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 북유럽 협업 프로젝트 회사 노르딕후스 대표/이종한
현 북유럽 협업 프로젝트 회사 노르딕후스 대표/이종한

십여 년 전 미국에서 대형 펍 레스토랑을 준비하던 때가 있었다. 아시아의 맛과 미국식 바를 조합하여 시작한 프로젝트는 나만의 아지트를 멋지게 만든다는 마음으로 들떠있었다. 설계안을 가지고 시의 청문회에서 프레젼테이션을 했다. 주류를 판매하는 술집으로 분류되어 주민들과 시의 의견을 만족해야 하는 당연한 절차였다. 개회시간 1시간 전까지 아무 반대 의견이 없다는 걸 알고 한숨을 돌리던 내게 뜻밖에도 같은 쇼핑몰에 입주한 식당의 사장이 참석했다. 그는 평소에도 주차장에 차량이 많아서 골치를 앓았었는데 더 복잡해질 주말과 저녁 시간대의 차량 혼잡에 대한 대책은 무엇이냐고 물었다. 가게가 가진 주차 가능댓수 외에 비상 대책을 묻는 것 같았다. 추후 서면 답변으로 제출하겠다는 양해를 구하고 일단 빠져나온 나는 고민에 휩싸였다. 해결책은 차량 통행을 분산시켜 한 곳으로 몰리지 않게 만드는 것이었다. 다른 출입구에 간판을 설치하고 가게 앞 주차장을 일방통행으로 바꾸는 등 또 다른 비용으로 골머리를 앓았던 기억이 난다. 한 동네의 작은 쇼핑몰, 또 수십 개 가게 중 단 한 곳에 대한 차량 이동 문제 하나로 나는 청문회부터 주민의 동의를 얻는 데까지 진땀을 뻈다.

내가 한 달을 넘기며 주민을 설득하고 해결하던 기억에 비하면, 대한민국의 법과 정책은 매우 간단하고 빠른 절차로 쉽게 바뀌는 듯하다. 국민들이 듣기에도 복잡한 국회만의 절차와 새로운 방법들이 속속 등장하고, 법안의 내용은 순간순간 썼다 지우기를 반복한다. 국민들의 관심 뿐 아니라 세계적인 관심까지 받고 있는 대한민국의 사법체계에 관한 법안이 충분한 논의와 동의도 안된 채 탄생을 예고하고 있다. 이에 대해 OECD 뇌물 방지 워킹 그룹의 코드 의장은 지난 4월 22일 대한민국 법무부에 서한을 보냈다. 한국 검찰의 직접 수사권을 박탈하는 법안에 대해 설득력 있는 근거가 없다며, 한국의 반부패와 해외 뇌물범죄 수사 및 기소 역량을 약화시켜선 안된다는 의견을 보냈다. 그는 또 다른 언론에서 한국 검찰의 엄정한 수사를 두려워하고 있는 고위층과 특권층을 위한 법안이라는 부연과 함께 OECD 국가인 한국의 인권에 관해서도 우려를 표했다. 그 외 세계의 여러 단체나 언론에서도 대한민국의 뜻밖의 행보에 관해 우려를 표하고 있다.

‘검수완박’으로 불리는 새 법안은 검찰의 개혁을 위한 여러 단계 중 하나다. 이미 현 정부와 여당은 검찰 개혁을 위해 중대 범죄로 축소된 검찰 직접 수사권마저 폐지하는 검찰청법 폐지 법안을 만들고 검찰을 대신하는 공소청과 중대 범죄를 담당하는 중수청 설치법을 발의했다. 2021년 5월에는 법무부장관 소속 특별 수사청 추진 법안마저 발의됐다. 법을 잘 모르는 일반인의 눈으로 보아도 지나온 기록에선 검찰 죽이기가 검찰 개혁이라고 불리는 게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든다. 이에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은 그동안 무소불위의 권력을 가진 검찰에 대한 개혁은 당연한 것이며 그 근거로 해외의 사례를 들었다. 그 대부분의 사례들은 사실과 거리가 있고 부풀려졌다는 팩트 체크가 있었다.

