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비꽃 마담
제비꽃 마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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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9.07.01 11: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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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림삼의 초대시]

제비꽃 마담

 

외자락 바람결에도 가슴 떠는

보라 제비 한 떨기

너는 이미 나의 꽃은 아니었네

 

그 누군가를 위해 수줍게 몽오리 져

보랏빛 환희로 꽃엽 피어나곤

석양 노을 붉은 하늘 한껏 어우러진

 

세월 거슬러 피어난 연정

 

계절이 속절 몰라 강물처럼 흐르다가

잎 지고 흔적 쇠한 너의 자죽 쓸어가고

무심한 빗줄기 다른 풀잎 키워낼 제

 

스러진 이슬인 양 애잔스레 빛 바래면

누구라서 기억하여 너의 얼굴 보듬으랴

 

망자의 정분일랑 허망키 이를 데 없어

일분에 십리를 바람인 듯 간다 하나

맺지 못해 시린 가슴 너의 영상 살아남아

바람 새로 영 영 잊힐리야 있을 겐가

 

 

시의 창

사람이 사회생활을 하다보면 표정관리 때문에 애를 먹는 경우가 참 빈번하다.

화가 나도 아닌 척 하면서 미소를 띠어야 할 때도 있고, 웃고 싶으면서도 주변의 여건이나 분위기로 봐서 억지로 참아야 할 때도 있다.

속내를 겉으로 드러내지 않으려고 무진 애를 써야 할 경우가 참으로 많다는 말이다.

누구든지 때로는 속마음을 들켜서 곤란을 당한 경험이 있을테고, 혹은 겉다르고 속다른 행동이 알려지면서 질타를 받은 적도 있을 수 있다.

단적으로 표현하자면 척 하지 않고 살기란 것이 참 쉽고도 어려운 처세술의 하나라는 말이다.

직업상 늘 웃어야 하는 서비스업 종사자나 감정노동자들의 애환을 우리는 종종 매스컴을 통해서 보고 듣는다.

허기사 일상에서도 자주 접하는 예이니까 물론 새삼스러울 것도 없지만 상황에 따라서, 혹은 상대에 따라서 조절을 해야 하는 본능과 감성의 문제는 한 마디로 정의하기가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니다.

필자가 언젠가 세미나를 하기 위해서 타지에 방문했을 때의 이야기이다.

운전을 할 때는 편한 차림이 좋은지라 간편 복장에 운동화를 신는 경우가 많은데, 그날도 양복은 챙겨서 옷걸이에 걸고 급하게 지방으로 이동을 하게 되었던 듯 하다.

첫 타임에 시작되는 강의인지라, 숙소에서 아침식사를 마치고 준비사항을 점검하다보니 실수로 구두를 챙기지 못한 걸 알게 되었다.

그래서 할 수 없이 쌈 직한 것으로라도 한 켤레 구입하려고 인근에 있는 백화점으로 갔다.

아직 문을 열지 않았기에 잠시 기다리고 있자니 마침내 백화점의 개장시간이 되었다.

입구 쪽에 줄을 서있던 사람들이 일제히 매장 안으로 들어섰다.

필자도 떠밀리듯이 대열에 함께 섞여서 우르르 들어갔다.

그런데 갑자기 안 쪽에 있던 백화점의 전 직원이 두 줄로 나란히 도열하여, 일제히 구십도 각도로 허리를 굽혀 정중하게 인사를 하는 것이었다.

수십여 명의 여직원들이 정결한 유니폼 차림으로, 구호소리도 낭랑하고 크게 인사를 하는 터라 적이 당황스럽기도 하고, 황송한 마음에 몸둘 바를 모를 지경이었다.

그런데 급히 가까운 구두매장으로 향하다가 우연히 허리를 굽히고 있는 직원들의 숙인 얼굴을 보게 되었다.

순식간에 여러 명의 얼굴을 동시다발로 스치듯 보던 필자는 그만 아연실색 하고 말았다.

그들은 하나같이 웃음을 잃은 사람들이었다.

얼굴에 웃음끼라고는 전혀 찾아볼 수 없었고, 다른 생기조차도 상실한, 한 마디로 완전히 무표정한 인형의 얼굴들이었다.

백화점을 찾은 고객들에게 감사하며 반가워하는 것도, 백화점에서 일을 하고 있는 자신들에게 자부심이 있는 것도, 그리고 일의 보수를 지급하고 있는 점주에게 고마워하는 마음도 그들에게서는 찾아볼 수 없었다.

그냥 시키니까 억지로 하는 인사였다.

필자는 사실 그 때 충격을 받았다.

그리고 처음으로 들어간 구두 매장에서 짧은 시간에 점원이 골라주는대로, 흥정도 못한 채 그냥 즉석에서 사갖고 나왔다.

혹여 바로 사지 않고 미적거리다가는 된통 욕을 먹거나, 아침부터 재수 없다고 화풀이의 대상이 될 지도 모른다는 공포심에서 부랴부랴 쇼핑을 끝냈다.

참으로 씁쓰레한 경험이었다.

그 뒤로 사람들을 대할 때면 남에게 보이지 않는 얼굴표정은 어떨까 하는 궁금증으로 바라보는 좋지 않은 습관이 생겨났다.

물론 어쩔 수 없는 경우가 있다.

그리고 원치 않는 표정을 지어야 할 상황도 있다.

