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위스 제네바에 있는 WTO 본부 건물. /뉴시스

(이진화 기자) 우리 정부가 일본의 일방적인 수출 규제 조치에 맞서 WTO에서 국제 여론전에 나설 전망이다. 한국의 입장을 설명해 국제적인 공감대를 형성하고 우리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대화의 물꼬를 트겠다는 전략이다.

21일 관련 부처에 따르면 산업통상자원부는 오는 23~24일(현지시각) 스위스 제네바에서 열리는 세계무역기구(WTO) 일반이사회에 실국장급 고위급 파견을 검토하고 있다. 일본 외무성은 일본 측 대표로 야마가미 신고 경제국장을 보내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 WTO 일반이사회에서는 우리 정부의 요청으로 일본 수출규제 조치가 정식 의제로 상정된다. 일반이사회는 2년마다 열리는 각료회의를 빼면 WTO 내 최고 의사결정기구로 164개 회원국이 모두 참여해 중요 현안을 논의하는 자리다.

회의는 의제를 상정한 국가의 대표가 직접 안건을 발표하고 각국의 대표들이 의견을 내놓는 식으로 진행된다. 이런 절차를 통해 일본 측도 반발에 나설 것으로 예상된다.

즉 양국의 대표자 간 설전은 불가피하다. 수출 규제 조치 발표 이후 처음으로 한일 고위급 관료가 공식적인 자리에서 논쟁을 벌이게 되는 셈이다.

그동안 일본은 우리 정부의 국장급 양자협의 요청에 무응답으로 일관해왔다. 앞서 어렵사리 마련한 과장급 양자협의도 설명회로 격을 낮췄다. 그래서 이번 WTO 일반이사회는 국제 여론전의 출발점이라는 성격을 지닌다.

정부는 이사회에서 일본 수출규제 조치의 문제점과 부당성에 대해 설명한다는 방침이다. 또한 이번 조치로 글로벌 공급망과 전 세계 소비자들에게 부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주장도 펼칠 예정이다.

일본 측은 애초에 수출규제 강화 조치가 아니라는 점을 강조할 것으로 예상된다. 앞서 세코 히로시게 일본 경제산업상은 한국에 대한 수출 규제강화를 "수출관리를 적절히 시행하기 위한 국내 운용의 재검토"라고 규정한 바 있다.

최근 일본의 추가 보복책이 나오지 않고 있는 이유도 일반이사회에서 나올 수 있는 국제사회의 비난을 줄이기 위한 것이라는 견해도 나온다.

산업부 관계자는 "이번 이사회에서 결론이 날 수 있는 사안은 아니지만 결과에 따라 국제 여론전에서 유리한 위치를 차지할 수 있다"며 "공감대를 형성해 우리 입장에 동조하는 나라를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고 전했다.

산업부는 이번 일본의 조치에 대한 장기적인 대응 전략 가운데 하나로 WTO 제소를 제시한 바 있다. 이런 점에서 이번 일반이사회는 기선제압 성격도 깔려 있다.

이지평 LG경제연구원 상근자문위원은 "얼마 전 중국이 WTO 관세 분쟁에서 미국에 승소한 점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있다"며 "이사회를 통해 이번 조치의 부당성을 국제사회에 알리고 이를 통해 일본의 변화를 유도할 수 있을 것"이라고 전했다.

다만 WTO 제소의 실효성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는 분석도 있다.

안덕근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는 "정치·외교적인 압력을 행사할 수는 있겠지만 당장 문제가 해결되거나 일본이 조치를 철회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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