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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여당 대표를 향한 도전적 배설, 대통령의 오더인가

면종복배, “겉으로는 복종하는 체하면서 마음속으로는 배반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구밀복검, “입 속에는 꿀을 담고 뱃속에는 칼을 지녔다는 뜻으로, 말로는 친한체하지만 속으로는 은근(慇懃)히 해칠 생각을 품고 있음”을 비유하여 이르는 말이다.

당(唐)나라 현종(玄宗: 712∼756) 후기에 이림보(李林甫)라는 재상이 있었다. 그는 태자 이하 그 유명한 무장(武將) 안록산(安祿山)까지 두려워했던 전형적인 궁중 정치가(宮中政治家)였다. 뇌물로 환관과 후궁들의 환심을 사는 한편 현종에게 아첨하여 마침내 재상이 된 그는, 당시 양귀비(楊貴妃)에게 빠져 정사(政事)를 멀리하는 현종의 유흥을 부추기며 조졍을 좌지우지했다. 만약 바른말을 하는 충신이나 자신의 권위에 위협적인 신하가 나타나면 가차없이 제거했다. 그런데 그가 정적을 제거할 때에는 먼저 상대방을 한껏 추켜 올린 다음 뒤통수를 치는 표리부동(表裏不同)한 수법을 썼기 때문에 특히 벼슬아치들은 모두 이림보를 두려워하며 이렇게 말했다."이림보는 '입으로 꿀 같은 말을 하지만 뱃속에는 무서운 칼이 들어 있다[口蜜腹劍].'"

논어의 첫 장인 '학이(學而)' 편에도 이와 비슷한 말이 등장한다. 공자의 제자인 자로가 "모든 사람이 훌륭하다고 칭송하는 사람을 어떻게 보아야 하는가"라고 묻자, 공자는 "훌륭하지 않은 사람일 가능성이 크다"고 답한다. 이어 공자는 '겉으로 표정을 꾸며 훌륭한 인품을 가장하지만 실제로는 나라를 어지럽히는 무리'를 가리켜 '향원(響原)'이라 부르며 '비슷하지만 참되지 아니한 자'라 규정한다. 이에 대해 공자를 계승한 맹자 역시 "그들의 비행은 들추어내기 어렵고 그들의 결점을 공격하기도 어렵다. 그들은 시세에 동조하고 더러운 속세에 잘 맞추어 산다"고 말하며 이들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을 여과없이 드러낸다. 이 말은 역신(逆臣)보다 간신(奸臣)이 더 무섭다는 인식을 반영한다. 표정에 감정이 드러나고 호불호가 그대로 나타나는 얼굴을 한 사람은 의도가 쉽게 드러나 두렵지 않으나, 오히려 은근히 설득하거나 은밀하게 호의를 가장하여 접근하는 사람은 그만큼 힘들다는 인식의 반영이다.

그렇다면 요즘들어 이 구밀복검의 냄새가 가장 진하게 풍기는 곳은 어디일까. 그것은 바로 정치권이다. 건강하고 정의로운 대다수 정치인에게는 미안한 말이지만, 요즘 우리나라 정치인의 주장에는 구밀복검의 혐의가 짙게 배어난다. 최근들어 정?ㅋ英맛?분열이 심화되고 사회적 의견이 첨예하게 부딪치면서 정치인들의 논조와 발언들이 이상해지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심지어 최근 개헌논의 파문과 공무원연금 개혁 정국에서도 한쪽으로는 당위성을 표방하면서도 그 속에는 사건의 본질을 달리보려는 속내가 보이고, 다른 한쪽도 역시 부당성을 표방하고 있지만 이 참에 상황을 지배해야 한다는 초조감이 읽혀진다. 분명히 본질은 개혁안 찬성인데, 서로 뜻은 달리한다는 것이니 모두가 솔직하지 못한 것이다. 특히 청와대 고위층이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를 향해 공박을 했다는 설, 이른바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의 ‘개헌 논의’ 발언을 겨냥해 “말 실수가 아니다”라고 받아친 발언 내용이 알려진 뒤 김 대표가 “(발언한 사람이) 청와대 누군데”라며 다소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였다는 보도(▶ 바로 가기 : 청와대 ‘불쾌감’ 표명하자 김무성 “청와대 누군데”)까지 나오면서, 김 대표조차 궁금해하는 청와대 고위관계자가 과연 누구인지에 대해 관심이 쏠리기도 했다.그러나 그가 누구인지는 김 대표도, 청와대 쪽도, 기자간담회 내용을 보도한 언론들도 아닌 박지원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의 입에서 나왔다.

