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 애가(哀歌) -

 

지금은 목 마르니

쉼표 필요한 시간,

감정의 흐름따라 고리를 걸고

넉장거리로 주저앉은

긴 세월 못내 섧다

 

차마 절기 대하기 점직하여

썩썩한 짓거리 골라

너스레 떨면,

지긋지긋 선입견 밀려들어

죄송스런 심사이려니

 

그러다본즉 이 겨울,

다시금 어김없이

슬픈 얘기 한 소절

타임캡슐에 고스란히 묻으며

허재비 소맷깃 숨는다

 

암-

겨울은 요렇게 매워야 겨울답지!

 

망할 증후군 쓸쓸키만 하고,

삭풍 엿볼세라

시린 손 사추리 쑤셔넣는데

먼 하늘 날리는 눈발 위로

퀭한 눈총 홀로 그리웁다

 

시의 창

12월 중순 들어서며 제법 매서운 추위가 이어지면서, ‘삼한사온(三寒四溫)’은 이제 옛말이 됐다. 예년보다는 조금 덜하지만, 그래도 올 겨울 들어 며칠 째 영하권의 강추위를 몰고 온 주범을 ‘블로킹’ 현상이라고 부른다는 게 기상청의 발표인데, 중간에 한파가 잠깐 풀리겠지만 연말까지는 추운 날씨가 계속 이어질 것으로 보여 당분간 건강관리에 유의해달라는 당부도 곁들인다.

물론 때 맞춘 엄동과 설한이 몰려오는 바람에 제 철을 맞아 호사를 누리는 축도 있기는 있다.

주로 중북부지방 이북에 소재한 스키장들이 그렇고, 겨울 의류 등을 판매하는 아웃도어들의 호황이 그러하다. 난방 열기구나 보일러 등의 겨울용품점들도 불티가 난다. 겨울이면 등장하는 각종 먹거리 장사들도 지금 한참 동분서주하면서 바빠져 있다.

정신없이 돌아가는 세월의 굴레바퀴지만 그런대로 망설임 없이 바로 적응해서 살 길을 찾는 것이 사람들에게 주어진 운명이요, 세상사 돌아가는 이치이며, 또한 진리인 것이 고금의 인지상정인가 보다.

아무튼 세상 모든 사람들은 늘 새롭게 바뀌는 풍속이나 문화에도 금세 적응하고 숙달되어진다. 그러고 보면 아마도 그렇게 변화와 도전에 익숙할 수 있도록, 근본적으로 두뇌와 속성이 만들어진 듯도 하다.

허기사 너무 잘 적응하는 습관 때문에 문제가 되기도 한다. 그 점을 기화로 삼아 오히려 앞서가는 부류들에 의해서, 각종 혼란과 무질서가 야기되는 사례도 비일비재한 것이 또한 오늘날의 현상이고 보면, 우리 사는 이 오늘은 한 마디로 요지경 세상인 것이다.

그래도 그렇지, 한 해가 저물어가는 요즈음, 경건하고 차분한 마음으로 올 해를 마무리 하면서, 다가오는 새 해의 설계를 신중하게 준비하지는 못할 망정, 도저히 상상도 못할 각종 기상천외한 사건사고들이 이 사회에서는 지금 이 시간에도 뉴스의 헤드라인을 장식하고 있으니, 이 무슨 뒤죽박죽 요술거울 같은 이야기들인지, 그저 기가 찰 노릇이다.

포수가 새 한 마리를 잡았는데 신기하게도 이 새는 일흔 가지나 되는 말을 자유롭게 지껄일 줄 알았다. 새는 포수에게 애원했다.

“포수님, 저를 놓아주십시오. 그러면 아주 쓸모 있는 교훈 세 가지를 가르쳐 드리겠습니다.” “교훈? 좋아, 그럼 말해 보아라. 듣고 널 놓아주지.” “하지만 그러기 전에 저를 놓아주시겠다고 맹세해 주십시오.” “그러지, 맹세하마.” 포수의 맹세를 듣자 새는 말을 시작했다. “첫 번째 교훈은 이미 지나버린 일은 후회하지 말라. 두 번째는 있을 수 없는 일을 말하는 자를 결코 믿지 말라. 마지막으로 할 수 없는 일을 하려고 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이 세 가지를 말하고 약속대로 새는 포르르 날아갔다.

자유의 몸이 된 새는 높은 나뭇가지에 올라앉아서 나무 밑에 있는 포수를 놀려댔다. “내 꾀에 넘어갔지요? 당신은 내 말에 넘어가 나를 놓치고 말았어요.

내 몸엔 멋진 진주가 달려 있어서 그것이 나를 현명하게 해준단 말이야, 이 바보 같은 포수 양반아.” 포수는 새를 놓아준 것을 곧 후회하기 시작했다.

그래서 새가 앉아 있는 나무로 올라가 새를 붙잡으려 했다. 그러나 나무가 워낙 높은지라 중간에 나무에서 미끄러져 그만 다리를 다치고 말았다. 다리를 절뚝거리며 괴로워하고 있는 포수를 보고 새는 깔깔 웃으며 말했다.

