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개마루 꽃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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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현진 기자 news@seoulilbo.com
  • 승인 2019.12.02 0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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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림삼의 초대시]

고개마루 꽃길 -

 

노을보다 더 흐드러져

유난스레 가슴뛰는 연무

세월이 계절로 지는 양

무리지어 피어있는

산국화 꽃길 따라

고개마루 넘노라면

 

뭉텅 끊어진

손으로 가슴 헤집으며

산국화 꽃 보다도

더 샛노란 울음 울었다던

그 입술만 남아져

오늘로 전해지고

 

산국화 꽃 비린 내음

속으로 설움 토하며

부푼 꿈 키웠던 그날의

그 황토흙 사이로

실낱같은 울음 소리

바람결에 들려오면

 

햇살녘 저무는 사연

바리바리 등에 지고

뭉텅 뭉텅 무리로 핀

산국화 꽃길 새에

고개 넘어 갈 길 가는

발걸음만 더디게 하고

 

시의 창

쌀쌀한 초겨울 새벽 등산길에서 깜짝 놀랄 일이 있었다.

세상에! 서리 내려앉은 산 중턱 바위 틈에 소담스레 피어나, 서로 꼭 껴안고 추위를 견디고 있는 산국화 무리를 발견했음이다.

아무리 요즘, 계절 모르고 꽃들이 예서 제서 피어나기는 한다만, 이 추위에 바라보는 신새벽 국화 가족의 그 강한 생명력과 응집력은 경이롭기까지 하였다.

‘산국화(山菊花)’의 꽃말은 ‘큰 마음’이다.

산국화는 초롱꽃목 국화과의 여러해살이풀이다.

높이는 60∼90㎝인데 전체에 짧은 털이 있고, 줄기는 곧게 서며, 윗부분에서 분지한다.

잎은 어긋나고 넓은 달걀꼴이며, 길이 5∼7㎝, 너비 4∼6㎝로서 깃꼴로 갈라지고, 갈라진 조각은 크기가 거의 비슷하며 긴 타원형이고, 가장자리에 예리한 톱니가 있다.

잎자루는 길이 1∼2㎝이다.

꽃은 노랑으로 9∼10월에 피며, 지름 1.5㎝로 가지와 원줄기 끝에 두화(頭花)가 달린다.

총포(總苞)는 길이 4㎜, 지름 8㎜이며 3∼4줄로 배열한다.

꽃은 약용 및 식용으로 이용하며, 한국·중국·일본 등지에 분포한다.

우리 산에 자라는 국화 종류 중에서 노란색 꽃을 피우는 것은 산국과 감국밖에 없다.

꽃피는 시기는 쑥부쟁이나 구절초보다 늦으며, 10월말에서 12월 초순경까지도 핀다.

산국은 말 그대로 ‘산에서 나는 국화’를 말한다.

줄기는 흰 털이 있고 가지가 많이 갈라지며, 감국보다 꽃이 작다.

이상은 산국화에 관한 ‘생물대백과사전’의 설명이다.

반갑게 기다리고 있을 산국화 때문에 조급증이 나서 다음 날 새벽부터는 산행을 더 일찍 서두르게 되었으니, 겸사겸사 이것도 건강관리를 채근하는 좋은 징후라고 하겠다.

아무튼 다른 화려하고 어여쁜 꽃들이야 비닐하우스에는 많은 시절이지만, 단아한 미소로 필자에게 손짓해주는 올 해의 마지막 산국화는, 볼 때 마다 소망이 담뿍 담긴 사랑과 삶의 이야기를 전해주는 듯 하여, 새롭게 또 하루를 시작하게 해준다.

필자가 강의를 하던 문화센터의 수강생 중 최고령 80대 할머니는 언제나 환한 얼굴로 싱글벙글이었다.

언젠가 그 비결이 궁금해서 여쭤보았다.

“할머니 요즘 건강하시죠?”

그러자 할머니가 씩씩하게 대답하신다.

“그럼... 아주아주 건강해. 말기 위암 빼고는 다 좋아...”

그 대답에 순간, 머리 끝에서부터 발 끝까지 마치 전기로 감전된 듯 가슴이 먹먹해졌다.

그러면서 할머니는 지금이 무척 행복하다고 말씀하신다.

아무것도 없이 태어나 지금은 집도 있고, 남편은 미리 하늘로 갔지만, 자식들은 다섯 명이나 있다는 것이다.

이제 암이 몸에 들어와 예정된 시간에 태어난 곳으로 돌아갈 수 있다니, 남은 삶이 얼마나 즐겁냐는 것이다.

언제 이 세상을 떠나게 될지를 알기 때문에 너무 너무 행복하다는 것이다.

할머니의 말씀을 들으면서 삶이 무엇이며, 행복이 무엇이며, 마음의 평안이 무엇인지를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된다.

또한 행복은 끝없이 몰아치는 상황을 긍정적으로 해석하는 능력에 달려 있음을 뼈져리게 느끼게 된다.