다시 한번 다른 선진국들을 살펴보자. 대한민국 헌법의 근간이 되었던 독일, 프랑스의 대륙법계 검찰들도 대부분 수사권, 기소권, 영장 청구권을 갖고 있다. 독일은 또 기소일원주의를 채택해 공소제기권을 검찰로 일원화했다. 미국은 주마다 약간의 차이를 보이지만 지방 검찰청이 직접 수사를 담당하기도 하고, 일본 검찰은 “특별 수사”라고 불리는 고도의 법률 지식이 필요한 중대 범죄에 관해 직접 수사한다. 인권국가라고 불리는 스웨덴도 살인과 같은 중대 범죄, 친척간의 범죄, 구속된 용의자의 수사, 피해자가 18세 미만인 경우와 같은 여러 중대한 범죄에 대해 검찰의 수사가 이루어진다.

물론 검찰이 직접 수사는 하지 않고 기소권만 행사하는 나라들도 있다. 영국을 비롯한 영연방 전통을 따르는 아일랜드, 캐나다, 호주, 뉴질랜드 등의 국가들인데, 이들 국가는 수사가 경찰의 고유 영역이다. 영국 검찰의 역할은 기소국 사무실 (DPP, The office of the Director of Public Prosecutions)이 맡고 있다. 수사권은 없으며 중대 범죄에 관한 기소권만 가지고 있다. 이밖의 OECD 국가들은 검찰이 수사권을 가지고 있음에도 주로 수사를 지휘하며 실무적인 수사는 경찰이 담당하는 경우가 많다.

우리가 이런 관련 사례들을 찾아보고, 법안 처리에 근거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이유는 검찰 수사권 박탈이라는 ‘검수완박’의 사안이 국가의 안전과 국민의 인권에 관한 중대한 결정이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바뀌지 않는 습관으로 평생을 살아가고, 어릴 적의 버릇하나 때문에 고통을 당하기도 한다. 아무리 작은 변화라고 하더라도 사람들은 득실을 따지고 이유를 댄다. 지금 OECD 선진국인 대한민국에서 일어나는 검찰 개혁의 이유는 뚜렷하게 타당해야 하고 국민의 동의를 받아야 한다. 다양한 의견들이 모아지고 나눠지기를 반복하면서 수없는 논의를 통해, 진정한 검찰 개혁과 국민 모두의 인권을 지켜줄 수 있는 사법 시스템의 변화를 준비해나가야 한다. 아무리 다른 나라들이 당연하게 여기는 사항이라도 만일 내 일상생활에 직접 개입이 될 수 있는 문제라면 충분히 따지고 비교하는 시간을 누구나 가질 것이다. 대한민국의 대법원을 포함한 법원의 판사들, 검사와 변호사들, 법 관련 학과 교수들, 그리고 국민 여론조사에서 과반을 훌쩍 넘는 반대에도 불구하고, 왜 또다시 국회의 지루하고 볼썽사나운 싸움과 함께 위헌소송, 국민투표까지 언급해야 하는지 모르겠다.

사람의 보호와 정치인을 위한 개혁이라는 말에는 동의하지 않는다. 설마 대한민국의 국민이 뽑고 만든 한 최대 정당이 고위 공직자들의 부정을 감추기 위해 한 나라의 검찰과 법질서를 바꾸려 한다고 믿고 싶지도 않다. 그러나, 아무리 그동안 현 정부가 계획했던 개혁의 마무리라고 이해해주고 가늠하려 해도 한 달도 안된 준비와 공방의 시간은 너무 짧다. 한 동네의 작은 쇼핑몰, 또 수십 개 가게 중 단 한 곳의 차량 이동을 위한 계획에도 시의회와 주민들은 모여서 고민하고 의견을 모으는데 한 달이 넘는 시간을 기꺼이 할애하고 뜻을 모았다. 그런 충분한 시간과 고민, 함께 대화로 이루어내는 합의를 통해 변화하고 나아가는 것이 바로 ‘개혁’이다.

프로필 짧은 버전

이종한

미국 LA 방송사 제작 프로듀서 (Production Director)

스웨덴 디자인 하우스 디자이너 (Creative Designer)

현 북유럽 협업 프로젝트 회사 노르딕후스 대표

지은 책 “내가 꿈꾸는 북유럽 라이프”, “노르딕 소울”

NordikHus.com

nordikhuset@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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