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숲
가을 숲
  • 현진 기자 news@seoulilbo.com
  • 승인 2019.11.03 11:13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림삼의 초대시]

가을 숲

 

어스름해져야

가을 숲은 기지개켜며

한숨섞인 옹알이 시작하지요

 

한낮이 기울도록 보고 듣고 느낀

속세의 지겨운 사연들

가지마다 잎새로 피워 물고서

바람불면 버석이며 긴 근심 토하지요

 

나무마다, 나무마다,

숲으로 난 길 따라

뿌우연 가을 새벽 홀로이 올 때까지 -

 

마치, 애당초 기다리지도 않았던 척

입 아프도록 숭얼거리고선

소리죽여 슬며시 눈을 감지요

 

시의 창

한 해만에 드디어 돌아왔는가 싶더니 어느새 부리나케 떠날 채비를 갖추고서 우리에게 다음 절기를 만나라고 채근을 한다.

본래 가을이란 존재가 그렇게 인정머리도 없이 매몰차기가 한량없다.

늘 그 타령이건만 해마다 속는다.

슬쩍 맛만 보여주고는, 기다림의 해갈에는 반에 반도 채우지 못하곤 하마 가버리려 하다니.

가을 옷 한 벌쯤 새로 장만할 때 되었노라는 가족의 성화에 제법 멋드러진 걸로 골라 빼입은 덕에 모처럼 입성에 자신깨나 붙었는데 아끼다보니 겨우 두어번 밖에는 입지를 못했다.

또 내년이나 기약해야 할 모양이다.

혼자 철 모르는 양 홑옷 입고 사시나무 될 일은 없을테니까 말이다.

아무튼 지금은 삼천리 어딜 가나 가을의 빛깔로 마냥 물들어 온통 미술관이다.

금수강산 어디든 아름답지 않은 곳은 없다만, 한데 좀 허망타.

천지사방에서 불타고 있는 단풍무리가 남하하고 나면 어느새 겨울에 이를 것이다.

게다가 이달부터 전국 주요 산들은 일제히 산불조심 입산통제 기간에 돌입했다.

아쉬움도 이런 아쉬움이 없다.

목하 가을이 꼬리만 남기고 사라져가고 있는 이 때, 그윽하게 물든 만추와 다가올 겨울 그림자를 한꺼번에 목격할 수 있는 어디라도 불쑥 다녀오고 싶은 욕망에 시달릴 때다.

홍엽에 흠뻑 물든 산하를 맛보며 사랑하는 이와 오르는 산행이라면 게서 더 바랄 게 없다.

가을은 남자의 계절이라는 말이 있다.

여름철에 비해 줄어든 일조량 때문에 생체리듬이 깨지기 쉬운데 생체리듬이 불안정하면 누구나 뜻하지 않게 우울감이 든다.

여성보다는 남성이 감정조절에 약하기 때문에 가을이면 남자들이 더 감성적이게 된다.

그래서 가을을 타는 부류들은 이맘 때만 되면 유난스레 멀리 떠나고도 싶고 웬지 모를 추억과 감상에 사로잡혀 헤어나지 못하는 경우가 종종 있게 마련이다.

그러다보니 몸 상태를 무시한 과음이나 과로로 생체리듬을 잃어 질병에 걸리는 수도 제법 있게 되고 스스로를 컨트롤하지 못하여 갑자기 불쑥 늙어버리기도 한다.

알게 모르게 가을 한 철 지나고 나면 없어진 것도, 잃어버린 것도, 떠나간 것도 제법 쏠쏠하여 걷잡을 수 없도록 상실감에 허덕이게도 하니 우리는 이 짧은 가을에 더 이상 흔들리지 말고, 지니고 있는 자아를 꽉 붙들어매는 노하우를 좀 공부해야 할 듯 하다.

실은 그저 어린 시절 느꼈던 설렘과 동경의 대상으로 삼아 가을을 보내면 되는 것이다.

떨어지는 낙엽 한 장, 스치는 바람소리 한 올에도 가슴이 열리고 마음이 흔들리던 그 감수성만 늘상 기억하면 된다.

어떤 일에도 화가 나지 않고, 하루라는 시간이 얼마나 긴지 하루만 살고도 잠 자리에 들 때는 부자가 되어있던 그 넉넉한 날들을 잊지 않으면 된다.

사랑을 몰라도 사랑을 하고, 슬픔을 몰라도 눈물지으며, 세상에는 좋은 사람만 사는 줄 알았던 그 순결한 마음만 간직하고 있으면 된다.

지금은 가지만 언젠가는 또 하나의 가을이라는 이름으로 돌아올 계절들, 시간의 한 자락을 풀어놓자면 아직도 아쉬움이 아물지 않아 허공에 가을 햇살만 허허롭게 날아다니는 느낌이든다면 그 빈 마음에 아름다운 상상과 행복의 꿈을 만들어 채우면 되는 것이다.

 

가을은 정말 많은 이야깃거리와 추억의 재료들을 모두어 우리에게 던져주고 있다.

