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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법무죄 공인 하지만, 20대 총선 등판 가능성...글쎄

춘추시대(春秋時代) 노(魯)나라 애공(哀公) 원년에, 오왕(吳王) 부차(夫差)는 3년 전 아버지 합려(闔閭)가 월왕(越王)에게 패사(敗死)당하였던 원수를 갚다가 다리에 중상을 입었지만 월왕 구천(勾踐)과의 싸움에서 승리하였다.

노(魯)나라의 좌구명(左丘明)이 저술한 것으로 전해지는 《국어(國語)》〈오어(吳語)〉편에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실려 있다. 월(越)나라의 대부(大夫) 종(種)은 구천에게 오(吳)나라에 화약(和約)을 청하도록 했고, 구천은 이를 받아들여 대부 제계영(諸稽郢)에게 오나라로 가서 화평(和平)을 청하도록 했다. 그런데 부차가 이보다 앞서 오왕 합려를 죽게 하였음에도 월나라의 은혜를 베풀어 용서를 하면서 이렇게 말하였다. “이것은, 죽은 사람을 일으켜 백골에 살을 붙임이로다[창전대 예, 起死人而肉白骨也(예, 기사인이육백골야)]. 내 어찌 하늘의 재앙을 잊지 못하고, 감히 군왕의 은혜를 잊겠는가?”오왕 부차는 월나라에 대하여 죽은 사람을 되살려 백골에 살을 붙인 것과 같은 큰 은혜를 베풀었던 것이다.

진(秦)나라 재상 여불위(呂不韋)가 시켜 편록(編錄)한 《여씨춘추(呂氏春秋)》〈별류(別類)〉편에, “노나라 사람 공손작이 ‘나는 죽은 사람을 살릴 수 있다[魯人公孫綽曰 我可活死人也(노인공손작왈 아가활사인야)].’ 사람들이 방법을 물어보니, ‘나는 반신불수를 고칠 수 있다[人問其方 我可治半身不隨(인문기방 아가치반신불수)]. 반신불수를 고치는 약을 배로 늘리면 그것으로 죽은 사람을 살릴 것’이다[治半身不隨之藥倍增 以是起死回生矣(치반신불수지약배증 이시기사회생의)].”라고 하였다. 여기서 ‘기사회생’이라는 말이 유래되었으며, 이 말은 우리 주위에서도 자주 인용되고 있다. 저축은행에서 수 억원을 받은 혐의로 기소된 새누리당 정두언 의원이 21일 파기환송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으면서 정치 재개의 전기를 맞게 됐다.

한때 벼랑 끝까지 몰렸다가 기사회생한 뒤 숨죽였던 정 의원은 이날 무죄 확정 판결에 따라 이제는 정치적 목소리를 낼 것이 분명하다.

정 의원은 저축은행으로부터 불법 정치자금을 받은 혐의로 지난해 1월 법정 구속돼 꼬박 10개월간 구치소에 수감됐으며, 지난 6월에는 대법원의 무죄 취지 파기환송이 나오면서 최종 결론을 기다려왔다. 새누리당 소속으로 서울에서는 몇 안되는 중진(3선)인 정 의원은 제18대 국회까지 개혁적 목소리를 내며 당내 소장파의 구심점 역할을 했던 만큼 존재감을 드러낼 것이라는 관측이 많다.더군다나 지난 6·4 지방선거와 7·14 전당대회 이후 과거 친이(친 이명박)계를 포함한 비박계(非 박근혜)의 약진이 뚜렷한 흐름에서 정 의원이 활동 공간이 넓어질 개연성도 크다.정 의원은 이날 보도자료에서 “지난날 저는 너무 교만했고, 항상 제가 옳다는 생각으로 남을 비판하면서 솔직히 경멸하고 증오했다”면서 “저는 법으로는 무죄이지만 인생살이에서는 무죄가 아니라는 것을 이제는 안다”고 말했다.

