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장

남의 일로만 여기던 일이 내게 닥치면 당혹스럽게 마련이다. 하물며 그것이 나 또는 내 가족의 생명과 직결된다면 당혹감은 커질 수밖에 없다. 원활한 장기기증이 안 돼 목숨을 잃는다면 그보다 큰 아픔은 없을 것이다.

‘신체발부 수지부모 불감훼상 효지시야(身體髮膚 受之父母 不感毁傷 孝之始也).’ ‘효경(孝經)’의 한 구절은 수백 년에 걸쳐 한민족의 가슴에 깊이 각인됐다. 그래서 유독 신체를 손상하지 않으려는 집착이 강하다.

터럭 하나 함부로 훼손하지 않으려는 마음은 산 목숨은 말할 나위 없고 실상 죽은 목숨이나 다름없는 뇌사자에게도 같이 적용된다. 그래서 이 나라는 유독 장기기증이 어려운 환경이다.

매년 장기 이식을 통해 생명 연장을 기대하고 있는 수는 빠른 속도로 늘어가고 있지만 기증되는 장기는 그만큼 늘어나지 못하고 있다. 그러다보니 장기 이식을 기다리다 산화하는 목숨이 부지기수이다.

가족끼리 장기를 주고받는 생체이식으로 인해 소중한 목숨이 보존되는 경우가 다른 나라에 비해 높아 다행이지만 기증을 통한 장기 이식은 제자리걸음이다.

이에 따라 의학계에서는 오래 전부터 뇌사자가 생전에 장기기증 의사를 밝히지 않았다면 잠정적 동의로 인정해 이식용 장기의 적출이 가능하게 하는 ‘옵트 아웃제’의 도입 필요성이 꾸준히 제기되고 있다.

옵트아웃제 도입의 결정적 걸림돌은 가족들의 뿌리 깊은 유교의식이다. 몸에 칼을 대고 훼상하는 것이 몸을 물려준 부모에게 가장 큰 불효가 된다는 의식은 장기기증이 정착되지 못하게 하는 가장 큰 원인이다.

뇌사자가 사전에 장기기증 의사를 밝혔더라도 가족들이 반대해 실제 장기기증이 이루어지지 못하는 사례는 비일비재하다. 이는 유교적 관행이 의식을 지배하고 있기 때문이다.

장기를 기증하는 가족이 장기를 기증받는 가족의 입장에서 생각해본다면 상황은 달라질 수 있지만 실상은 그렇지 못하다. 떠나는 가족의 몸을 온전히 보내야 한다는 전통적 의식이 지배적이다.

이에 따라 간절하게 장기기증을 기다리고 있는 소중한 생명을 위해 옵트아웃제의 도입이 절실하다고 전문가들은 뜻을 모으고 있다. 의식의 변화는 느리지만 제도의 변화는 속도를 낼 수 있기 때문이다.

앞으로 장기이식을 기다리는 환자 수는 더욱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지금과 같은 의식변화 속도라면 구제할 수 있는 생명도 맥없이 목숨을 잃어야 하는 일이 발생할 수밖에 없다.

공익광고 등을 통해 대대적인 의식 변화 운동을 펼쳐 안타까운 죽음을 막을 수 있도록 할 필요가 있다. 원활한 장기이식을 위한 환경 조성은 간절한 이들을 위해 더 이상 차일피일 미룰 일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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