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5월 30일, 문재인 대통령이 서울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에서 열린 ‘메테 프레데릭센’ 덴마크 총리와의 한-덴마크 화상 정상회담에 참석해 인사말을 하고 있다.  /뉴시스
2021년 5월 30일, 문재인 대통령이 서울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에서 열린 ‘메테 프레데릭센’ 덴마크 총리와의 한-덴마크 화상 정상회담에 참석해 인사말을 하고 있다. /뉴시스

(서울일보/소정현 기자) ● 북유럽에서 가장 작은 나라

북유럽에서 가장 작은 나라로 북유럽 가장 남쪽에 위치하고 있는 덴마크의 정식 명칭은 ‘덴마크왕국’(Kingdom of Denmark)이며, 한자어로는 정말(丁抹)이라고 한다.

덴마크라는 국명은 고대 노르드어 ‘Danmǫrk’에서 유래한 것으로 ‘데인인의 땅(Danernes mark)’이라는 의미이다. 이렇듯, 덴마크 종족은 북게르만계 노르만족의 한 분파인 데인족(Dane, 86.3%)이다. 인근 국가 노르웨이, 스웨덴도 바이킹의 후손이다. 바이킹의 시대에는 데인계, 노르드계(nohrd), 스비아계(svíar) 민족들이 모두 존재했다.

면적은 42,934㎢(한반도의 약 1/5)로 한 개의 반도, 한 개의 ‘큰’ 섬, 여러 개의 작은 섬으로 이루어져 있다. 북유럽의 유틀란트반도(Jütland)와 셸란 섬(Sjælland) 등 500여 개의 부속 도서로 구성되었으며, 해안선의 길이는 7,314㎞에 달한다.

덴마크 수도는 코펜하겐(Copenhagen)이며, 셸란 섬에 위치해 있다. 코펜하겐 동쪽에는 ‘외레순 해협’(Øresund)을 사이에 두고 스웨덴의 ‘말뫼’(Malmö)와 인접해 있다.

덴마크는 지금의 모습과는 다르게 역사적으로는 자국의 몇 배나 되는 스칸디나비아 반도(Scandinavian Peninsula)와 아이슬란드(Iceland)를 통치했으며, 지금은 덴마크령 그린란드를 소유하고 있는 국가다. 덴마크 왕국 산하에 페로(Faroe) 제도, 그린란드(Greenland)가 있지만 이 둘은 고도의 자치권을 누리는 거의 독립국인 국가들인 데다가 지리적으로도 덴마크 ‘본토’ 지역과 떨어져 있어서 서로 구분하는 경우가 많다.

인구는 589만 명(2021년 7월 / CIA 추정치)이며, 언어는 덴마크어가 공용어이다. 덴마크에서는 덴마크어와 영어 두 언어를 모두 교육하는 교육 시설이 존재한다. 다른 유럽권과 마찬가지로 대부분의 덴마크인들은 영어 사용이 가능하다.

종교는 바이킹시대는 다신교적 신앙형태였으나 9세기경 기독교가 전래되었으며, 1936년 복음주의 루터교가 국교로 지정되어 덴마크인의 79.1%가 루터교 종파인 ‘덴마크 교회’(Den danske folkekirke)에 소속되어 있다. 이외에도 이슬람교(이민세대의 영향으로 2위), 가톨릭, 침례교, 유대교 등이 있다.

덴마크어 통화는 덴마크 ‘크로네’(DKK)이며, 1975년부터 북해유전을 개발하고 있는 덴마크의 국내총생산은 3,552억 달러(worldbank 2020년), 1인당 국민소득은 5만5675달러(IMF 2020)이다. 낙농업이 유명하고 식료품·철강·화학·기계공업 등이 발달했으며, 수산업 역시 풍성하다.

덴마크는 제2차 세계대전 때는 중립정책에도 불구하고 독일군의 침략을 받았다. 이에 1949년 중립정책을 포기하고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에 가맹하였고, 1973년 유럽공동체(EU)에 가입하는 등 친서방정책을 추구해 왔다.

덴마크는 1959년 3월 11일 한국과 외교관계 수립되었으며, 1972년 4월 5일 주덴마크대사관 설치가, 1978년 6월 14일 주한덴마크대사관이 개설되었다. 현 주한대사는 ‘아이너 히보고오 예센’(Einar Hebogård Jensen)이다.

덴마크는 한국에 상당히 우호적인 편이다. 6·25전쟁 중이던 1952년 2월 덴마크는 유엔으로 참전하여 병원선 유틀란디아호(Jutlandia號)를 부산항에 정박시켜 의료사업을 지원하였다. 또한 한국의 경제가 발전하지 않았을 때 아동들을 덴마크로 많이 입양시켜 전례가 있어서이다. K-팝 문화가 영향을 끼친 점도 있다.