이것들을 간추리고 다듬어 아름다운 내용으로 엮어내는 것도 우리가 할 나름이고 별 볼 일 없는 허드레 사연이나 남의 눈살을 찌푸리게 할 해악의 요소로 만들어내는 것도 우리들의 요량에 달려있다.

딴에는 한껏 모양새 좋은 작품이랍시고 만들어냈지만 다른 사람들에게 즐거움이나 기쁨을 주기는 커녕 다시는 돌아보기조차 싫은 공공의 적이나 양산하게 되는 삶이라면 그건 보기에도 비참하고 허접하여 너무나도 불행한 일이다.

매일 매일 이어지는 일과들이 늘 똑같은 것 같지만 그 하루들은 언제나 다른 내용의 하루라는 역사를 이어가게 하는 힘이며 근원이 된다.

우리는 언제 어떤 일이 일어날지를 미리 알지 못한다.

그렇기에 그저 순간 순간에 충실하고 최선을 다하는 자세로 삶의 역사를 이어나가야 한다.

그러다보면 불시에 닥치는 사고나 돌발상황에도 효과적으로 대처할 수 있고 능동적이며 주관적인 결과를 이끌어낼 수도 있게 된다.

하인리히 법칙이라는 ‘1 ; 29 ; 300의 공식이 있다.

한 가지의 대형사고가 터질 때에는 그와 연관된 29가지의 수많은 경미한 사고를 수반하게 되며 아울러 300가지의 관련징후가 사전에 일상 속에서 나타난다는 것이다.

이것이 의미하는 바가 실제상황에 정확하게 맞아 떨어지는지는 알 수 없지만 우리가 살면서 맞닥뜨리게 되는 갖가지 사건 사고는, 지나고보면 반드시 사전에 어떤 조짐들이 미리 보여졌거나 징후가 나타났었다는 사실을 경험함으로 놀라게 되었던 적은 주변에 비일비재하다.

그러므로 충동적인 어떤 행동으로 대단한 결과를 기대한다거나 불시에 예상치 못했던 결말을 이끌어낼 것이라는 막연한 삶의 자세보다는 시종일관 신중하고 차분한 삶의 철학으로 자신과 주변의 이웃들에게 안정과 배려를 심어주는 자세가 더 바람직하다고 하겠다.

 

그리고 그런 기본적인 자세를 충분하게 간직하게 되었다면 그 후에는 성의껏 아름다운 자신의 삶에 관한 그림을 그려나가면 되는 것이다.

방법론으로 들어가서 가장 먼저 우리의 웃는 모습을 그려보기로 하자.

얼굴에 웃음이 없다면 아무리 화려한 색을 칠해도 초라한 그림에 지나지 않아 아무도 그 그림은 좋아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므로 가장 먼저 밝은 웃음을 화폭에 그려 넣어야 한다.

다음에는 남을 대접하는 따뜻한 우리의 손을 그리면 된다.

자신의 이익만을 위하여 안으로만 뻗는 부끄러운 손이 아니라 남의 어려움에 조그만 도움이라도 전하는 손, 남의 아픔을 감싸주는 손, 남의 눈물을 닦아주는 우리의 작은 손을 그림에 그려 넣어야 한다.

그리고는 우리의 모습을 주위와 어울리도록 그리면 된다.

우리의 모습이 튀어나와 어울리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주변의 사람들과 환경에 잘 어울리도록 하는 그림을 그려야 한다.

그 후에는 우리 가슴의 사랑을 그리면 된다.

미움과 무관심의 메마른 가슴보다 촉촉한 사랑의 물기가 스며있는 사랑의 가슴을 화폭에 넓게 그려 넣어야 한다.

또한 우리의 얼굴에 맺힌 땀방울을 그리면 좋겠다.

땀방울이 많이 맺힐수록 우리 이름의 아름다운 열매들이 때마다 풍요롭게 맺힌다는 것을 알기에 맺히는 땀방울을 방울방울 자랑스럽게 그림에 그려 넣으면 된다.

그리고는 소박한 우리의 모습을 그리면 그것도 좋겠다.

화려하지 않고 소박한, 거칠지 않고 부드러운, 우리가 하는 일에 잘 어울리는, 건강하고 활기찬 우리의 모습을 그림에 그려 넣으면 된다.

끝으로는 우리 모습의 작은 그림들을 모아 커다란 일생의 액자에 담으면 되는 것이다.

그리고 그 그림들을 보면서 우리를 아름답게 한 웃음, 사랑, 성실, 소박함, 감사, 조화를 잊지 않아야 할 것이다.

그렇게 우리가 그려낸 우리 모습의 그림은 아름다울 것이다.

오늘 하루 맑은 가을의 햇살 속에 더없이 예쁜 나무 한 그루를 가을의 마음에 심어 보는 것도 좋을 듯 싶어진다.

 

오늘 아침 산행에는 특히 더 정이 가는 각종 단풍잎들과 낙엽들이 길동무를 해주는 터에 체력 소모도 적게 아주 너끈히 종주를 하고 돌아나올 수 있었다.