“당신은 정말 어쩔 수 없는 멍청이야. 내가 말해준 교훈이 무슨 의미인지 잠깐 동안이라도 곰곰히 생각해봐요. 이미 지나가 버린 일은 후회하지 말라고 했지요? 그런데도 당신은 나를 놓친 것을 후회하고 마는군요. 그리고 있을 수 없는 일은 결코 믿지 말라고 했죠? 그런데도 당신은 내가 방금 한 말을 정말인 줄 알고, 내가 정말 값진 진주를 달고 다니는 줄 착각하는군요. 나는 어디서나 볼 수 있는 한 마리 새에 불과해요.

마지막으로 할 수 없는 일은 아예 처음부터 포기하라고 내가 가르쳤는데도 당신은 나를 다시 잡으려고 하다가 결국 다리를 다치고 말았단 말이야.

현명한 자에게 한 마디 하는 것이 우둔한 자에게 백 마디 하는 것보다 훨씬 낫다 하는 까닭을 이제야 알겠네요. 인간들이란 왜 전부 당신같이 밥통들인지 모르겠어.” 이렇게 쏘아붙이고 새는 먹이를 찾아 어디론가 날아가버렸다. ‘탈무드’에 나오는 우화이다.

세상에 존재하는 삼라만상 중에 가장 똑똑하고 발달된 두뇌를 소유하고 있는 인간들이라 하지만, 사실 따지고 보면 얼마나 우매하고 바보 천치 같은지, 때로는 정말 웃지 못할 실수도 밥 먹듯이 저지르고, 허무맹랑한 신앙이나 사물에 의지하면서, 막연하고 허황된 기대에 얽매어 살아간다. 그러면서도 저 잘난 맛에 도취되어, 다른 사람의 사정이나 여건은 전혀 고려하지 않으려 하고, 언제나 큰 목소리나 과장된 행동을 앞세워 스스로를 드러내려고만 한다. 그러니 각종 불화와 다툼은 필연적으로 뒤따를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일전에 불쑥, 가을이 가는 바다, 겨울이 오는 바다를 만나고 싶은 충동을 못 이겨서 예정에도 없던 동해안 여정을 감행했다. 바다와 함께 두런거리면서 두 계절을 느끼고픈 심사였다. 땅거미가 지는 어둑신한 즈음에 자그마한 민박집에 행장을 풀고, 주인장의 호언에 아랫목에 손을 대보니 구들장이 잘 뎁혀져서 따끈한 게 그만이었다. 아주 좋았다. 이만 하면 객지에서의 하룻밤 유숙으로는 대만족이다.

해 저무는 저녁나절, 쓸쓸한 감수성으로 가득한 가을의 끝자락, 겨울로 넘어가는 길목에 약간의 온기를 더하면 쓸쓸함은 이내 고즈넉하게 빛을 발한다. 칼바람 부는 해안가에서의 날카롭기만 한 이 맘 때 풍경을 작은 초막에서 바라보면 한결 그렇다. 바라보는 초겨울 풍경이 더욱 고즈넉할 수 있는 것도 뜨끈한 구들장이 주는 온기 때문일 것이다. 해 떨어진 뒤 칠흑 같은 어둠을 만나기에도 따뜻한 온기가 있어야 퍽 든든하다.

2019년 마지막 남은 한 달의 기념 여행에서, 밤바다도 잘 익어가고 삭풍도 제법 와글거리는, 하룻밤을 보내기에 더없이 좋은 천혜의 명소를 만난 것은 뜻밖의 횡재였다. 게다가 거기서 다행스럽게도 글을 한 다발이나 써제낄 수 있었으니까 후덕한 덤까지 챙긴 셈이다. ‘겨울 바다에 가 보았지/ 미지(未知)의 새/ 보고 싶던 새들은 죽고 없었네/ 그대 생각을 했건만도/ 매운 해풍에 그 진실마저 눈물져 얼어 버리고….’ 애틋한 서정의 시인 ‘김남조’는 겨울바다의 ‘치명적’인 정서를 노래했다. 겨울바다는 ‘치명적’이기에 가장 큰 카타르시스를 예고한다. 그래서 김남조는 기도한 뒤 다시 겨울바다를 찾는다.

바다는 여름의 것이 아니라 겨울의 것일지도 모른다. 겨울의 바다는 거센 파도에 보는 이의 마음을 한없이 내동댕이쳤다가 가장 아름답게 곧추세우는 치명적인 매력을 가졌으니 말이다. 그렇다손 쳐도, 필자의 겨울바다는 슬픔의 노래보다는 희망과 사랑의 노래를 희구하는 염원으로 귀결된다. 한탄과 회한 만으로 오늘의 현실을 바라보기에는 너무나도 억울하다. 그리고 안타깝다. 그래서 다시금 마음을 다잡아 새 아침으로 이어지는 삶의 여정을 시작한다.

어차피 다가선 이 겨울이라면, 겨울의 어둡고 탁한 부분을 기억하기 보다는, 겨울이 지니고 있는 강인하고 기상찬 역동의 노래를 떠올리고 싶은 거다. 그래서 필자는 겨울바다를 바라보며 다짐한다. 어차피 슬픔이 고통을 해결하는 답이 아니라면, 오늘의 이 ‘겨울 애가(哀歌)’만 마지막으로 부르고 나서, 내일부터는 세상 모든 사람들의 가슴을 따사롭게 감싸주는 ‘겨울 애가(愛歌)’를 부르는 시인이 되겠노라고-

저작권자 © 서울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