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정현 기자
소정현 기자

(서울일보/소정현 기자) ● 강소기업! ‘세계적 경쟁력’

국가 성패는 경제가 좌우한다는 일념으로 덴마크는 농경지 신경작법의 도입과 농촌특화경제를

통한 수출에 몰입한 것이 19세기 말이었다. 덴마크산 햄, 소시지, 치즈, 우유, 분유는 세계적으로도 유명하다. 하지만 덴마크 하면 떠오르는 것은 낙농업이 전부가 아니다.

덴마크는 세계 유수의 다국적 간판기업이 많지는 않지만 중소기업의 경쟁력이 유난히 막강한 나라이다. 세계 최대의 물류회사인 ‘머스크’(Maersk Group)에서부터 음향제품을 만드는 중소규모의 ‘뱅앤올룹슨’(BANG &OLUFSEN)에 이르기까지 ‘강소 기업들’이 상당하다. 덴마크의 최대 기업인 머스크는 코펜하겐의 뛰어난 항구 기능을 기반으로 성장해 지금은 포춘지 선정 500대 기업 중 100위권에 랭크되고 있다.

덴마크는 전 세계 어린이들이 모두 사랑하는 블록 완구 레고가 나온 국가다. 금세기 최고의 장난감으로 두 번이나 선정된 ‘레고’(LEGO)는 1934년에 덴마크에서 창립되었다. 덴마크의 목공 ‘올레 키르크 크리스티얀센’이 빌룬트에서 레고사를 창업하고 전 세계로 수출하면서 레고는 어린이들의 필수품이 되었다. 레고는 장난감 분야뿐만 아니라 영화, 게임, 테마공원인 레고랜드를 통해서 종합 엔터테인먼트 기업으로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인슐린을 생산하는 제약회사 ‘노보 노디스크’(Novo Nordisk)는 1989년 덴마크 제약회사 두 곳이 합병해 만들어졌다. 당뇨병 의약품 생산 판매에서 세계 최고의 성적을 거두고 있는 노보 노디스크는 2010년 포춘지에서 발표한 ‘가장 일하기 좋은 회사’ 25위를 차지하기도 했다.

● 세계적 모델 ‘녹색 경제국가’

덴마크가 친환경 녹색 국가의 선주주자라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1980년대 이후 덴마크는 지속 가능한 신기술과 솔루션을 개발하는 선두주자격이다. 덴마크는 ‘지속 가능성’에 관한 여러 연구 프로그램은 물론 전문지식과 기술 및 생산능력을 갖춘 수많은 기업을 보유하고 있다.

덴마크 경제는 급속한 성장세에도 총 에너지 소비량은 증가하지 않았다. 현재 덴마크 에너지의 40% 이상은 풍력 발전과 같은 재생에너지로 공급되고 있다. 오늘날 친환경 기술은 덴마크의 가장 큰 수출품 중 하나이다.

이렇듯, 친환경 최적의 국가 덴마크를 대표하는 자전거 문화 또한 빼놓을 수 없다. 덴마크는 세계 최고의 자전거 친화적인 국가 중 하나이다. 코펜하겐 시민의 62%는 매일 자전거를 타고 학교에 가거나 출근한다.

2020년 9월 27일 ‘롯데백화점은 덴마크 왕실 도자기 브랜드 ‘플로라 다니카’(Flora Danica)의 공예술품을 한 자리에 모아 선보였다. /뉴시스
2020년 9월 27일 ‘롯데백화점은 덴마크 왕실 도자기 브랜드 ‘플로라 다니카’(Flora Danica)의 공예술품을 한 자리에 모아 선보였다. /뉴시스

● 정부 혁신! 노조의 ‘전폭 협조’

강소기업이 즐비한 덴마크는 유럽연합 통계에서 4년 연속으로 ‘기업 경영하기 가장 좋은 나라’ 1위로 뽑혔다. 덴마크의 기업가 육성 정책을 보면 그 이유를 잘 알 수 있다. 덴마크에서는 신생기업이 국가 경제에 미치는 긍정적 영향을 평가하며, 기업가 육성을 위한 교육기관을 두고 있다. 정부는 학문 간의 교류를 통해서 창업을 하고 고용기회를 발굴해 내는 일에 전폭 지원하고 있다.

덴마크 학생들은 초등부터 고등교육 전체를 통틀어 그룹 프로젝트를 위주로 교육을 받는다. 또한 덴마크 대학에서는 학문과 학문 사이를 연결하는 융합적 사고를 체계적으로 장려한다.

덴마크 교육의 가장 큰 전통은 개인의 의사를 존중하고 개인의 창의력을 증진시키는 것으로서, 이 자체가 기업가 정신을 고취시키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덴마크 교육부는 ‘기업가 정신 교육과 훈련을 위한 전략’을 최근에 발표했다. 이미 실행되고 있는 행정적인 지원 외에도 초등교육 단계부터 국제적으로 경쟁력 있는 기업가 문화를 육성하겠다는 야심찬 계획이다.

