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논의하기 위한 한·일 외교장관회담의 오는 28일 서울 개최가 성사된 가운데 청와대는 27일 신중모드를 유지하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 취임 이후 경색국면을 벗어나지 못했던 한·일 관계가 중대기로를 맞을 것으로 예상될 만큼 중요한 협상인 데다가 일본 언론을 통해 추측성 보도가 난무하면서 일본 정부의 진정성에 대한 의심이 완전히 가시지 않았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청와대는 전날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의 특사인 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 외무상과 우리측 윤병세 외교부 장관간 외교장관 회담이 전격 성사됐지만 현재까지 공식입장을 내놓지 않고 있다.

청와대 관계자는 이에 대해 "협상 결과가 나온 것도 아니기 때문에 현재로서는 언급할 것이 없다"며 "결과를 기다려봐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일 양국은 이날 오후 제12차 국장급 협의를 열어 장관회담 의제를 논의한 뒤 28일 외교장관회담에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문제 해결을 위한 담판에 나설 예정이다.

청와대의 이같은 반응은 양국간 입장차가 좁혀지지 않은 의제들이 아직 남아 있기 때문에 결과가 도출될 때까지 무엇도 예단할 수 없다는 의미로 풀이된다.

일본 언론을 통해 10억원 규모의 위안부 기금 설립이나 아베 총리의 사죄편지 등 일본 정부가 검토하고 있다는 여러 카드들이 보도되고 있는 것도 청와대의 신중모드에 영향을 준 것으로 보인다.

특히 요미우리 신문은 전날 한국 정부가 주한일본대사관 앞에 설치된 위안부 소녀상의 이전 검토를 시작했다며 우리 정부와 청와대를 자극하는 보도를 내놓았다. 청와대는 일본 언론이 쏟아내고 있는 추측보도의 진원지가 일본 정부인 것으로 판단, 내심 불쾌해 하는 분위기다.

회담을 앞두고 일본 정부가 언론에 고의적으로 이런저런 내용을 흘려 한국측의 반응을 떠보고 있다는 것이다. 청와대가 이번 협상을 앞두고 어느 때보다 신중한 자세를 취하고 있는 것도 일본 정부의 '언론플레이'에 말려들지 않겠다는 의도로 여겨진다.

이와 관련해 청와대는 이날 오후 이병기 대통령비서실장 주재로 수석비서관회의를 개최할 예정인 것으로 전해졌다. 한·일 국장급 협의에 앞서 개최되는 이날 수석비서관 회의에서는 기시다 외무상이 들고 올 것으로 예상되는 위안부 문제 해결방안에 대한 논의와 일본 언론의 추측보도들에 대한 대응 방안 등이 논의될 전망이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문제는 한·일관계 정상화의 최대 걸림돌이었던 만큼 이번 회담에서 해법이 도출될 경우 양국 관계는 전환점을 맞을 것으로 보인다. 박 대통령은 그동안 위안부 문제 해결 없이는 미래지향적 한·일관계 구축도 불가능하다는 입장을 피력해 왔다.

이같은 인식을 바탕으로 박 대통령은 지난 11월초 서울에서 열린 한·일·중 정상회의를 계기로 개최된 아베 총리와의 한·일 정상회담에서 가능한 조기에 위안부 피해자 문제를 타결하기 위한 협의를 가속화하기로 합의했다.

따라서 이번 협상에서 의미 있는 결과가 도출될 경우 박 대통령에게도 한·일·중 정상회의 복원에 이은 또 하나의 주요 외교성과로 남을 전망이다.

그러나 청와대가 신중모드를 유지하고 있는 것에서 드러나듯이 위안부 문제에 대한 두 나라의 입장 차이는 여전히 큰 상태다.

일본은 지난 1965년 한·일 청구권 협정 체결로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대한 법적 책임을 덜었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반면 우리 정부는 "위안부 문제가 한·일 청구권 협정에 포함되지 않았다"며 일본 정부에 여전히 법적 책임이 있다는 입장이다. 이를 근거로 일본 정부가 국가 책임을 명확히 인정하고 사과와 함께 배상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일본은 또 지난 11월의 한·일 정상회담 이후 열린 두 차례의 국장급 협의에서 주한 일본대사관 앞에 설치된 위안부소녀상에 대한 불편한 심기를 드러내며 이 소녀상의 철거를 협상 조건으로 내거는 태도를 보였다.

일본측 사죄문의 주체가 누가 될 것인가도 쟁점이다. 우리측은 일본 정부를 대표해 아베 총리가 사죄의 주체가 되기를 원하고 있지만 일본측에서 이를 어느 정도 수준까지 받아들일지는 미지수다.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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