2119년 5월 22일, 덴마크의 ‘프레데릭 크리스티안’ 왕세자와 부인 메리 왕세자비가 서울 종로구 국립현대미술관 서울에서 열린 20세기 ‘대안적 미술가 아스게르 요른’ 전시 개막식에 참석하며 교민으로 부터 환영받고 있다. /뉴시스
2119년 5월 22일, 덴마크의 ‘프레데릭 크리스티안’ 왕세자와 부인 메리 왕세자비가 서울 종로구 국립현대미술관 서울에서 열린 20세기 ‘대안적 미술가 아스게르 요른’ 전시 개막식에 참석하며 교민으로 부터 환영받고 있다. /뉴시스

● 정치체제! ‘국민 만족도’ 매우 높은 편

1448년에 창시된 ‘올덴부르크’(Oldenburg) 왕조가 1849년 6월 절대왕정 폐지 및 의회 신설을 골자로 하는 자유헌법을 제정하면서 입헌군주제로 권력구조가 변하였다. 그 뒤 1901년 내각책임제(179석의 임기 4년의 단원제)를 채택하여 1915년 여성에게 참정권을 부여하는 등 의회민주주의의 근대화를 이룩하였다.

덴마크는 입헌 군주국으로 현재의 국왕은 1972년 1월 즉위한 ‘마르그레테 2세’(Margrethe Ⅱ) 여왕이다. 덴마크의 헌법은 여전히 덴마크의 행정력, 입법권, 사법권이 군주에게 있다고 명시하고 있다. 덴마크의 정부는 군주를 국가 원수로 하며, 총리는 2019년 6월 취임한 덴마크 의회의 대표이자 권력의 핵심인 ‘메테 프레데릭센’(Mette Frederiksen)이다.

덴마크는 다당제를 채택하고 있으며 20세기 초 이래 압도적인 권력을 행사할 수 있는 유력한 정당이 없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단일 정당이 과반수 이상의 의석을 확보하여 정부를 구성할 수 있었던 적은 4번에 불과하다. 덴마크 의회는 단원제로 ‘폴거텡’(Folketing)으로 불리며 1879년 민주주의 헌법의 도입에 따라 설립되었다. 주요 정당으로는 자유당, 보수당, 사민당, 사회인민당, 덴마크인민당 등이 있다.

덴마크는 2개의 자치령을 가지고 있는데, 하나는 ‘그린란드’(Greenland)로, 1979년 1월 국민투표를 실시하여 5월 1일 완전 자치를 취득한 후 덴마크 의회에 2명의 대표를 보내고 있다. 또 하나는 ‘페로’(Faroe)제도인데, 1948년 4월부터 자치령이 된 후 덴마크 의회에 2명의 대표를 보내고 있다. 그리고 덴마크의 행정 구역은 ‘5개 지역’(region)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이들 지역은 98개 ‘지방 자치체’(kommune)로 나뉜다.

80%가 넘는 덴마크 평균 투표율이 말해주듯 국민 대다수는 정치에 높은 관심을 보인다. 덴마크는 적극적 정치 참여를 통한 국가 재건에 동참한 국민의 민주적 소양과 배려 그리고 창의적 교육은 나라를 빼앗겼던 국가의 생존을 위한 미래전략의 핵심이 된 것이다.

이렇듯, 덴마크의 정치 제도에 대한 국민들의 만족도는 매우 높은 편이며, 국제기구들은 덴마크를 가장 부패가 적은 나라들 중의 하나로 보고하고 있다. 국회의원의 행동 하나하나를 국민들이 감시한다. 국회의원들이 필요 이상의 월급을 받거나 특권을 누리는 것은 상상할 수도 없다. 당 총재가 자전거를 타고 퇴근하는 모습 또한 지극히 자연스럽게 여겨진다.

또한 덴마크인들은 다른 북유럽인들과 달리 비교적 사교적이고 붙임성이 있으며 낙천적인 국민성을 가진 것으로 유명하다. 특히 수도 코펜하겐으로 갈수록 그래서 영국 소설가인 ‘에벌린 워’(Evelyn Waugh 1903~1966)는 이들이 북유럽에서 가장 쾌활한 사람들이라는 평가를 내렸을 정도이다.

살펴보았듯, 지금 세계에서 가장 행복한 국민, 정치인 청렴성, 정치적 안정과 복지가 가장 잘돼 있는 나라, 양성평등이 가장 잘돼 있고 노동참여율이 세계에서 가장 높고, 대학원까지 무상으로 제공되고, 삶의 환경이 높아 꼭 한번 살아보고 싶은 나라를 선택하라고 할 때 예외 없이 세계 10위권 안에 드는 나라가 덴마크이다.

2021년 2월 25일, 이재명 경기도지사가 경기도 수원시 영통구 수원컨벤션센터에서 열린 ‘경기도 기본주택’ 컨퍼런스 개막식에서 ‘아이너 옌센’ 주한 덴마크 대사와 인사하고 있다. /뉴시스
2021년 2월 25일, 이재명 경기도지사가 경기도 수원시 영통구 수원컨벤션센터에서 열린 ‘경기도 기본주택’ 컨퍼런스 개막식에서 ‘아이너 옌센’ 주한 덴마크 대사와 인사하고 있다. /뉴시스

● 중세 때는 ‘북유럽 전역’ 지배한 대국

북유럽의 작은 나라 덴마크는 우리에게 동화작가 ‘안데르센’(Hans Christian Andersen)의 나라로 알려져 있다. 덴마크는 예전에는 북유럽의 강국이었다. 덴마크는 9세기경 독립 국가를 이루어 13, 14세기에는 북유럽 전역을 지배하는 대국이었다.