골짜기 주변 산자락은 단풍이 물들어 그야말로 새벽 햇살에 반사되어 온통 황금빛이었다.

조용한 강원도 산골의 가을이 절정을 향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제법 쌀쌀한 날씨에 신발끈을 동여매는 손끝이 약간은 시릴 정도였지만 옹기종기 솟아오른 나지막한 봉우리의 손짓에 마음은 더할 나위 없이 편했다.

바람을 맞고 추락한 낙엽이 산길에 수북했는데 발을 옮길 때마다 부스럭거리는 정겨운 소리가 귀를 즐겁게 했다.

잠시 걷는 것을 멈추고 휴식을 취하고 있으니 도심에서 귀가 따갑게 들려나던 자동차 경적소리 대신 가을임에도 변함없이 노래하는 산새들의 지저귐을 들을 수 있었다.

텃새들의 노래를 들으며 눈을 감고 있으려니 저절로 시상이 떠오르고 서늘한 바람이 송골송골 맺힌 땀방울을 식혀주었다.

열기가 가시자 나무내음, 흙내음, 바람내음이 가만히 코를 간질였다.

은은한 자연의 향을 음미하며 마시는 한 바가지 약수는 그 어떤 청량음료보다도 시원하게 갈증을 해소시켜주었다.

그렇게 산자락을 둘러가는 편안한 길을 따라 천천히 걸어내리며 계절의 전령과 두런두런 대화를 나누면서 상쾌한 산행을 마무리지었다.

이제부터는 하루하루가 다르게 기온이 떨어질 것이다.

그렇게 되면 자신도 모르게 움츠러들고 밖으로 나다니기가 싫어져서 집안에 더 오래 머무르는 시간이 점차로 늘어나게 될 것이다.

그래도 짬이 나고 여유가 있을 때마다 망설이지 말고 집을 나서야 한다.

자칫 가을과 겨울을 지나면서 피곤하고 바빠서라기보다 운동부족이나 나태함으로 오히려 병을 얻게 되는 사람들이 많다고 한다.

적당한 운동이야말로 어떤 불로장생약보다도 효과가 있고 건강 100세 시대로 가는 지름길인 것이다.

 

걸을 수 있을 때 많이 걸어야 한다.

잘 걷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발이 튼튼해야 한다.

물론 사지육신 중에 중요하지 않은 부위는 없지만 특히 우리의 신체를 책임지고 있는, 떠받쳐주고 있는 발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부족하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발은 우리 인체에서 가장 홀대받고 천시 여겨지는 부위이다.

걸음을 걷는다는 것의 일차적인 의미는 이동의 뜻으로 어디론가 옮겨가는 것을 의미하지만 현대인들에게는 그보다 더 필요한 건강의 의미로 해석되어진다.

육체적인 건강은 물론 스트레스 해소를 위해서도 일단 걸어야 한다.

심지어는 할 일이 없을 때는 무조건 걸어야 한다는 말도 있다.

그리고 발의 의미는 비단 신체에 달려있는 한 부위로서의 의미로만 극한되는 것이 아니라 포괄적으로는 사람의 행동이나 처세를 대변하는 의미가 되기도 한다.

같은 발이라는 단어를 사용해도 발 뻗고 자다같은 표현은 단순한 발을 뜻하지만 발 없는 말이 천리를 간다라는 속담에서의 발은 입을 대신하는 표현이며 발 벗고 나서다’ ‘발길이 뜸하다’ ‘발을 뺐다’ ‘발을 끊었다등은 처신을 지칭하고 발이 넓다’ ‘발 빠르게 행동하다라는 표현은 행동을 나타내는 표현이니 그 쓰임새나 방법이 매우 다양한 것이다.

또한 백범 김구선생의 오늘 내가 눈을 밟고 가는 이 발자취가 후세의 길이 되기 때문이다라는 말이나 우리 민족의 가요 아리랑에 나오는 십리도 못가서 발병난다등에서의 발은 은유적인 표현으로 인간성이나 인격을 지칭하는 말이 되기도 한다.

각설하고 우리는 누구나 쉬지 않고 걸어가고 있다.

발로 걷는 걸음걸이 말고도 일생을 살아가는 모습이나 세월을 누리는 행위들이 모두 어딘가를 향하여 걸어가고 있는 것이나 진 배 없다.

그렇다면 우리의 발은 지금 어디를 향하고 있는가?

우리의 발은 지금 이 순간 어디를 딛고 서 있는가?

우리는 과연 부끄러움 없는 삶의 길을 걸어가고 있는가?

우리 자신의 건강과 만족은 물론 사랑하는 우리 가족과 이웃과 동료들에게 좋은 소식, 기쁜 소식, 행복한 소식을 전해주는 축복의 걸음을 걷고 있는가 ?

이 가을의 흐름에 순응하여, 다시 돌아올 다음 해의 가을을 기다리며 부끄럽지 않은 걸음을 걷고 있는 건가?

지금쯤이면 조용한 사색과 반성으로 가을 하루를 되돌아보자.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