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 귀국하여 느끼는 점은 우리는 너무 편이 갈려 있다. 우선 정치만 하더라도 진보냐 보수냐를 가르는데, 필자 같은 어정쩡한 사람은 보수와 진보의 택일을 강요하는 사회에서 양쪽으로부터 지탄을 받는다.

대화에서도 어느 한쪽 편을 들어야 하는, 즉 어느 한편에 속하라고 강요당하기 일쑤다. 단체생활에서 그들의 공동이념에 반하면 대화하기나 심지어는 살아가기도 힘들다.

심지어는 몇 사람 되지도 않는 미술인의 모임에서도 편을 만들고, 그편에 동조하지 않으면 뒤에서 온갖 비방을 늘어놓는다. 이러한 것을 주도하는 사람은 능력도 없는 사람으로 단체에서 필요한 사람도 아니고, 있어도 그만이고 없어도 그만인 사람이 아니라, 있어서는 안 되는 암적인 존재이다.

그런데도 이러한 불필요한 사람은 권모술수가 능해 그러한 잔꾀가 통하고 있는 것이 신기하다. 또한 우리의 습관 중에 남의 일에 지나칠 정도로 신경을 쓴다. 심지어는 신경을 쓰는 정도를 넘어 간섭까지 한다.중국말에 메이관시(没关系)라는 말이 있다. 우리말로 하면 하면 관계없다. 상관없다. 문제없다. 염려가 없다.

괜찮다 등으로 해석되는데 중국인들은 이 말을 참으로 많이 사용한다. 중국의 문화혁명 시절은 참으로 혼란하였던 시기로 제자가 스승을 비판하고, 자식이 부모를 비판하는 시기로 무슨 말 한번 잘못하면 지탄의 대상이 되기에 스스로 살고자 하면 모든 일에 메이관시. 즉 무관심이 제일이었을 것이다.

우리가 언론 매체를 통하여 종종 보는 것이지만 중국인들은 지금도 남의 일에는 지나치게 무관심하다. 심지어는 길거리에서 매를 맞는데도 지나가는 행인 중 아무도 관심을 두지 않아 결국은 맞아 죽었다는 기사도 읽은 적이 있을 정도로 매사에 남의 일에 관심을 넘어 간섭으로 진화하는 우리와는 정반대인 것이다.

진보와 보수를 구분하는 가장 중요한 기준은 (스스로) 문제가 있다고 인지하고 이를 개선하고자 하는 의지라 볼 수 있다. 많은 문제가 있는데도 이를 인식하지 못하거나 인식하고서도 개선할 의지 내지는 용기가 없어서도 곤란하지만, 스스로 아무런 답도 대안도 제시하지 못하면서 문제를 자꾸 제기하여 사회를 어지럽히는 것 또한 곤란하다.

그렇다면 진보는 무엇이고 보수는 무엇일까? 우리사회에 심각한 갈등을 일으키고 있는 종북(?) 같은 개념이 보수와 진보의 기준인가.아니면 자본주의에 가까우면 보수이고 사회주의에 가까우면 진보인가. 중국의 경우에는 사회주의의 원형을 지키고자 하는 측이 보수이고 자본주의적 시장경제를 지지하는 측이 진보일 것이다. 즉, 우리와 반대인 것이다. 보수와 진보의 본질적 차이는 이념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사회에 대한 문제의식이 주체일 것이다.

우리 같은 자본주의 사회라면 자본주의에 대한 문제의식을 핵심에 두고 그 대안으로 사회주의적 요소를 주장하는 것이 진보가 될 것이고, 반대로 사회주의 사회에서는 사회주의의 문제점을 인식하고서 자본주의적 요소를 주장할 때 오히려 진보가 된다.

