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如水칼럼> 원전 가동정지를 보고 / 이상기 (본지 논설위원, 전 포스코건설부사장)

원전 가동 중단으로 올여름을 불안과 더위로 지내게 되었다. 열대야가 심할 것이라는 여름에 냉

방기를 킬까? 말까? 망설여야 된다니 습한 더위만큼이나 답답하다.

원자력을 그들만의 운동장으로 만들어 이권의 공놀이를 해온 결과라고 한다. 기술자들의 부정

이 원인이라니 참담한 심정이다. 체르노빌, 후쿠시마 원전사고들이 만든 재앙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어야할 사람들, 아니 그런 사고를 미연에 막기 위해 노력해야 할 사람들이 부정의 주축

이라니 ‘누구를 믿어야 하나’ 한탄이 절로 나온다.

사회의 발전은 여러 분야의 전문직을 만들어 왔다. 전문직은 선망의 대상이다. 그들은 특별한

지식과 권한을 바탕으로 정직하고 책임감 있게 일하는 사람들이라고 인식되고 있기 때문이다.

과학, 기술적 지식을 갖는 이들은 교육자, 관리자, 설계자, 생산자, 공무원,......등 여러 분야에서

일하고 있으며, 그들의 전문적 결정은 합리적 타당성, 즉 숫자를 근거로 이루어진다. 이런 합리

성이 신뢰의 근원이 된다. 수출입국을 이룩한 세계일류의 상품과 기술은 수많은 과학기술 인력

들의 지식과 헌신을 기반으로 이루어진 결과다. 또한 과학의 발전에 따라 그 책임이 더욱 증대

되는 분야가 엔지니어들이다.

그러나 최근의 원전 가동중단으로 부터, 가스누출사고, 삼풍백화점붕괴, 성수대교붕괴 등등, 크

고 작은 사건들의 원인은 언제나 설계 결함, 시공 불량, 정비 불량, 검수 불량,....등, 엔지니어들

의 잘못된 결정이 원인으로 제시된다. 하지만 이런 결과가 지식의 부족으로 일어난 불가항력적

사건이 아니라 일부 기술자들이 자신과 소속 집단의 이익을 위한 잘못된 선택으로 발생된 것이

라고 한다. 잊을만하면 또 다른 사고로 이어지고, 사고의 결과는 언제나 비양심적 윤리문제가

원인으로 부각되는 것이 현실이다.

엔지니어(Engineer)들은 제조설비, 건축물, 제품 등 물적 대상에 관련한 일을 수행한다. 이는 그

들의 결정이 대중의 안전에 직결되어 있다. 따라서 엔지니어링은 장래에 일어날 수 있는 사고를

미연에 방지하기위한 철저한검토가 전제되어야 한다. 이런 면에서 엔지니어들의 윤리적, 사회

적 책임감이 절대적으로 요구되는 것이다.

원자력 안전은 무조건 지켜야할 가치이다. 전기 없는 산업은 존재할 수 없고, 산업 없는 경제 또

한 존재할 수 없다. 화석 원료가 없는 우리나라의 원자력의 안전 확보는 미래 대한민국의 위치

를 결정할 수 있는 중요한 요소 중의 하나 일 수밖에 없다. 결국 이는 관련 기술자들에게 달려있

는 것이다. 원자력발전은 그들 자신의 일터이며 성장의 터전이고 국민의 생명이 걸려 있다. 그

런데 이를 걸고 이익을 챙겼다니 어이없는 일이 아닐 수 없다. 원전마피아란 말은, 그들이 이익

을 전제로 모이는 깡패 집단과 같다고 붙여진 이름일 것이다. 그러나 이들이 똘똘 뭉쳐 원전의

안전 확보를 위한 헌신적 노력을 보여 주었다면 ‘그들이 있는 한 믿을 수 있다는 말을 듣게 되었

을 테고, 전국민이 원전에 대한 우려도 내려놓을 수 있었을 것이다. 언제나 사람에 대한 불신이

관련된 모든 것을 의심하게 만들고, 결과적으로 모두가 점진적 소멸의 길을 걷게 된다.

과학기술은 목적이 아니라 수단이다. ‘양심이 없는 과학은 영혼의 파괴자’라는 말이 있듯, 인류

의 안전과 행복을 만들지 못하는 과학은 인류를 파괴할 뿐이다. 인간과 자연을 우선시하는 과학

이 선순환인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 어느 분야건 그 분야를 담당하고 있는 당사자들의 책임감이

신뢰와 선순환의 시작점이다. 물질의 시대에 살고, 물질을 다루는 엔지니어 이지만 그 물질을

다루는 정신은 윤리에 바탕을 둔, 명예와 책임의식으로 채워야 한다. ‘그 국민에 그 정??라는

말이 있다. 기술자들도 사회의 한 구성원이다. 도덕의 강물이 제대로 흐르게 하는 정화능력을

힘써 키워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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