그러나 속 마음을 숨기고 또다른 가면을 쓰고 살아가야 하는 인간에 관하여 연민의 마음이 드는 건 숨길 수 없다는 것도 사실이다.

우리는 매일 아침에 직장이나 삶의 터전으로 나가면서 사람들과 인사를 나눈다.

똑같은 아침 인사를 서로 나누게 되지만, 전날 밤에 각자가 지고 있던 삶의 무게가 어떠했는지, 건강 상황이나 심신의 상태가 어떤지에 따라서 사람들의 표정은 천태만상이다.

본인만 모르는 표정의 전시장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그것이 아침의 풍경이다.

웃고는 있지만 누가 봐도 어색한 미소로 건네는 아침인사는 보는 사람들을 불편하게 만든다.

가식적인 표정으로 숨길 수 있는 게 있고, 감추지 못하는 게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매너라는 이름으로, 에티켓이라는 주제로, 처세술이라는 제목으로, 자신의 짐과 스트레스를 스스로 누르면서 오늘도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얼마 전 한 고등학생과 상담을 한 적이 있다.

지인의 부탁으로, 소위 조금은 문제아의 반열에 오른 학생이었다.

같이 식사를 했고, 이어진 스낵 코너에서의 대화 도중 그 학생이 이런 말을 했다.

도저히 상상도 못한 일이 두 가지나 벌어지고 있어서 놀랍다는 것이었다.

하나는 할아버지 같은 어른과 대화가 잘 통한다는 사실이고, 다른 하나는 어른인데도 전혀 가식적이지 않아서 놀라고 있다는 것이었다.

이게 무슨 소리인가?

그렇다면 기성세대는 모두 대화의 상대가 안되고, 어른들은 하나같이 거짓말쟁이라는 건가?

그러고보니 그 학생의 눈으로 바라보는 세상의 문제는 그 학생에게 있는 것이 아니고, 바로 문제아로 규정짓고 있는 어른들에게 있는 셈이었다.

서로 간에 대화의 단절이 불러온 괴리라면 바로 대화의 재개로써 풀 수 있는 것이다.

비단 세대 차이에서 유발된 대화의 문제만이 아니다.

가식이 아닌 진실과 진솔의 대화야말로, 척 하면서 살아가는 현대인에게 절실하게 요구되는 과제 중의 하나이다.

가족 간에도, 사회생활에서도, 연인이나 사제지간에까지, 모두 가식의 옷을 벗고 안으로 충만한 진심을 먼저 회복한 후에 마주하면 진정한 대화의 통로가 열리게 될 것이고, 그것이 사람이 살아가는 덕목 중의 대표가 될 수 있는 것이다.

안으로 충만해지는 일은 밖으로 부자가 되는 일에 못지 않게 인생의 중요한 몫이다.

인간은 늘 안으로 충만해 질 수 있어야 한다.

우리는 아무 잡념 없이 기도를 올릴 때 자연히 마음이 넉넉해지는 것을 느낀다. 

그 때는 삶의 고민 같은 것이 끼어들지 않는다.

마음이 넉넉하고 충만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마음이 가난한 사람은 겉으로는 번쩍거리고 잘사는 것 같아도 정신적으로는 초라하고 궁핍하다.

크고 많은 것만을 원하기 때문에 작은 것과 적은 것에서 오는 아름다움과 살뜰함과 고마움을 잃어버렸다. 

행복의 조건은 무엇인가?

바로 아름다움과 살뜰함과 고마움에 있다.

필자는 향기로운 차 한 잔을 통해 행복을 느낄 때가 있다.

삶의 고마움을 느낄 때가 있다.

산길을 가다가 무심히 피어 있는 한 송이 제비꽃 앞에서도 얼마든지 필자는 행복할 수 있다.

그 꽃을 통해 하루의 일용할 양식을 얻을 수 있다.

또 다정한 친구로부터 들려오는 목소리, 전화 한 통을 통해서도 필자는 행복해진다.

행복은 이처럼 일상적이고 사소한 데 있는 것이지 크고 많은 데 있지 않다.

마음이 충만한 사람은 행복하다.

성경에도 나오듯이 하늘나라가 그들의 것이다.

남보다 적게 갖고 있으면서도 그 단순함 속에서 아무 부족함 없이 소박한 기쁨을 잃지 않는 사람이야말로 충만의 화신이다.

또한 진정으로 삶을 살 줄 아는 사람이다.

그 어떤 어려운 상황에서도 생의 소박한 기쁨을 잃지 않는 것, 그것이 바로 삶을 살 줄 아는 것이다.

그것은 모자람이 아니고 가득 참이다.

내면에 진실로 충실할 수 있는 사람이 과연 얼마나 될까?

흔히들 난 그래도 조금 낫다, 이 정도면 괜찮은 거 아닌가?’ 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난 왜 맨 날 이 모양 이 꼴이란 말인가?’ 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실제 우리의 내면 속에 간직되어진 무한한 가능성이 잠재해 있을텐데 말이다.

남이 갖지 못하는 것, 본인만이 갖고 있는 것들이 많아도 그 가득한 것들을 찾는다는 게 조금은 힘들고 어렵게 느껴지나 보다. 

우리 안에 가득한 행복을 조금씩 찾아가고 그 행복에 충만된 하루 하루가 되길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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