정 의원은 “앞으로 국민의 입장에서 반드시 할 말은 하고 할 일은 하겠다”면서 “하지만 경멸과 증오가 아니라 사랑으로 힘들고, 어렵고, 약한 사람들의 입장에 서서 정치를 하겠다”고 밝혔다.앞서 지난 2007년 이명박 대통령 만들기에 성공해 ‘왕의 남자’로 통했던 정 의원은 이 전 대통령의 친형인 이상득 전 국회부의장의 불출마를 요구하는 ‘55인 파동’에 앞장선 후부터 정치적 입지가 급격히 줄어들며 급기야 구속되기까지 했다. 정치인 정두언은 자신의 정치에 대한 기탄없는 비판이나 향후 정치진로에 대한 자유로운 견해를 피력하기 위한 하나의 수단으로서 ‘법은 무죄지만, 인생살이는 유죄’라는 표현을 썼다. 정두언은 사법적 판결로서의 무죄를 통해 비교적 자유롭게 정치에 대한 그의 철학적 인식을 표현할 수 있었으며, 이 때문에 필자는 “그의 행위는 항상 정치적이다” 라는 말을 덧붙이고 싶다. 그런 끼닭에 그는 이명박정부 이후 패배와 몰락을 거듭했던 것이다. 패배와 몰락은 재생의 기초다. 재기불능의 지점까지 철저하게 무너진 뒤에 오는 깨우침은 “사리의 기초에 도달하는 인식”이다. 그것은 대단히 고통스러운 경험이자, 새로운 모험을 향해 갈 수 있는 출발점이기도 하다. 이번 정두원의원에 대한 사법적 무죄판결은 불법 정치자금 수수로 드러난 세간의 멸시와 오만에도 불구하고, 정두언의 정치적 재기로 확정되었다. 이러한 극한의 사태는 사실 이미 예견되었던 것이기에 충격은 그리 크지 않다. 그렇다면 이제 정두언은 몰락의 충격을 통해 새롭게 태어날 수 있을까? 정두언의원의 현재는 여의도에서 멀어진 상태다. 그러나 차기 주자로서 안목을 가다듬는 일을 소홀히 하지 않고 있다. 따라서 지난 영어의 세월이 당장은 시련이겠지만 잘만 대처하면 얼마든지 정치적 자산이 될 수도 있다고 보는 사람들이 많다.

문제는 ‘기회’다. 대중정치의 인기 경쟁에서 선두로 치고 나갈 수 있는 계기를 잡기가 쉽지 않게 돼 있는 것이다. 또 박 대통령이 그에게 기회를 줄 가능성은 없다. 재기의 발판을 스스로 만들어야 하는 것이다. 지금으로서는 2016년 총선에 나설 수 있을지도 불투명하다. 대중정치인의 레이스에 나갈 기회를 잡지 못한다면 그의 정치미래는 물거품이 될 수밖에 없다.

정두언의원은 또 친이 친박 양쪽으로부터 동시에 정체성을 의심받을 수밖에 없다는 약점이 있다. 소신이 너무 강해 융통성이 없고 돈과 조직이 없다는 한계도 뚜렷하다. 당장 여의도 정치의 한복판에 뛰어들 수 있는 처지도 아니다. 언젠가 정치권이 그를 ‘일하는 국회의원’으로 선택될 가능성이 있을까? 그런 기회가 주어진다면 그에겐 천재일우가 될 것이다.

지난 과오의 책임을 지고 2선으로 물러나 있는 정두언 의원은 스스로 자신의 존재 가치를 증명해내야 한다. 단순히 한 계파를 대표하는 인물로서가 아니라 뚜렷한 정책적 비전과 구체적인 대안들을 가지고 국민들과 마주해야 한다. 그렇게 한다면 야권 지지자뿐만 아니라 '리더'에 굶주려 있는 국민 대다수가 호응하고 환호할 것이다.

사람들의 '두려움'을 '용기'로 바꿔낼 수 있는 것은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앞장 서는 리더의 결단이다. 과연 정두언 의원이 정치적 결단을 할 수 있을까? 이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정치적 이해관계를 모두 버리고 앞장설 수 있을까? 사람들의 '두려움(혹은 절망)'을 '용기'로 바꿔낼 수 있을까?

서울중앙취재본부장 조대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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