박 의원은 22일 SBS라디오 <한수진의 SBS전망대>와의 인터뷰에서 “고위층 인사가, 어제 기자들이 전화 왔는데 홍보수석이라고 그렇게 이야기를 하네요”라며, 문제의 청와대 고위관계자를 윤두현 홍보수석으로 지목했다.박 의원은 “소위 청와대 고위층 인사라는 말을 빌려가지고 집권여당의 대표에게 그렇게 심하게 이야기할 수 있을까”라며 “같은 정치권의 국회의원으로서 모멸감을 느낀다”고 말했다. 또 “뭘 고위층, 자기가 무슨 고위층이에요?”라고 꼬집기도 했다.

박 의원은 청와대 쪽의 반응에 박근혜 대통령의 의중이 실려 있는지 여부에 대해 “제가 청와대에 오랫동안 근무했고 수석과 비서실장을 했지 않나. 대통령께서 직접 말씀하시는 경우도 있지만 대개 비서실장이나 수석들이 소위 이름은 빼고 고위층 인사로 이렇게 발표하는 경우가 많고, 당에 압력을 하는 경우가 많다”며 “당연히 실려 있다”고 단언했다. 작금의 청와대를 보면 환관 조고가 생각난다. 황제의 고귀함과 위엄을 위해 황제를 깊은 궁으로 몰아넣은 환관 조고. 청와대의 브레인들이 그런 모양새다. 대통령이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는 것이나 정부여당 대표를 만나는 것은 대통령의 권위, 품위를 손상시키는 일이 된 지 오래다. 실제 대통령은 연두회견 이후 기자들 앞에 선 적이 없다. 국민들은 청와대 환관그룹들이 국무총리나 어느 장관보다 권력이 약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여당 대표보다, 여당의 어떤 국회의원보다 더 강한 권력을 행사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국민들은 대통령이 김기춘 비서실장 말만 듣는다고 생각한다. 문제는 그들은 '선출되지 않은 권력'이라는 점이다. 국민들은 대통령과 국회의원들에게 권력을 위임했다. 청와대 환관들에게 권력을 위임한 적은 결코 없다. 그들은 어떤 선출 절차도 없이, 검증 절차도 없이 대통령의 권한으로 임명된 것일 뿐이다. 토니 블레어는 영국의 노동당을 이끌고 1997년 총선에 크게 승리해 영국의 18년 보수당 정권을 교체한 인물이다. 그 뒤로도 두 차례 2001년과 2005년 선거에서 이겨 노동당의 3연속 승리를 가져온 정치인이다.

토니 블레어의 최측근으로 엘라스티어 캠벨이 있었다. 그는 스핀 닥터(Spin Doctor)로 유명하다. 스핀 닥터란 대통령이나 각료 곁에서 언론 인터뷰의 수위를 조절하거나 대국민 메시지를 작성하는 전문가를 뜻한다. 야구에서 투수가 공에 스핀을 줘 변화구를 던지듯 사실을 가공해 홍보에 활용한다는 데서 유래한 말이다. 캠벨은 다우닝가(영국 총리실)의 대변인(Press Secretary)이었지만 막강한 권력자였다. 그에게는 방송, 신문, 총리 연설 등 커뮤니케이션 전략, 홍보전략을 기획하고 실행하는 역할이 주어졌다. 그러나 그의 역할은 거기에 그치지 않았다. 내각이 수행하는 주요정책, 총리의 인사권에까지 영향을 미쳤다.

그는 내각의 장관들이 맡아야 할 정책 발표의 우선순위와 타이밍을 결정했으며, 장관들이 어떤 내용으로 어느 때 방송에 출연하는 것까지 정했다. 그리고 영국 국영방송 BBC의 뉴스 편집권까지 간섭해 톱 뉴스와 보도순서까지 정해서 내려보냈다.이러한 권력행사는 '선출되지 않은 권력' 논란을 불러왔다. 총리는 국민으로부터 선출되고 내각의 장관들도 국민의 투표로 선출되지만 다우닝가의 대변인은 총리가 임명한 대변인에 불과했다. 그러나 권력은 장관보다 컸고, 총리에 버금갔다. 캠벨의 무리한 처신과 전략은 토니 블레어의 지지율 하락과 몰락을 가져오게 된다.국정운영의 중심은 국무회의다. 지금의 수석비서관 중심의 국정운영은 비정상적이다. 수석비서관들은 대통령의 비서들이다. 비서실은 대통령이 정부의 각 기관과 책임자(장관)를 통해 국정을 수행하는데 있어 대통령의 판단을 돕는 일을 하는 곳이다. 또한 대통령의 뜻이 잘 수행되도록 대통령과 국무위원간의 소통을 돕는 일을 하는 곳이다. 환관과 시종들에게는 권력을 주어서도, 나라를 맡겨도 안 된다. 마찬가지로 '선출되지 않은 권력'에게 권력을 주어서도, 나라를 맡겨서도 안 된다. 그런 자들이 정부 여당대표를 향해 정면 도전을 한 것이다. 청와대 내부에선 면종복배, 구밀복검하는 자들이 말이다. 물론 그것 마저도 대통령의 오더에 의한 것이라면 할 말은 없다.

서울중앙취재본부장 조대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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