라면 다른 사람들의 처지나 입장을 완전히 무시하는 경우가 다반사인데, 그것은 우리가 철저하게 배제하여야 할 우매한 처세술로 단연코 금기사항이다.

어차피 사회생활을 하는 현대인으로서 반드시 명심해야 할 것은 내가 살아가는 데에 나보다 더 중요한 역할을 하는 사람들이 바로 나를 제외한 세상의 모든 사람들인 것이다.

어떠한 일을 선택할 때에도 나만의 오류에 심취되어 형평성이나 공정성을 상실하는 실수를 해서는 안될 것이며 시기적으로도 적절한 판단과 결단이 요구되는 상황을 잘 파악할 줄 아는 오판없는 삶의 자세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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