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가 있는 풍경

히말라야시다 / 신은숙



나무는 그늘 속에 블랙홀을 숨기고 있지

수백 겹 나이테를 걸친 히말라야시다 한 그루

육중한 그늘이 초등학교 운동장을 갉아먹고 있다

흰눈 쌓인 히말라야 갈망이라도 하듯 거대한 화살표

세월 지날수록 짙어가는 초록은 시간을 삼킨 블랙홀의 아 가리다

빨아들이는 건 순식간인지도 모르지, 그 속으로

구름다리 건너던 갈래머리 아이도 사라지고

수다 떨던 소녀들도 치마 주름 속으로 사라지고

유모차 끌던 아기엄마도 사라지고

반짝이던 날들의 만국기, 교장 선생님의 긴 훈화도 사라지고

삭은 거미줄 어스름 골목 지나올 때

아무리 걸어도 생은 막다른 골목을 벗어나지 못할 때

부싯돌 꺼내듯 히말라야시다 그 이름 나직이 불러본다

멀어도 가깝고 으스러져도 사라지지 않는 그늘이 바람 막는 병풍처럼 그 자리에 우뚝 서 있다

해마다 굵어지고 짙어지는 저 아 가리들

쿡쿡 찌르고 찌르면 외계서 온 모스부호처럼 떠돌다 가는 것들

멍든 하늘을 떠받들고 선 나무의 들숨 속으로 빨려 들어간다

삼켜지지 않는 그늘 속엔 되새떼 무리들

그림자 하나씩 물고 석양 저편으로 날아오른다

◆시 읽기◆

학교 운동장 한켠에 말없이 큰 그림자를 드리우고 서 있는 히말라야시다, 나무그늘이 숨기고

있을 것 같은 블랙홀 속으로 많은 과거가 사라졌다. 삭은 거미줄 어스름 골목 지나올 때, 아무리

걸어도 생은 막다른 골목을 벗어나지 못할 때, 부싯돌 꺼내듯 히말라야시다 그 이름 나직이 불

러본다는 시인에게 학교는 삶이 이수해야 하는 학습장소이며, 생의 진정한 완성이란 히말라야

시다의 나뭇가지에서 하늘로 날아오르는 되새 떼의 비상 같은 것일지도 모른다. 아니,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생이 히말라야시다의 나뭇가지에서 하늘로 날아오르는 되새 떼의 비상 같은 것

일지도 모른다.

유 진/ 시인, 첼리스트<선린대학 출강>

저작권자 © 서울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