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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종암 논설위원/문학·시사평론가

한주가 시작된 지난 월요일 오후 6시 조금 못된 시간. 지방에 거주하는 출향인인 지인에게서 전화가 왔다. "벌써 퇴근했냐?"에 "서울향우회에서 내려온 탄원서를 가지고 식당에서 서명 받고 있다."였다.

경남 K군 지방자치단체장의 선거법 위반으로 1심에서 벌금 200만원 선고로 인한 2심 판결을 앞둔 시점이다. 이게 사실이라면 전방위적으로 펼치는 '탄원서 소왕국'을 방불케 하기에 지각 있는 지역민과 출향인에게 굴욕을 안겼다.

당사자는 물론 그 끄나풀인 악어와 악어새만의 춤사위로 선량한 민초들에게 재판부의 뜻과 달리 반강제적으로 시골 들녘을 헤집고 다님도 모자라 출향인에게까지 강요한다는 게 다시금 자존심을 무너뜨리기에 충분하다.

일부 기득권 세력이 '그릇된 애향심'까지 강요하는 게 무가치한 처세임은 그들도 내심으로는 "이건 아니다"는 점을 알 것이나 추악한 탐욕 앞에서는 정신병자와 다를 바 없다. "모든 사람은 자유롭게 태어나 스스로를 다스리고 있는 만큼, 어느 누구도 어떤 구실로도 그의 동의 없이는 그를 예속시킬 수 없다."는 장 자크 루소(Jean-Jacques Rousseau)의 『사회계약론』에서 설파하는 철학과는 딴판이다.

이러한 몹쓸 행태에 원성이 자자함에도 당사자 측의 진심어린 사과는 없다. 단지 "(100만 원 이하 선고로) 잘 될 것이다." "재선거시는 혈세가 낭비 된다." 등 그릇된 검은 양심의 여론 호도로 마치 사법부가 현명하지 못하다는 뉘앙스를 구멍 난 팬티 속 방귀처럼 악취를 풍긴다.

이쯤이면 루소가 아닌 토마스 홉스(Thomas Hobbes)의 입장을 강요하는 건가? 다시 말해 "각자는 자신의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한 합리적 개인이기 때문에 각자의 이익을 최대한 보호하기 위해 부득이하게 서로 계약을 맺고 사회질서를 형성하자"는 것 말이다.

즉 "이대로 가다가는 다들 죽거나 다칠 것 같으니 이쯤에서 싸우는 것을 멈추고 계약을 맺자."면서 모든 인간(유권자)이 동의한 양 재판부에도 무언(無言)의 압력을 가하는 행태다. 이러한 선거사범에게 가해지는 사법부 양형기준(?)에 비추어 볼 때도 최저형량인 재판결과에 대하여 변명만 늘어놓을 뿐이다. 판결에 대해 지역 언론조차 기득권 세력의 감시나 논조도 없는 무법천지인 얼어붙은 땅에서는 기득권과 토호들만의 0.5% 세력이 자신들의 이득을 향해 마구잡이로 손을 뻗치고 있다.

또한 이곳 의회 의장은 보건소장을 비롯한 사무관 승진대상 공무원을 근무시간에 불러내 인사에 개입했다고 전국공무원노동조합 지부 홈페이지에서 불을 지피고 1인 시위까지 가세하자 "근무시간에 부른 것은 사실이나, 인사 개입은 사실 무근이다."고 인터넷 글 게시자를 명예훼손 등의 혐의로 고소까지 이르는 꼴불견을 연출하는 막장드라마(?)가 가관이다.

공무원까지 비리로 법정에 서는 꼴까지 더해 주인(민초)에게 충성을 다하는 개라면 애교라도 있겠다만, 이러한 개판 중의 개판에도 사정당국은 손 놓고 있을 일이 아님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경남 k군만 이럴까? 아니다. 지방자치 24년. 소위 막대기 선거판인 새누리당과 새정련 텃밭의 지방은 문제를 더 한다. 설사 재선거가 있더라도 속칭 '그놈이 그놈'인 판에는 공천만 받으면 권자에 쉽게 앉을 수 있기에 국회의원의 목에 방울을 찰랑거리며 마당쇠가 되는 꼴이다.

표가 날라 가더라도 '공익'이란 관념이 있어야 하는데도 없다. 그러면서 앵무새처럼 절간에서 염불하듯이 입으로만 '새(新)정치'나 '개혁'이란 단어를 나불거린다. 존 로크(John Locke)에게로 이어진 루소의 사상이 직접민주주의의 요구를 촉발시켰으며 근대 유럽의 시민혁명의 사상적 기초가 되었음이다.

정치권의 위대한 인물(?)들인 '갑중의 갑'들이 민주주의에 대한 깊은 통찰을 가지고자 한다면 그의 저서에서 전개한 철학과 사상을 한 번 되돌아 볼 필요가 있음에도 잿밥에만 눈이 어두운 나머지 안중에도 없다.

'甲질의 딸랑이' 노릇이 생의 덕목인 듯한 자질 없는 토호들은 그들만의 이권에 입을 대 싹쓸이한 금권으로 지역 언론까지 주무른다. 저널의 사명감이나 철학 빈곤에도 불구하고 지방지는커녕 지역지 언론인조차 깜도 안 되면서 자기들이나 아니면 속칭 '바지 사장'을 내세워 또 다른 탐욕을 부리면서 소권력화(小權力化) 한다.

방관하거나 침묵으로 자신의 배를 불린다. 작년 6월 경기 오산시장의 골프물의와 관련하여 일부 지방언론들이 진실을 호도하고 여론을 왜곡시킨다는 보도는 시장 측과 일부 지방지의 권언유착과 타락은 풀뿌리 민주주의를 위협할 정도였다. 엄청난 혈세를 받아가는 기자정신이 없는 일부 지방지나 지역지 종사자들의 오만방자한 행동에 대해 민초들의 시선은 곱지 않기에 사정당국은 일벌백계로 다스려야 한다.

루소는 자유로운 계약에 의해 사회질서가 형성되었다는 점에는 홉즈와 입장을 같이 하나 "개인적인 이익을 보호하는 차원을 넘어 '우리'라는 보다 일반적이고 큰 범위의 공동체의 이익 또는 선을 위해서 계약을 맺지 않을 수 없다."고 한 점을 되새김질 하는 게 어떨까.

필자가 홈페이지에서 조만간 편찬할 사회비평집의 제목을『18X들 똑바로 살면 안 돼』로 정했다고 하자, 지옥 갈 인간들의 일탈에 점잖은 중견 법조인조차 "X새끼들아 제대로 하면 안 돼"란 훈수조의 독설을 애교로만 받아들일 수 있는 사회로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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