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집

 

실로 오랫동안

곰팡이피어 어둡고 축축한 세상살이

나 이다음 짓게 될 집은

바람의 한숨 머물고있을,

공포 기둘리는 하얀종이들 가득한

 

빈 집으로 남게 될지언정

 

이 집에서라도

지루한 과장 놀놀하게 즐기고파서

잉걸불 타는 눈동자로 세상 직관하는 모양새,

밑질긴 울음소리 불안에 떠는 쓰레기들

우비적거리고 있어야만 마땅한

 

깊은 침묵 정갈한 내 마음의 절집에선

덩어리째 해 꼭 빼닮아버린

핏빛동백 화르르 피어나다,

초록이파리 모듬 밀어로 남긴 채

무리지어 효수형 당하고 섰건만

 

마음에 집지어 게서 살고지고

시의 창

철학자 ‘키에르 케고오르’는 “이 세상이 다 무너진다 해도 잡을 수 있는, 흔들리지 않는 진리 그것이 나에게 필요하다.”고 했다.

또한 “우리에게 있어 마지막 순간 모든 것이 없어진다 해도, 다시 시작할 어떤 기대나 꿈이 희망으로 남아있다면 그건 결코 마지막이 아니다.”라고도 했다.

우리는 세상을 살면서 많은 것을 바라고, 많은 것을 찾아 헤매지만 궁극적으로 모든 것이 사라진다 해도 우리가 꼭 붙잡아야 할 그 하나를 꼽으라면 바로 희망이라 할 것이다.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는 알게 모르게 자본주의와 실용주의의 영향을 많이 받은 사람들이다.

그래서 모든 것을 이익 관계로 보려는 것이 습관화되어 있다.

그러다 보니 가정에서도 가장 소중한 것을 제대로 간수하지 못하여 잃어버릴 때가 있고, 사회에 나가서도 가장 기본적인 인간관계조차 원만하게 진행하지 못하고, 단편적인 이익의 추구나 자기중심적이며 이기적인 잣대로 판단을 하는 우를 범할 때가 많다.

감사할 때에 감사하지 않고, 인정해야 할 때에 인정하지 않으려 한다.

다른 사람들의 가치는 평가 절하하려고 애를 쓰면서, 한 편으로는 자신의 우월성만은 강제적으로 주입시키면서 인정하라고 한다.

그렇게 사회생활을 하는 것이 정상인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것이 현대인으로서 살아가는 현명한 처세이며 올바른 대처방식이라고 착각한다.

그렇기 때문에 이 시점에서 우리는, 세상이 끝나더라도 변할 수 없는 단단한 희망의 진리가 과연 무엇인지 곰곰히 생각해봐야 하는 것이다.

‘경외한다’라는 표현의 단어가 있다.

사전적 의미로는 ‘공경하고 두려워하는 마음을 갖는다’를 뜻한다.

그런데 여기서 ‘두렵다’고 하는 뜻은 ‘무서워서 겁난다’는 뜻이라기 보다는 상대방을 배려하고 존중함으로 해서 ‘조심스럽고 떨린다’는 뜻으로 봐야 할 것이다.

물론 어떤 은혜나 베풂을 입어서 감사해야 할 특정의 상황이 형성되어서가 아니다.

그냥 일반적인 대인관계일지라도 상대방의 모든 장점과 특징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고 인정하면서, 경외하는 마음을 곱게 간직한 상태로 이어진다면 아름답고 영원한 희망과 진리의 인간관계가 형성될 수 있는 것이다.

그렇게 해야 세상은 끊어지지 않고 아름다운 희망의 역사를 이어갈 것이다.

삶을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 건지에 대해서 정확한 답안을 제시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엄청난 학식과 연륜을 자랑하는 학자나, 모든 세상의 이치를 통달한 마법사라 할지라도 삶의 정확한 길을 이끌어줄 지도를 그릴 수는 없을 것이다.

살아가는 데는 두 가지 길이 있다.

하나는 지도를 의지하여 따라가는 길이고, 다른 하나는 지도를 만들며 가는 인생길이다.

우리는 지금 어떤 상태로 길을 가고 있는가?

이미 우리에게 주어진 답안은, 많은 선구자들의 그동안의 경험과 시행착오를 통해 얻어진 것들의 집합이라 할 수 있다.

말하자면 엑기스라고나 할까?

일반적인 상식이면서 모든 사람들에게 공통분모로 작용하는 것들이라 하겠다.

하지만 보편적인 것이 꼭 나의 것일 이유는 없다고 생각한다.

모든 것에는 경우라는 것이 있고, 경우란 그만큼 다양한 답을 요구한다.

많은 사람들의 발걸음으로 다져진 길은 편편하고 안정적이기는 하나, 골짜기와 계곡의 비경은 기대하기 어려운 법이다.

