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이 10일 청와대에서 열린 ‘경제계 주요인사 초청 간담회’에 참석하며 정의선 현대자동차 수석부회장과 악수하고 있다. /뉴시스

(박진우 기자) 문재인 대통령은 일본 정부가 수출 규제 조치 배경으로 '고순도 불화수소(에칭가스)'의 대북 반출 의혹을 연일 제기하는 것에 대해 강한 우려를 나타냈다.

문 대통령은 10일 오전 청와대에서 열린 30대 그룹 총수 간담회에서 "일본 정부가 정치적 목적을 위해 우리 경제에 타격을 주는 조치를 취하고, 아무런 근거 없이 대북제재와 연결시키는 발언을 하는 것은 양국의 우호와 안보협력 관계에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고 말했다.

문 대통령이 수출규제 조치를 안보 문제와 연결 지으려는 일본의 시도에 대해 언급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문 대통령은 "무엇보다 정부는 외교적 해결을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 일본 정부도 화답해주기 바란다"며 "더 이상 막다른 길로만 가지 않기를 바란다"고 강조했다. 이어 "우리는 국제적인 공조도 함께 추진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문 대통령의 이러한 발언은 한국에 대한 수출 규제가 외교안보 문제와 연관돼 있다는 취지로 여론을 조성 중인 일본의 움직임에 대한 경고의 메시지로 풀이된다.

아베 총리와 일본 정부는 그간 구체적 설명 없이 ‘무기 제조에 전용될 수 있는 에칭가스(고순도 불화수소)에 북한에 흘러 들어갔다’는 의혹을 자국 언론에 흘려왔다.

이날 간담회는 문 대통령이 일본 수출 규제로 인한 기업의 고충을 듣고 현실적인 대처 방안에 대해 논의하기 위해 열렸다.

문재인 대통령은 일본의 반도체·디스플레이 소재 수출 규제와 관련해 "특정국가 의존형 산업구조를 반드시 개선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문 대통령은 "이번 일이 어떻게 끝나든 우리 주력산업의 핵심기술, 핵심부품, 소재, 장비의 국산화 비율을 획기적으로 높여 해외 의존도를 낮추는 계기로 삼아야 할 것"이라며 이같이 말했다.

문 대통령은 "정부는 부품·소재, 장비산업의 육성과 국산화를 위해 관련 예산을 크게 늘리겠다며 "세제와 금융 등의 가용자원도 총동원할 것"이라고 밝혔다.

또 "정부만으로는 안 되고 기업이 중심이 돼야 한다. 특히 대기업의 협력을 당부드린다"며 "부품·소재 공동 개발이나 공동 구입을 비롯한 수요기업 간 협력과 부품·소재를 국산화하는 중소기업과의 협력을 더욱 확대해 달라"고 당부했다.

문 대통령은 사태가 장기화될 가능성도 제기하면서 "매우 유감스러운 상황이지만 모든 가능성에 대비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강조했다.

이어 "전례 없는 비상 상황인 만큼 무엇보다 정부와 기업이 상시적으로 소통하고 협력하는 민관 비상 대응체제를 갖출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며 "주요 그룹 최고경영자와 경제부총리, 청와대 정책실장이 상시 소통체제를 구축하고 장·차관급 범정부지원체제를 운영해 단기적 대책과 근본적 대책을 함께 세우고 협력해 나가자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날 간담회에는 5대 그룹 중에서 정의선 현재차 수석부회장, 최태원 SK 회장, 구광모 LG 회장이 참석했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과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은 해외 출장 일정으로 불참했다.

이 밖에도 최정우 포스코 회장, 김승연 한화 회장 등 30대 그룹 경영자들이 간담회에 참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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