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정현 대기자

1965년 ‘박정희와 이케다 수상’ 국교 정상화

1984년 한국의 전두환 대통령 ‘첫 공식 방문’

2018년 ‘한일파트너십 공동선언’ 20주년 맞아

일본군 위안부등 과거사문제 양국간 최악국면

2020년 11월 15일, 문재인 대통령이 청와대 본관에서 화상회의로 열린 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RCEP) 정상회의 및 협정 서명식에 참석해 일본의 서명식을 본 후 박수치고 있다. 문 대통령 뒤 모니터에 스가 요시히데 총리가 보이고 있다. /뉴시스

서로를 적대할 수 없는 숙명

1945년 8월 15일은 한국인에게 있어서 영원히 잊을 수 없는 날이요, 민족의 새날이었다. 잃었던 독립을 다시 찾게 된 기쁨과 민족의 지축을 흔드는 만세소리는 삼천리 방방곡곡에서 힘찬 감격의 파도를 일으켰다. 그러나 해방의 기쁨도 잠시 36년간에 걸친 일본의 한국지배는 종식되었으나, 뒤이은 미소냉전의 시작으로 한반도는 분단되어 남북한에 각각 다른 정부가 수립되었다.

그러나 현대의 한일 양국은 외부적으로 미국에 의해 의도적으로 조성되어, 소련, 중국, 북한을 견제해야 하는 숙명을 타고났던지라 과거사가 있음에도 대놓고 서로를 적대시 하기는 어려울 수밖에 없었다.

대한민국 정부수립 후 이승만 정권은 경직된 대일정책을 실시하였지만, 1949년 1월 주일한국대표부가 설치되었다. 하지만 일본은 여전히 미군정하에 있었기 때문에 한국과의 직접교섭은 불가능하였다. 결국, 한일국교정상화 교섭은 1951년에 시작되어 14년이 지난 뒤인 1965년에 한일협정의 체결로 일단락되었다. 이전 1960년 9월에는 고사카(小坂善太?) 외상이 전후 최초의 공식사절로 방한하였다.

군사쿠데타 이후 당시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 박정희(朴正熙)는 한일회담을 적극적으로 추진하였다. 경제발전을 위하여 일본의 협력이 불가피하였기 때문이다. 이케다(池田勇人) 수상은 1961년 11월 11일 일본을 비공식 방문한 한국의 박정희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과 함께 한일 국교 정상화와 관련된 회담을 가졌다.

교섭의 초점이 된 것은 청구권문제였다. 결국 1962년 10월부터 11월에 걸쳐서 이케다 수상, 오히라(大平正芳) 외상과 김종필(金鍾泌) 중앙정보부장이 회담하여 청구권문제를 해결하였다. 드디어 1965년 2월 20일 시나(椎名悅三?) 외상이 방한하여 이동원(李東元) 외무부장관과 한일기본관계조약안에 가조인에 날인하였다. 당시 서명자는 대한민국외무부아주국장 연하귀(延河龜)와 일본외무성아세아국장 우시로쿠 도라오(後宮虎郞)였다.

1984년 9월 6일, 전두환 대통령은 한국 대통령으로서는 처음으로 공식적으로는 일본을 방문하였다. 전두환 대통령의 공식 일본 방문은, 1983년 1월 나카소네 총리가 전두환 대통령의 방한초청을 받아들인데 대한 화답으로 정상회담에서 나카소네 총리의 방일초청 제안을 전두환 대통령이 전격 수락함으로써 성사되었다. 황궁에서 개최된 환영만찬에서 천황은 “금세기 일시적으로 양국 간에 불행한 과거가 있었다는 것은 대단히 유감이며 다시 되풀이되어서는 안 된다.”고 말하였다.

한국과 일본의 국교가 정상화되기까지에는 광복 후 20년이 걸렸으며, 한국의 국가원수가 일본을 공식적으로 방문한 것은 국교정상화 이후 19년 후의 일이었다.

2019년 3월 8일, 서울 중구 명동거리에서 2019 영암왕인문화축제 홍보를 위한 ‘왕인박사 일본가오’ 퍼레이드가 진행되고 있다.

● 21세기 한일파트너십 ‘역사적 선언’

김대중 대한민국 대통령은 1998년 10월 7일부터 10일까지 일본을 공식 방문하여, ‘오부치 게이조’(小??三) 일본국 내각총리대신과 회담을 가졌다. 양국 정상은 1965년 국교정상화 이래 구축돼 온 양국 간의 긴밀한 우호협력관계를 더욱 높은 차원으로 발전시켜 21세기의 새로운 한일 파트너십을 구축한다는 공통의 결의를 선언했다.

또한 양국 정상은 양국 간의 관계를 정치, 안전보장, 경제 및 인적?문화교류 등 폭넓은 분야에서 균형되고 더욱 높은 차원의 협력관계로 발전시켜 나갈 필요가 있다는데 의견을 같이했다.

우리나라는 한 차원 높은 한·일 관계 구축을 위해서는 활발한 문화교류가 필수적이라는 판단아래 그동안 규제되어 왔던 일본 대중문화에 단계적으로 시장을 개방해 나가기로 하였다.

2018년 10월 문재인 대통령은 ‘한일파트너십 공동선언’ 20주년을 맞이해 역사와 영토 문제를 한·일 양국이 지혜롭게 관리하고, 사회·문화 등 여러 분야에서 미래지향적인 관계를 구축할 것을 강조한 바 있다. 당시 이 선언은 1998년 당시 일본 오부치 게이조 수상이 과거의 식민통치에 대한 통절한 사죄와 반성을 표명하고, 한국 김대중 대통령은 과거사를 직시하면서 한일 양국 간 미래지향적인 관계를 지향하기로 서로 약속한 것이었다.

