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림삼의 초대시] 당신의 눈물방울로 술을 빚어서
[림삼의 초대시] 당신의 눈물방울로 술을 빚어서
  • 현진 기자 news@seoulilbo.com
  • 승인 2020.03.15 12:58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당신의 눈물방울로 술을 빚어서

 

당신의 눈물방울로 술을 빚어서

차라리 내가 죄다 마실게요,

글썽글썽 다가선 시절 좇다가

빈곤한 하루의 살이 내몰려

슬픔만 더께 쌓아진 당신,

이젠 나래 접고 내 품에 기대어

뭉클뭉클 환희로운 새암 솟도록

 

당신의 한숨소리 떡으로 버무려

오히려 내가 전부 삼킬게요,

발밤발밤 흘러온 세월을 따라

서러운 기억의 모듬 짓눌려

아픔만 불끈 키워온 당신,

하면 걸음 멈춰 내 안에 깃들어

오손도손 발그레한 단풍 들도록

 

당신의 깊은 상흔 찰흙 덧대어

질그릇으로 구워 덮을게요,

버들목 옹이 살라 밑불 지피고

실핏줄 매디로 기름 삼아서

멀쩡한 몸뚱이 차례로 태워 당신,

창백한 밀랍얼굴에 빛 되살아나

도란도란 눈물겨운 새살 돋도록

 

당신 있음에 겨운 자리 나 대신 서고

나 서서 벅찬 자리 당신이 앉아

때론 기적처럼, 혹은 신화처럼

우리 삶 바꿀 수 있다면

당신의 아픔일랑, 당신의 슬픔일랑

하냥 내가 갖고 갈게요

영영 내가 지고 갈게요

 

시의 창

이 세상에 완전한 것은 없다.

홀로 위대한 것도 없고 혼자서 고귀한 것도 없다.

완전하기 위해서는 불완전한 것들이 받쳐주어야 하고, 위대하기 위해서는 위대하지 못한 존재들이 뒤에서 밀어줄 때라야 정작 앞에서 위대함의 가치를 내세울 수 있는 것이며, 고귀하기 위해서는 비천한 다른 것들이 상대적 비교치로 구색을 맞춰주어야 한다.

모름지기 난세에 영웅이 난다고는 하지만, 바로 그 난세가 있어야 영웅이 빛을 발한다.

모든 스포츠에서도 챔피언은 패배자가 있음으로 하여 승리의 기쁨을 누릴 수 있고, 부자는 가난한 사람들이, 잘 생긴 사람은 못난 이들이, 똑똑한 사람은 무식쟁이들이 있어주어야만 비로서 그 존재의 이유가 있을 수 있다.

우리가 다 알면서도 간과하고 있는 사실이 바로, 이 주인공을 빛나게 하는 받침대의 역할이 얼마나 소중하고 필요불가결한 존재인가를 인정하는 일이다.

스포트라이트에 현혹되어, 마치 이 세상에는 앞에 보이는 존재들만 인정받아야 한다고 착각하면서 살아가는 우리들이 얼마나 우매한 존재인가를 깨달아야 한다.

사람이 살아가면서 하는 일은 다 다르다고 생각하지만, 따지고 보면 가장 본능적이며 근본적인 일은 누구나 대동소이하게 하면서 산다.

잘난 사람이나 못난 사람이나 아침에 눈 뜨면서 그 날의 일과가 시작되면 보통 하루 세 끼의 식사를 하고, 적절한 배설과 적당한 운동을 필수로 소화하며, 하루 종일 쉬지 않고 숨을 쉬면서 각자에게 주어진 삶을 누린다.

물론 삶의 모양새와 가치가 저마다 조금씩 다르기는 하지만, 부자라고 해서 하루 열 끼의 식사를 하거나, 남보다 숨을 더 쉬지는 않는다.

그렇게 사람의 살아가는 모습의 다양함이 그야말로 천태만상이라고 할 수 있는데, 그 중에서 어떻게 사는 것이 가장 바람직한 삶의 자세라고 한 마디로 단정지을 수는 없다.

사람답게, 혹은 사람스럽게 살아간다는 것에 정답이 없는 만큼 방법론도 다양하며, 막상 살아본 후라야 그 가치의 진위를 알아볼 수 있다는 점에서, 미리 예측한다는 건 어불성설이다.

사람의 됨됨이가 누구나 소유하고 있는 오장육부와 이목구비, 사지육신의 크기나 생김새를 비교해서 정해지는 것도 아니며, 태생적으로 타고 난 천성이나 후천적 습성으로 결정되는 것도 물론 아니다.

등산을 좋아하는 필자는 시의 주제나 소재를 산과 나무와 풀과 꽃 등에서 많이 찾는다.

바람과 햇살과 비와 눈도 빼놓을 수 없는 친구들이다.

어느날 등산 도중에 잠시 쉬면서 높이가 3~40m나 되는 나무를 한참 바라보다가 문득 진실로 궁금하게 여긴 것이 있다.