덴마크 국민들은 연대의식이 매우 강력하다. 이들의 건강한 연대의식이 잘 드러나는 현장이 노동조합이다. 덴마크 직장인 100명당 98명이 노조원이다. 그럼에도 덴마크 기업이 노조 때문에 더 건실하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비결은 이 막강한 노조는 사리사욕이 아닌 기업과 국가의 이익을 우선시하기 때문이다.

덴마크의 기업의 또 다른 독특한 특징은 바로 노동 유연성(flexibility)과 고용 보장(security)이 합쳐진 ‘플렉시큐리티’(flexicurity)이다. 덴마크 모델이라고도 불리는 플렉시큐리티는 노동시장의 유연성을 사회보장제도와 고용시장 활성화 정책에 결합한 것이다.

유연한 노동규제를 통해 고용과 해고를 자유롭게 한 것은 덴마크에 주제한 외국 기업들뿐만 아니라 경기에 민감한 덴마크 중소기업들에게도 큰 이득이 된다. 맞물려 실직할 경우에도 경제적으로 안정적이며 재취업을 돕는 여러 제도가 마련된 독특한 ‘상호 윈윈 노동 모델’이다. 배우자의 임금과는 상관없이 지급되는 높은 수준의 실업연금은 덴마크 노동자들이 일정 기간 동안의 실직을 견뎌낼 수 있는 든든한 안전망이다.

이처럼, 덴마크형 북유럽형 복지를 가능케 하는 원천은 혁신적 과세 체제를 통해 가능해진 것으로, 바로 소득이 높을수록 더 많은 세금을 내는 제도를 도입한 것이다. OECD TAX 데이터베이스에 따르면, 덴마크는 OECD 국가 중에서 세금을 가장 많이 거두는 국가다. 고소득자나 저소득자의 무자녀 1인 가구 기준 평균 유효 세율은 대략 이렇다. 평균 소득의 67%, 100%, 167%에 해당하는 가구의 평균 세율은 각각 33%, 35%, 42%로, 다른 국가는 물론이고 핀란드(15%, 22%, 29%), 스웨덴(15%, 18%, 30%) 같은 북유럽 국가보다도 압도적이다. 고소득자 세율의 경우에도 56.5%로 세계 최고 수준이다. 하지만 다양한 복지 정책으로 서민들의 기본적인 삶을 유지시키기에 크게 이의가 없는 실정이다.

2020년 1월 14일, 유럽을 순방 중인 김영록 전남도지사가 덴마크 에스비에르항을 방문, ‘데니스 줄 페데젠 청장’(왼쪽 두번째)을 만나 면담하고 해상풍력 배후단지를 둘러봤다. /뉴시스
2020년 1월 14일, 유럽을 순방 중인 김영록 전남도지사가 덴마크 에스비에르항을 방문, ‘데니스 줄 페데젠 청장’(왼쪽 두번째)을 만나 면담하고 해상풍력 배후단지를 둘러봤다. /뉴시스

● 완벽한 무결점 ‘복지시스템’

덴마크는 태어나서 죽기까지 무상 교육과 무상 의료서비스 등 복지 혜택이 거의 완벽하다. 국가는 국민 개개인의 위기를 관리해 주는 ‘국가 복지시스템’으로 온 국민의 행복지수를 극대화시키고 있다. 경제 전문지 ‘포브스’(Forbes)는 매년 ‘가장 행복한 나라’ 순위를 매긴다. 덴마크는 2005년부터 2009년까지 전 세계 155개 국가 중 ‘가장 행복한 나라’ 1위에 손꼽힌바 있다. 덴마크의 GDP는 미국과 거의 유사하지만, 미국에 비해 훨씬 더 행복하다. 미국은 행복 순위가 20위권 정도에 불과하다.

이와는 극명하게 한국은 세계에서 가장 빠른 성장을 이룬 국가로 높은 GDP 성장률을 보이고 있지만, 행복지수는 늘 하위에 머물러 있다. 많은 사회학자는 낮은 행복지수의 주된 원인으로, 소득 불평등과 양극화 문제를 꼽는다. 경제 성장에 비해 소득분배와 사회의 안정망 등이 떨어진다.

덴마크 사람 대부분은 학벌과 직업에 대한 차별이 없고 남과 비교하지 않는 사회 시스템 안에서 걱정 없이 소신 있고 평등하게 살 수 있기 때문에 ‘행복하다’고 말한다. 행복한 나라가 되기 위한 뒷받침으로는 투명한 정치, 정부의 효율적인 운영, 그리고 높은 수준의 사회 신뢰도를 꼽는다. 국민들은 많은 세금을 내지만, 다양한 복지시스템을 통해 의료비와 교육비 등의 혜택을 받으며 사회공동체에 대한 강한 신뢰감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덴마크의 복지시스템은 소외계층 못지않게 모든 영역을 포괄한다. 하나의 단적인 실례이다. 버스는 모두 저상 버스에, 철도에는 유모차칸, 자전거 칸이 전체의 거의 절반씩을 차지하며 유모차, 휠체어, 자전거를 가지고 편하게 오르내릴 수 있다. 그래서 그런지 유모차가 아주 크다. 시민 의식이 높고 복지 수준이 좋은 만큼 장애인에 대한 배려도 많다. TV-GLAD라는 지적장애, 자폐성 장애인 전용 TV 채널까지 있을 정도이다.