그러나 한일 정상과 외교당국의 빈번한 대화와 소통과 함께 양국 국민교류 1,000만 시대에도 불구하고, 양국 간 호감도는 크게 개선되지 않았다. 특히 한반도 비핵화를 둘러싸고 한일 갈등이 커지면서 양국관계는 악화되어 왔다. 일본은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와 글로벌 대북제재를 추진해 온 반면, 한국은 한반도 비핵화의 평화적 해결을 중시하면서 한미, 한일간 소통과 대화를 모색해 왔다.

대한민국 건국 이래로 끊임없이 이어졌던 일본과의 갈등은 2018년 10월 30일 ‘신일철주금’(新日鐵住金, 현재 일본제철)과 미쓰비시중공업 등 강제동원 피해자들에 대한 대법원의 최종 승소판결에 한일관계의 최대 쟁점이 되었다. 강제징용과 근로정신대 등 강제동원 피해자 문제가 일본군 위안부, 사할린 동포, 원폭피해자 등 과거사문제와 더불어 한일관계의 최대 쟁점으로 부각된 것이다.

한국 정부는 사법적 판단은 존중하면서도 한일관계를 중요하게 여겼기에 일본에 외교적 문제와 사법적 문제를 따로 다루는 투 트랙으로 가자는 제의를 했다. 한국 정부가 삼권분립을 전제로 사법부의 판결을 존중하되, 일본기업의 자발적인 기금 참가라는 나름대로 타협가능한 대안을 제시한 것이었다. 이를 바탕으로 한일 양국이 지혜를 모으면 얼마든지 해법을 찾아낼 수 있었다.

하지만 이를 일본이 거부한 것이다. 아베 내각이 강고하게 강제동원과 관련된 한국 정부의 입장이 바뀌지 않는 한 어떤 협력도 할 수 없다는 식으로 나왔기에 상황이 어려워졌다.

1999년 국제노동기구(ILO)는 일본정부가 강제동원 피해자들에게 사죄와 보상할 것을 촉구한 바 있고, 2006년 유엔 국제법 위원회(ILC)에서 채택된 외교적 보호제도는 국가간 우호를 위해 개인 희생을 강요할 수 없다는 원칙을 재확인한 바 있다.

그럼에도 아베정권은 강제동원 피해자에 대해 사죄와 보상은커녕 일본기업을 보호한다는 명목으로 한국에 대한 경제보복을 실시했다. 2019년 7월 1일 나온 한국 수출규제에 이어 한달 뒤인 8월 2일 화이트리스트에서 한국을 배제한 것은 한국 경제의 급소를 찌른 것이었다. 일본에게 전략적 이익을 공유하는 가장 중요한 이웃나라 한국과의 양국관계, 미일동맹과 함께 한미일 안보협력으로 대중 및 대북 공조를 중시하는 전통적인 한반도 외교는 완전히 실종된 것이다.

2019년 11월 21일, 그룹 방탄소년단(BTS)이 서울 강서구 김포국제공항을 통해 팬미팅이 열리는 일본으로 출국하고 있다.

● 양국간 민간교류 ‘신뢰관계’ 초석

일본의 식민통치가 한반도에 입힌 깊은 상흔만큼 무겁게 새겨진 민족적 분노는 매년 3?1절마다, 그리고 광복절이 돌아올 때마다 되살아나 한일관계가 넘어야 할 산의 높이를 체감케 해준다. 하지만 한일갈등은 경제적 측면에서도 외교적 측면에서도, 이젠 분노만으로는 미뤄둘 수 없는 문제기도 하다.

그동안 두 나라는 1965년 국교정상화 이래 양국의 인적과 물적 교류를 빠른 속도로 증가시켜왔다. 먼저, 인적 교류는 1965년 약 2만 명에서 2018년 500배 이상 증가한 1,049만 명에 달할 정도로 크게 늘었다. 2018년 방일 한국인은 754만 명으로 사상최대를 기록했고 방한 일본인은 295만 명으로 전년대비 27% 급증했다.

또 1965년 당시 양국의 무역액은 2억 달러에 불과했지만, 2018년에는 무려 850억 달러를 기록했다. 이는 영국과 프랑스간 무역량 총액을 웃도는 것으로, 일본과 한국의 수출액은 각각 세계 4위와 6위를 기록할 정도다.

이처럼, 한일 양국은 동아시아뿐만 아니라 세계경제를 견인하는 중요한 통상과 무역파트너다. 양국의 반도체와 전자제품은 세계 최고 수준이며, 조선업과 자동차산업 등은 세계 경제의 성장과 번영에 크게 기여하고 있다. 또한 두 나라는 지금까지 식민지 가해국과 피해국 가운데 시장경제와 민주주의의 달성, 상호번영과 경제성장의 측면에서 수평적인 단계에 이른 모범사례로 꼽히고 있다.

한일관계는 ‘시시포스(Sisyphus)의 신화’에 비유된다. 시시포스가 산으로 바위를 올리지만 다시 굴러 내려오는 것처럼 한일관계도 신뢰를 쌓았다가도 다시 허물어지는 것이 반복돼왔다. 정치·경제적인 분야보다 우선적으로 요청되는 것은 두 나라 사이의 상호이해의 구축이다.

한일이 극단적으로 대립하면 일본만 피해를 보는 것이 아니라 한국도 어려워질 수 있다. 한일 양국의 시민간 교류와 상호간 신뢰관계는 양국관계를 안정시키는 가장 중요한 공동의 인프라이다. 양국 정부간 갈등에도 불구하고 시민간 대화와 소통은 반드시 유지되어야 함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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