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능창시자 박도순 고려대 명예교수 
수능창시자 박도순 고려대 명예교수 

일반적으로 학력은 학교 교육을 받은 학생들이 무엇을 얼마나 할 수 있느냐 하는 능력을 의미한다. 이 능력은 학교 교육의 결과이며, 또한 교육 목표의 성취도이다. 즉, 학력은 교실에서의 구체적인 학습 지도의 결과로서의 학습 목표보다는 포괄적․일반적 수준의 교육 목표의 성취도를 의미한다. 학력은 단순히 학업 성과를 의미하지 않는다. 오히려 학업 성과를 낳게 해주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학력을 평가한다는 것이 교육의 일반 목표로부터 구체적 학습 목표에 이르기까지의 단순한 목표의 달성 정도에 한정되어질 수는 없다. 왜냐하면 교육 목표의 달성 정도와 관련된 제 요인들(교사, 학습 환경, 교재, 수업 방법 등)을 평가하지 않고는 교육의 목표를 달성할 수 없기 때문이다. 즉, 학력 평가는 다양한 교육 목표의 달성 정도는 물론 교육의 전 과정을 통하여 교육의 질을 유지․향상시키는 데 필요한 모든 정보를 수집하지 않으면 안 된다.

따라서 올바른 학력 평가가 이루어지려면 첫째, 학교 교육 상황을 개선할 수 있는 정보를 줌으로써 교육의 질 향상에 공헌할 수 있으며, 둘째, 우리 교육에서 교육의 본질인 「전인」 양성의 타당성을 검증할 수 있게 해주어야 한다. 특히 학력 평가가 학교 교육의 질을 평가하는 주요한 잣대라고 할 때 올바른 학력 평가는 단순한 평가로서의 역할뿐만 아니라 학교 교육의 방향을 구체적으로 제시해주는 기능까지 갖고 있어야 한다. 요약하면, 학력 평가는 「전인」의 양성을 목표로 하는 교육 전반에 걸친 자료를 수집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고 그것은 곧 학력 평가에서 교육 전체 영역과 학생 개인에 대한 자료를 필수적으로 수집해야 함을 의미한다. 즉, 무엇이 학력을 변화시키고 있고 어떻게 그러한 변화가 이루어지고 있으며, 그러한 변화에 영향을 주는 제 측면이 무엇인가를 명백하게 밝혀야 한다. 따라서 지금까지의 단순한 교과목의 지적 영역 성취 평가만을 가지고는 엄밀한 의미에서 학력 평가가 제대로 이루어졌다고 볼 수 없다.

한편 시험 점수는 얼마나 믿을 수 있는지에 대해서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우리는 일상생활에서 길이를 재거나 무게를 재는 등 여러 가지 측정을 하게 되는데, 시험 점수는 학생들의 학력을 측정한 결과이다. 가령, 어떤 사람의 키가 170㎝, 몸무게는 68㎏, 지능지수는 125, 수학시험 성적은 85점이라고 하면 이러한 것들은 모두 측정값이다. 여기서 측정이란 일정한 규칙에 따라 어떤 대상이나 속성에 수치를 매기는 과정을 말한다. 측정의 결과는 어떤 현태로든지 수량화되고, 규준 자료에 비추어 해석된다.

그런데 어떠한 측정이건 측정에는 항상 오차가 있게 마련이다. 다만 측정하는 대상의 속성과 측정도구의 정확성 여부에 따라 그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이다. 일반적으로 물건의 길이와 무게를 측정하는 방법이나 도구는 잘 발달되어 측정의 오차가 비교적 적다. 그러나 이와는 달리 사람의 지능․성격․학력 등 심리적 특성은 그 실체가 외현 적으로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직접 눈으로 확인하거나 만져볼 수 없는 내면적인 특성이기 때문에 실체를 파악하기도 어렵고 따라서 측정하기가 쉽지 않으며 측정의 오차도 클 수밖에 없다.

사람을 대상으로 하는 측정에서 오차가 발생하는 것은 대체로 다음의 세 가지에 기인한다고 볼 수 있다. 첫째로, 측정도구 자체의 결함이나 부정확성 때문에 오차가 일어난다. 예컨대, 고장 난 저울로 무게를 잰다면 우리가 얻은 무게의 값에는 필연코 오차가 포함되어 있게 마련일 것이다. 학력고사나 심리검사에서 얻은 개인의 점수 속에도 오차가 포함되어 있기는, 고장 난 저울의 경우와 마찬가지이다. 검사나 고사 속의 개별적인 문항을 살펴보면, 무엇을 묻는 것인지 잘 알 수 없도록 애매모호하게 진술된 문항이나, 혹은 실력이 높은 학생과 낮은 학생을 제대로 변별해내지 못하는 불량한 문항들이 있는 것을 발견하게 되는데, 이러한 문항들이 측정의 오차를 불러일으키는 일차적인 원인이라 할 수 있다.

둘째로, 측정하는 사람의 미숙한 측정기술, 부주의, 착오 등으로 인한 오차를 생각해볼 수 있다. 길이를 잴 때에 자를 똑바로 놓고 눈금을 제대로 읽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할 경우 오차가 발생한다. 검사나 고사의 경우에는, 경험이 부족하거나 미숙한 채점자가 저지르는 채점의 실수, 채점기준이 분명치 않거나 자꾸 흔들림으로써 일어나는 채점 착오 등이 이에 해당한다. 이런 종류의 측정 오차는 모두가 측정자, 채점자, 관찰자, 기록자에게 귀속되는 오차라는 점에서 측정도구의 결함 때문에 생기는 오차와 구별된다.

셋째로, 사람을 대상으로 측정하게 될 경우, 측정 당사자의 신체적․심리적 속성 자체가 일관성을 갖지 못함으로써 생기는 측정의 오차를 들 수 있다. 가령, 어느 한 사람의 ‘기분’을 검사한다고 할 때 사람의 기분은 늘 어느 정도 변하기 때문에 아무리 정확하고 정교한 측정도구를 만들어 잰다 하더라도 잴 때마다 언제나 조금씩 다른 값이 나올 것이다. 이런 현상은 학생들의 학력을 측정하는 경우에도 예외 없이 일어난다. 동일한 학생이라도 시험 당일의 신체적․심리적 조건 여하에 따라 시험 성적이 다를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신입생 선발기준으로서 학력평가결과는 그 문제점을 심각하게 고려하여 그결과의 타당성을 재검토하고, 활용이 필수적이 될 수밖에 없다면, 선발기준으로서의비중을 적어도 현재보다는 줄이려는 노력이 필요 할 것이다.

박도순 교수 소개

초대 한국교육과정 평가원장 /  36대 한국교육학회장 / 고려대 명예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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