덴마크가 행복한 나라로 많은 부분에서 선진국의 면모를 갖출 수 있었던 것은 단순히 정부에서 추구하는 탄탄한 복지제도 때문만은 아니다. 모든 사람들이 질 높은 복지 혜택을 받아도 실제로 행복감을 못 느끼거나 금방 둔감해질 수 있기 때문에, 덴마크가 높은 행복지수를 유지하며 선진국 반열에 오른 이유를 ‘복지’만으로 설명하기는 불충분하다. 그보다 본질적인 이유는 높은 사회적 신뢰에서 만들어진 건강한 사회공동체, 즉 덴마크 사람들이 서로를 깊이 신뢰하는 굳건한 ‘믿음’ 때문이다.

2019년 5월 21일, 한국-덴마크 외교 수립 60주년을 맞아 공식 방한한 덴마크 ‘마리’(HRH Crown Princess Mary) 왕세자비가 서울 종로구 서울역사박물관에서 열린 ‘안데르센, 코펜하겐 1819’' 전시회 개막식에 참석해 어린이 관람객들과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뉴시스
2019년 5월 21일, 한국-덴마크 외교 수립 60주년을 맞아 공식 방한한 덴마크 ‘마리’(HRH Crown Princess Mary) 왕세자비가 서울 종로구 서울역사박물관에서 열린 ‘안데르센, 코펜하겐 1819’' 전시회 개막식에 참석해 어린이 관람객들과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뉴시스

● ‘그룬트비 유훈’ 건강한 사회공동체!

민주주의와 경제성장은 궤를 같이 한다. 경제성장을 통해 일자리가 창출되고 세금을 통해 복지제도를 구축한 북유럽 덴마크는 안정적이며 투명한 민주주의의 발전을 통해 경제성장을 일구어 낸다. 덴마크는 정치와 경제의 책임 있는 두 주체 간 상생의 합의를 통해 노사 평화를 이루며, 질 높은 일자리가 창출시켜 국민 행복의 비전을 복지와 분배 정책으로 완성한 예다.

덴마크의 민주주의의 역사적 뿌리는 시민교육운동과 정당사에서 찾을 수 있다. 덴마크는 1864년 독일과의 전쟁에서 국토의 35%, 인구의 40% 정도를 잃었다. 국고는 바닥나고, 나라는 심각한 위기에 봉착했다. 온 국민이 좌절하고, 많은 사람들이 알코올 중독자가 되었다. 이 절체절명의 위기에 등장한 인물이 바로 ‘그룬트비’(Grundtvig) 목사였다.

또한 ‘그룬트비’는 민족운동가이고, 나락에 빠진 덴마크를 새롭게 만드는 데 견인차 구실을 한 철학자이자 개혁가였다. 그는 교회를 비롯한 기득권 세력에 대항해 사회 전반의 개혁을 소리 높여 외치는 한편, 덴마크인들의 민족 정서와 전통적 가치를 회복시켜 자신감을 심어주고자 노력했다.

‘그룬트비’는 사회 불평등을 해소하려면, 대중이 자유롭게 사회적 발언을 하도록 돕는 교육이 필요하다고 보았다. 그룬트비의 이런 신념이 현실로 나타난 것이 ‘평민대학’ ‘자유학교’ 등 다양하게 번역되는 ‘폴케호이스콜레(Folkehøjskole)’이다. 자신의 법적 권리를 행사할 수 있는 당당한 시민을 키우기 위한 민주적 대학이 필요하며, 덴마크 국민이라면 누구나 이곳에서 교육받을 수 있어야 한다고 주창했던 그룬트비의 뜻에 따라 덴마크 곳곳에 세워지게 된다.

폴케호이스콜레는 성별·연령·계급·종교에 관계없이 누구든 입학할 수 있으며 무엇보다 시험과 성적 평가 없이 자유롭고 열린 관계와 신뢰에 기초해 ‘생활의 계몽’을 추구하는 교육을 지향했다.

이곳에서 교육받은 농민들의 단적인 실례는 연대적 협동조합의 설립이다. 해외의 값싼 농산물이 쏟아져 들어오자 가난한 덴마크 농민들은 소규모 경영으로는 국제 농산물 시장에서 경쟁할 수 없다는 것을 이해한 농민들이 각자의 독립성은 철저히 유지하면서 서로 연합하여 협동조합을 만들어 ‘공동 생산·구매’ 활동을 함으로써 자신들의 생활을 지킬 수 있다는 것을 터득한 것이다.

이런 전통의 문화를 깊이 체득한 덴마크 국민들의 건강한 연대의식은 약자를 향한 사회적 배려에서도 나타난다. 덴마크 사람들은 가난하고 연약한 이웃을 향한 책임감이 분명하다. 덴마크 국민들에게는 자신들의 세금과 기부금으로 연약한 이웃들을 돌보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는 문화가 있다. 특히 사회 공동체를 바탕으로 한 강한 신뢰감은 민주주의의 질과 삶의 질이 함께 향상한다는 것을 나타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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