덴마크 왕국에 관해서는 초기 바이킹시대인 800년경, 즉 프랑크(franco) 왕국의 카를 대제(Karl der Große, 재위 768∼814) 때 그 최초의 기록이 나타난다.

826년에 최초로 기독교가 전래되어, 970년께 ‘하랄드 블라톤’(Harald Blåtand) 왕 치하에서 덴마크를 완전히 기독교화 하였고, 1014년경 그 아들인 스벤(Svend)왕이 잉글랜드를 정복하고 잉글랜드 왕을 겸하였다.

크누트 1세(Knut I)는 1016년에 잉글랜드 왕위에 올랐고 1018년에는 덴마크 왕을 겸하였으며, 1028년에는 노르웨이 왕으로 추대되어 ‘북해 제국’(앵글로 스칸디나비아 대제국)을 구축하기에 이르렀다. 크누트 1세는 덴마크의 하랄드 블라톤 왕(940~986)의 손자이며 스베인 튜쿠스케 왕의 차남이다.

크누트 1세는 재위기간에 잉글랜드와 덴마크 사이의 갈등을 해소하고 두 나라 간의 문화가 융화할 수 있도록 많은 노력을 했고, 또한 덴마크 문자와 앵글로 색슨 문자가 혼용되어 사용될 수 있도록 했다. 덴마크 출신으로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영국 왕이 되었고, 3국의 왕이 된 것은 크누트 대왕뿐이다.

1157년에는 ‘발데마르 1세’(Valdemar I, 재위 1157∼1182)가 일어나서 국내를 통일하고 발데마르 왕조를 일으켰다. 발데마르 1세는 군사력을 재편성하여 독일에 대항하고 발트 해의 슬라브 세력과 싸웠는데, 그때 슬라브인의 침입에 대비하여 셸란 섬에 구축한 성채(城砦)가 오늘날의 ‘코펜하겐’의 기원이 되었다.

덴마크는 14세기에 들어 마르그레테 1세(Margrethe I) 여왕 때에 ‘칼마르 동맹’(Kalmarunionen)을 통하여 다시 노르웨이와 스웨덴(당시 핀란드는 스웨덴 치하에 있어 사실 북유럽 전체)을 아우르는 대제국이 되었다. 그 기간도 150년 가까운 세월이었다.

1523년 스웨덴이 덴마크와 싸운 끝에 독립해 나간다. 이어 1660년 ‘프레데리크 3세(Frederik III)는 귀족 세력과 대립하는 도시 부르주아 및 루터교 성직자와 결합하여 왕위의 세습제를 승인받고, 1665년에는 국왕의 절대주권을 승인받아 절대군주제(絶對君主制)를 확립하였다.

1788년 농노제가 폐지되고, 1797년 자유무역의 원칙에 입각한 관세법이 성립되어 덴마크의 경제가 활력을 얻었다.

1814년에는 나폴레옹의 편을 들다가 ‘킬 조약’(Treaty of Kiel)에 의해 노르웨이를 스웨덴에 할양하고 4세기에 걸친 노르웨이 지배에 종지부를 찍었다. 킬 조약은 1814년 나폴레옹 전쟁 후 덴마크, 스웨덴, 영국 3국이 맺은 평화조약으로 나폴레옹 전쟁 후의 문제 해결이 목적이었다.

그리하여 덴마크의 영토는 현재의 덴마크와 아이슬란드, 페로 제도, 그린란드로 국한되었다. 국내적으로는 프레데리크 7세(Frederick VII, 재위 1848∼1863)의 절대왕정이 비판의 대상이 되고, 1842년에는 입헌적 대의 정치를 주장하는 ‘국민자유당’이 결성되었다. 1849년 ‘프레데리크 7세’는 자유주의자들의 요구에 따라 전제정치를 포기하고, 자유 헌법을 성립시켜서 입헌군주제를 수립하였다.

1864년에는 덴마크는 강대국 프로이센(현 독일), 오스트리아군과 전투 끝에 패하여 국토의 3분의 1에 해당하는 ‘슐레스비히-홀슈타인 지역’(Schleswig-Holstein)까지 빼앗기는 바람에 결국 현재의 영토로 쪼그라들고 말았다 아예 주권을 독일에게 맡기고 하나의 독립주로 될 것을 요청했으나 독일은 이를 거절했다.

제1차 세계 대전 당시에는 중립을 지켰으나 독일이 바로 근처였기 때문에 민간인 상선들이 독일 잠수함에 격침되었다. 제2차 세계 대전 중에 나치 독일에게 점령되어 1944년까지 고초를 겪었다. 또한 전쟁 중에는 그들에게 필요한 물자를 독일군들이 빼앗았다. 드디어 1945년 5월에 덴마크 전체가 연합군에 의하여 해방되었다.

저작권자 © 서울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