그리고 이미 주어진 답에서는 창의성과 다양성이 결여되어 있다는 생각도 해야 한다.

나만의 해답을 찾아낸다는 것은 어쩌면 대단한 용기가 필요할지도 모르지만 젊다면, 스스로 마음이 젊다고 생각한다면 두려워 할 이유가 없다.

다만 지나치게 급하게 서두르거나, 조급한 마음에 당황해서 저지르는 시행착오는 자신의 삶에 결코 도움이 되지 못한다.

그런 오류를 범하고 나서, 결론적으로 경험을 쌓은 것이라고 자위하는 것도 어리석은 일이다.

항상 심사숙고하고 신중한 판단과 선택이 뒷받침된 용기라야 바로 삶의 지도를 스스로 그려나가는, 세상에 존재하는 마지막 희망의 꿈이 될 수 있다.

우리에게 오늘 어려운 일이 생기더라도 마주보고 당당하게 맞서야 한다.

실패할 수 있겠지만, 승리할 수도 있다.

그러니 한 번 끝까지 해보자.

우리가 주저하며 근심거리로 가득 차 있을 때는, 어쩌면 희망조차 소용없게 보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일들은 다른 이들도 모두 겪은 일일 뿐임을 기억하자.

그러니까 혹시 실패한다 하더라도, 넘어졌더라도 지지 말고 다시 일어나서 싸워보자.

무슨 일을 당하더라도 포기하지 말자.

마지막까지 눈을 똑바로 뜨고, 머리를 쳐들고 한 번 해보는 거다.

그 후에라야 우리는 비로서 삶의 마지막 진리에 관해서 논해야 하는 것이다.

필자는 지금 몸이 썩 건강하지는 않다.

하지만 그로 인해 누구보다도 건강의 소중함을 잘 알고 있다.

그래서 필자는 가족은 물론 친구나 이웃의 건강을 위해 항상 기도한다.

필자는 쌓아놓은 재물이 별로 없다.

그래도 누군가를 원망하지는 않는다.

가난함은 노력하면 부유함이 되지만, 부자는 언제나 부자이거나 가난한 자로 될 것이다.

필자는 강연을 자주 하지만, 실은 가진 지식이 별로 없다.

박사학위나 특출한 자격증도 지니고 있지 못하지만, 세상을 살아가는 힘은 지식보다는 지혜라고 생각하고 있다.

그래서 언제나 성실한 자세로 지혜를 위해서 지식도 쌓아가려고 노력 중이다.

나의 약함이 내겐 약이 된다는 것을 필자는 잘 알고 있는 편이다.

삶의 완벽함이란 있을 수가 없다.

누구에게나 부족함이나 모자람이 있기 마련이다.

그러나 부족함이나 모자람은 채워나갈 여지가 있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메울 가치적 공간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

그것이 우리가 살아가는 데 목표가 되고, 희망이 되며, 꿈이 될 것이다.

또한 우리의 부족함으로 인해 타인을 헤아리는 배려를 배우기도 하고, 함께 하여 채워가는 협동을 배우기도 할 것이다.

그래서 어쩌면 인간적인 심성을 키울 수 있는 가장 큰 동기가 되기도 할 것이다.

우리 자신의 약한 부분을 정작 우리는 어떻게 생각해야 할까?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 이에게 자신의 약한 부분은 열등감이 되지만, 자신을 사랑하는 이에게는 스스로를 키워나가는 빛나는 십자가가 된다고 믿으면 될 것이다.

참으로 어렵고 고단한 가운데 3월의 문이 열렸다.

도무지 수그러들 줄 모르는 질병의 몽니가 사뭇 사납다.

그러나, 그러나 이 또한 지나가리라.

문득 한 무리의 바람이 흩어지지 않고 지나간다.

싱그러운 봄바람의 초대일까?

꽃망울 터뜨리는 봄꽃의 초대인가?

꽃길 닿은 봉우리에 하늘의 영기가 그림자로 다가온다.

꽃잎에 스치는 산바람을 마시며 보랏빛 산야초를 바라보자니, 바람 센 오늘은 더욱더 봄이 그리워 꽃상여 속으로 들어가는 기분을 느낀다.

마음 속에 핀 산비탈길 마알간 산나리 꽃대궁을 질투하던 바람이, 땅을 휩쓸고 흙바람을 일으켜 세우며, 꽃잎을 안고 물기 오른 초록으로 일어선다.

봄바람이 불어오면서 감로수 한 방울, 이슬로 다가온 천상의 울림이 꽃과 바람, 사랑의 세레나데 변주곡으로 들려주는, 지금은 인생의 봄으로 꿈 보듬을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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