생물학에서 배운대로 라면 나무는 뿌리를 통해서 수분과 영양분을 공급받는다는데, 도대체 뿌리가 얼마나 크고 깊기에, 그리고 얼마나 힘이 세기에, 저 높디높은 나뭇가지의 잎새 마지막 하나에까지 영양을 공급한다는 건가?

저토록 푸르른 잎을 싹틔우고 자라나게 하기 위해서는 무한한 공급을 필요로 할텐데, 지치지도 않고 불철주야 지하의 수분을 빨아들이고, 또한 삼투압 현상인지 무슨 작용인지는 잘 모르지만 지속적으로 운동을 하여 생명을 유지시켜나가고 있구나 하는 생각을 하니, 새삼 나무의 숭고한 삶의 자세에 경외심을 갖게 되었다.

그러다가 살랑살랑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잎이 눈에 띄었다.

그리고 바람에 흔들리는 잎새가, 가지가, 줄기가 그냥 흔들리는 것이 아니고 쉼 없이 자생의 활력운동을 하는 것이며, 그것이 곧 뿌리에게 자극을 줌으로써, 빨아들이는 일을 진행하게 하는 궁극적인 촉매작용이며 일종의 펌핑운동이라는 사실을 생각해냈다.

그렇구나, 자연은 서로 서로에게 역할을 부여해주면서, 자연스럽게 형성된 대자연이라는 제목으로 태고 적부터 우리에게 주어졌던 것이다.

이미 소통과 상생의 원리를, 그들의 삶에 완벽하게 깃들여놓은 채로, 우리에게 소통의 의미를 제시하면서 가르침을 주고 있었건만 사람들은 그걸 깨닫지 못하고 있었다.

“네가 있어서 내가 있고, 내가 있어서 네가 있으니, 그래서 우리가 존재한다.”는 어느 시인의 시에서 처럼 우리가 존재하기 위해서는 진정한 소통이 있어야 한다.

인체는 여러 기관과 지체로 구성되어 있다.

그 중에 어느 하나라도 이상이 있으면 몸 전체가 아프게 된다.

아픈 부분 때문에 다른 건강한 부분들이 모두 제 역량을 발휘하지 못하고, 나을 때까지는 신경이 쓰여서 정상적인 삶을 영위하기가 쉽지 않다.

그래서 연약한 어느 지체가 생겨나면 다른 건강한 지체들은 본능적으로 도움을 주면서 완치가 되도록 상호작용을 한다.

외부적으로 약물이나 물리적인 방법 등의 치료로도 도움을 받기는 하지만, 그 보다도 우선하는 것이, 정신적인 의지와 신체적인 자율 정화작용 등이 발동되어 즉각 비상체계에 돌입하는 것이 바로 숨겨진 인체의 비밀이라는 사실이다.

그런데 아픈 부위가 상대적으로 많은 사람이나 같은 질병에 오래 시달린 사람은, 이미 건강한 다른 신체의 힘도 그만큼 떨어져있기 때문에, 활발한 지체의 소통이 부족하게 되고 따라서 치료가 쉽지 않다.

그러기에 평소 건강을 위한 운동이나 섭생의 중요성이 강조되는 것이다.

감성을 지니고 있는 보통사람의 영원한 로망은 누가 뭐래도 ‘사랑’이다.

소통의 가장 대표적인 마음의 교류가 바로 ‘사랑’이다.

뭐니뭐니 해도 사랑하는 데 있어서 가장 필요로 하는 요인은 서로를 위하고 감싸주는 마음, 곧 소통의 마음이다.

제대로 소통하지도 않으면서 진실로 사랑한다고 한다면 말 그대로 어불성설이다.

사랑은 기쁨과 행복만을 제공하지 않는다.

오히려 사랑하지 않을 때 보다 더 큰 아픔과 부담과 짐을 요구한다.

마치 사랑과 바꾸어야 하는 조건인 것처럼 많은 문제와 애로사항들이 멍에처럼 따라온다.

기다렸다는 듯이, 감당하기 어려운 고통이 찾아들어 사랑을 방해한다.

때로는 그 훼방에 굴복하여 사랑을 중도에서 포기하거나, 잘못된 선택으로 평생 괴로워하며 살아가게 되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그렇게 어렵고 힘든 길이 사랑이기에, 이겨내기만 하면 반대급부로 그만큼 가치 있고 황홀한 행복을 뒤에 감추고 있는 것이 또한 사랑이다.

삶에 있어서 진정 바람직한 보람과 결실을 원한다면, 주어진 여건과 난관에 지지 말고 반드시 필사적으로 도전하여 소통의 최후 승리자가 되어야 할 것이다.

어차피 사랑에 나이는 필요치 않다.

젊은 사람이나 황혼길의 노인이나 누구든지 사랑할 권리가 있다.

죽기 전에 진정한 사랑과 소통의 기쁨을 맛보라는 것도 제법 괜챦은 제안 아닌가?

만일 죽을 때까지 도전했는데도 눈에 띄는 결과가 없었다면, 저승에서라도 언젠가는 기필코 행복한 결과가 마련되어있게 될 것이다.

그것이 바로 영원한 사랑이다.

그것이 바로 진정한 소통이다.

그것이 바로 우리의 삶이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