중국의 예로 들면 봉건주의를 타파하고 공산혁명으로 인민의 나라를 세운 모택동이 진보라 할 수 있고, 등소평 또한 사회주의 속에서 개혁개방을 통하여 나라의 부강을 도모하였으니 진보라 할 수 있겠다. 그러나 우리의 현실에서 대안 없는 반대를 위한 반대를 외치고, 조직에서 그 조직의 건전한 이념에 반하여 조직을 와해시키려는 행위는 진보로 미화 될 수가 없다고 하겠다.대체적으로 사회를 만들었고 사회를 이끌고 있는 장, 노년층은 그들이 이룩한 사회이기에 기존의 사회가 갖고 있는 문제점에 대한 인식이 희박하다. 세상이라는 것이 다 그렇고 그런 것이기에 바꾼다 해봐야 별 뾰족한 수가 없다고 생각한다.

즉, 보수성향이 두드러진다. 이에 반하여 기성세대가 만들어 놓은 사회를 바라보는 젊은이들의 눈에는 문제점이 한두 가지가 아닐 것이다. 이를 제대로 보지도 못하고 바꾸려고도 하지 않는 기성세대가 너무 답답하고 심지어는 불만스럽기까지 할 것이다.

즉, 진보이다. 물론 개인의 성장과정이나 이념에 따라 차이는 있겠지만 노년층은 보수적이 되기 쉽고, 젊은 층은 진보적으로 되기 쉽다. 진보와 보수는 서로 건전하게 경쟁하면서 사회발전을 이루고 안정을 유지해 나간다면 사회를 위하여 참으로 좋다.

상호 비방을 일삼고 부정할 것이 아니라 서로 존중하고 건전한 비판을 통하여 사회의 발전을 도모하여야 한다. 외국에서 오래 생활하면서 참으로 아쉬웠던 점은 우리 사회는 너무 극단으로 달려가고 있다는 것이다.백과 흑만을 강요당하고 회색은 설자리가 없다는 점이다. 언론 매체도 진보와 보수로 명확히 갈려 있어서 중도를 걸어야 하는 언론조차 편 가르기를 일삼고 있다.

심지어는 자신과 성향이 다르다고 우리가 다수결로 뽑은 대통령들을 2번이나 탄핵시키려 했고, 1명은 결국 탄핵을 당했다. 또 어느 대통령 때는 소고기 수입을 문제 삼으며 국민을 호도하고는 유모차부대라는 해괴한 집단을 등장시켜 국정을 마비시키는 추태를 자행하였다.

진보나 보수를 떠나 이러한 뉴스를 외국에서 들으며 우리나라가 어떻게 되어 가는지 걱정에 휩싸인 적이 한 두 번이 아니었다.중국처럼 메이관시도 문제지만, 지나친 편 가르기 역시 우리의 사회를 좀 먹는 암적인 존재이다. 지금도 우리 서울의 도로는 주말마다 흑백의 대결장이 된다.

필자는 미술을 전공한 사람으로 작품에서 하이브리드를 추구한다. 평면이나 입체의 구분조차 싫어하고, 재료나 기법 등에서 다양한 선택을 한다.

즉, 작품자체가 잡종이고 짬뽕이고 박쥐고 키메라다. 우리사회에 흑백만이 아니라, 필자처럼 회색분자도 살아갈 세상을 꿈꾸어 본다면 망상일까?

 

◆필자 약력: 서울과기대 학사, 홍익대학교 대학원 석사, 동신대 박사, 북경 칭화대학 미대 정교수로 정년퇴임, 광저우 화난이공대 명예교수, 폴리텍대학 명예교수 역임.

현재: 한중미술협회 회장, 각종 언론 칼럼니스트.

개인전 55회, 국제 비엔날레, 아트페어 등 단체전 300여회

서울평화국제미술제 심사위원장, 국제기능올림픽 명장부심사위원등 다수

작품소장: 중국 조어대 (北京 釣魚臺), 주중 한국대사관, 주한 중국대사관, 中国海信集团有限公司, 中国航空集团公司, 中国海尔集团公司 등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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