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일보/고영준 기자) 내년 6월 지방선거를 앞두고 더불어민주당이 권리당원 100% 경선과 조별 경선이라는 새 공천 룰을 도입하면서, 광주·전남이 전국 정치개혁의 실험 무대로 떠오르고 있다. 직전 지방선거에서 공천 논란과 낮은 투표율 등으로 어려움을 겪은 뒤, 이번에는 ‘당원 중심 경선’과 ‘혁신 공천’을 앞세워 새 틀을 시도하겠다는 취지다. 동시에 조 편성의 공정성, 계파 갈등 재점화 가능성 등 복합적 논의도 함께 제기되고 있다.
민주당은 광역·기초단체장 예비후보가 4명 이상이면 권리당원 100% 예비경선을, 6명 이상일 경우에는 A·B조로 나눠 조별 경선을 진행하는 방안을 공식화했다. 여론조사 컷오프를 최소화하고, 당원 투표를 통해 본경선 진출자를 가리는 방식이다. 본경선은 권리당원 50%와 여론조사 50%를 반영하는 안이 유력하게 논의되고 있다.
이미 후보가 다수 거론되는 광주·전남은 조별 경선이 적용될 가능성이 높은 지역이다. 광주시장·전남지사 선거에서만 5명 안팎의 잠재 후보들이 이름을 올리고 있고, 광주 북구청장 선거는 10명 가까운 당내 주자가 움직이는 것으로 알려졌다. 광주 서구·동구, 전남 여수·목포·광양·신안·화순 등에서도 공천 도전자가 6명을 넘기는 선거구가 늘어나, 광역 2곳과 기초단체 10여 곳이 조별 경선 대상이 될 가능성이 크다는 관측이 나온다.
조별 경선은 당 입장에서 과열 경쟁 완화와 경선 효율성을 기대할 수 있는 방식으로 평가된다. 예비후보가 과도하게 몰리는 상황보다, 조 편성을 통해 경쟁을 단계적으로 압축하면 금권·조직 동원 논란을 줄이고, 토론·면접·정책 비교 등 정성 평가를 보다 체계적으로 적용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민주당 지도부가 당원 민주주의 강화와 완전한 민주적 경선, 여성·청년·장애인 기회 확대 등을 주요 원칙으로 내세우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다만 조 편성 기준의 투명성을 둘러싼 논의는 계속되고 있다. 편성 기준이 명확하지 않으면 특정 후보에게 유리하거나 불리한 구도가 형성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며, 행정구역 또는 기존 지역구(갑·을)를 기준으로 나눌 경우 특정 계파나 조직에 유불리가 발생할 가능성도 거론된다. 이 과정에서 당원과 유권자의 선택권이 좁아질 수 있다는 지적도 함께 나오고 있다.
민주당은 조별 경선과 함께 강력범죄, 성·가정·학교 폭력, 음주운전과 뺑소니, 투기성 다주택 보유 등을 예외 없는 부적격 사유로 규정한 ‘원스트라이크 아웃’ 기준도 병행한다는 계획이다. 또한 광역·기초단체장과 광역의원을 대상으로 한 현역 평가에서 하위 20%에 공천 불이익을 주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어, 광주·전남에서도 상당수 현역이 공천 경쟁에서 압박을 받을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야권 역시 광주·전남을 ‘정치개혁 경쟁의 핵심 무대’로 보고 움직이고 있다. 조국혁신당은 호남을 정치개혁의 출발점으로 삼겠다는 구상을 밝히고 있고, 국민의힘은 정당 지지율 20%대를 목표로 민생 행보를 강화하고 있다. 진보당도 기초단체장 2석, 광역의원 10석 확보를 목표로 조직을 확대하며 지역 표심 확보에 나선 상태다.
결국 관건은 제도 자체보다 운영 과정의 투명성과 책임성이다. 조별 경선은 당원 참여와 경선 경쟁 완화라는 두 목표를 동시에 추구하는 방식이 될 수 있지만, 조 편성 기준을 사전에 명확히 공개하고, 경선 과정에서 제기되는 질문과 이견에 대해 책임 있게 설명하지 못할 경우 공천 과정에 대한 불신이 반복될 수 있다는 지적도 이어진다. 민주당이 강조하는 ‘혁신’과 ‘공정’이 실제 현장에서 어떤 결과로 이어질지는 조별 경선의 설계와 집행 과정에 달려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