암을 고질병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에게 있어서 암 치유율은 38%에 그치지만, 암을 고칠병이라고 믿는 사람에게 있어서의 암 치유율은 70%까지 올라간다는 통계가 있다.

같은 암이라도 죽을병이라는 사람도 있지만, 암을 통해서 삶과 죽음에 대한 통찰을 얻었다는 사람들도 많다.

암을 죽음으로 연결하느냐, 암을 삶으로 해석하느냐는 전적으로 자신의 긍정적인 태도에 달려 있다.

행복은 세상을 바라보는 긍정적인 틀이다.

긍정적인 생각 없이 우리는 어느 한 순간도 행복해질 수 없다.

사람들은 언제나 행복을 원한다.

많은 것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행복하지 못한 사람이 있는가 하면, 아무것도 가지고 있지 않지만 행복한 사람들이 있다.

중요한 것은 긍정적인 태도와 밝음을 선택하지 않고서는 결코 행복해지거나 웃을 수 없다는 것이다.

‘세상 어디에도 행복은 없지만, 모두의 가슴에는 행복이 있다’ 라는 말이 있다.

결국 마음의 행복을 끄집어내는 데는 긍정적인 해석 밖에 없다는 의미이다.

좋게 생각하자.

그것이 사실은 자신을 즐겁게 바라보며 세상을 긍정적으로 보게 하는 생활의 힘이다.

오늘도 그렇게 웃자.

필자는 컴퓨터를 깊이 알면 알수록 엄청난 사이버 공간에 놀란다.

어떻게 그렇게 많은 것들이 저 공중에 떠다니고 있을까 하는 것이다.

그처럼 많은 전파들이 떠돌아다니면서 접속해 주기를 기다리고 있다.

놀라운 것들이 바로 우리 코 앞에까지 와서 우리가 접속해 주기를 바라고 있다.

그런데 또 하나 놀라운 것은, 이처럼 많은 전파들이 우리 앞에 와 있지만 우리는 우리가 선택한 한 가지만 볼 수 있다는 것이다.

텔레비전 수상기가 한 대밖에 없는 집에서 가끔 남편과 아내가 채널 싸움을 하는 것을 본다.

연속극은 9번 채널에 맞추어야 하고, 스포츠 중계는 5번 채널에 맞추어야 할 경우 아내는 9번을, 남편은 5번에 맞추려고 한다.

물론 다채널을 동시에 시청할 수 있는 기기도 있기는 하지만, 보통의 경우에는 이에 해당한다.

이처럼 엄청난 채널들이 텔레비전 수상기 앞에 와 있지만, 우리가 텔레비전 한 대에서 볼 수 있는 것은 한 채널밖에 되지 않는다.

그러므로 우리들은 수많은 것들 가운데서 한 가지를 선택하면서 살고 있는 것이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의 인격과 인생은 우리들의 선택이다.

어느 채널에 사이클을 맞추는가에 따라서 우리에게 들어오는 지식이 달라지고, 영향이 달라지고, 우리가 무엇을 보는가에 따라서 우리가 어떤 사람이 되는가 하는 것이 결정된다.

오늘은, 내일은, 어떤 것을 선택하여 우리 삶의 주제와 소재로 삼을 것인가?

우리가 숙고해보아야 할 숙제이다.

오늘의 주제를 가을에 어울리는 산국화 꽃을 주제로 해서 시작하다보니 끝까지 정서를 자극하는 줄거리로 이어가게 되었다.

어차피 이런 계절마다 느끼는 감성과 낭만이지만 해가 갈수록, 나이가 들어갈수록, 새록새록 샘처럼 더 간절하게 솟아오른다.

아마도 필자만 느끼는 계절의 멋은 아닐 게다.

‘혼자 있을 때 더욱 신중하고 조심한다’는 뜻의 ‘신독(愼獨)’이라는 단어가 있다.

중국의 고전 ‘대학’에 나오는 말이다.

인생을 살면서 실천하기 어려운 일 중 하나는 ‘남이 보지 않을 때 나 자신을 속이지 않는 것’ 이다.

남들이 보면 잘하는 사람도 남들이 안 볼 때는 나태해지고 해이해지기 쉽다.

자동차공장에서 부품을 조립하는 사람이 신독의 자세로 일한다면 그 사람이 만든 자동차는 최고가 될 수밖에 없다.

주방에서 음식을 만드는 사람이 아무도 안 보는 상황에서 신독의 자세로 일한다면 그가 요리하는 음식은 최고가 될 수밖에 없다.

남이 보든 보지 않든, 자신에게 떳떳하고 당당하고 진실했기에 그 결과는 명품이 되어 나오게 되는 것이다.

어쩌면 진정한 삶의 정답은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바로 우리 곁에 있는지도 모르겠다.

늘 웃으면서, 행복을 가까이 두면서, 사랑과 채널을 맞추면서, 신독의 자세로, 그렇게 알차게 메꾸어가는 날들이 되어진다면 참 좋겠다.

사람다운 사람으로 남은 날들을 살아갈 수 있다면 정말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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