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오른쪽)과 아베 일본 총리가 지난해 9월 미국 유엔총회 때 한일 정상회담을 갖고 있다. /뉴시스

(박진우 기자)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의 한일 정상회담이 무산됐다. 청와대는 문재인 대통령이 출국하기 이틀 전에야 한일 정상회담 무산을 공식화했다. 이는 정상회담 무산과 관련된 복잡한 내막이 반영된 결과로 보인다.

우선 문 대통령이 한일 정상회담을 적극 추진하기엔 어려움이 있었을 것으로 보인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강제징용 배상 판결 등을 정치 쟁점화 하려는 의도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청와대 고위관계자는 지난 25일 "G20 기간에 한일 정상회담은 이뤄지지 않을 것"이라며 "우리로서는 항상 만날 준비가 돼 있지만 일본이 아직 준비가 안 된 것 같다"고 말했다.

청와대가 한일 정상회담 성사 여부에 대해 공식적으로 언급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청와대는 그동안 "확정된 바 없다"며 줄곧 가능성을 열어뒀다. 그러다가 무산 책임은 한국이 아닌 일본에 있다는 점을 공개적으로 밝힌 것이다.

청와대의 이러한 태도는 일본 보수 언론의 보도 행태와 무관치 않은 것으로 보인다. 아사히·산케이 등 일본 언론을 통해 한일 정상회담 무산에 대한 불리한 여론이 조성되는 것을 막고자 했을 수 있다.

아사히는 지난 12일 "강제징용 문제로 G20 때 한일 정상회담 개최는 어려워지고 있다"며 "만일 한일 정상이 접촉한다면 단시간 서서 이야기 하는 형식이 될 가능성이 높다"고 보도했다.

산케이는 지난 19일 "일본 정부는 한국 측이 관계 개선을 위한 구체적인 움직임을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는 문재인 대통령과 성과 있는 회담을 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며 "G20 기간 중 한일 정상회담을 개최하지 않기로 한 방침을 확정했다"고 보도했다.

그런데 청와대는 그동안 물밑 협의가 이뤄지고 있다는 점을 강조하며 "확정된 바 없다"는 입장을 유지했다. G20 기간 중 약식 회담 형태로 정상회담이 성사될 가능성은 열어뒀다. 마지막까지 정상회담을 추진해 보겠다는 의지가 있었던 것으로 볼 수 있는 대목이다.

청와대 고위관계자는 "(G20) 현장에서 일본 측에서 만나자고 요청을 해오면 우리는 언제든지 아베 총리를 만날 수 있다"고도 말했다.

하지만 일본 정부는 양자회담 제안을 하지 않았다. G20 주최국으로서 양자 회담을 제안하지 않은 일본 정부 탓에 무산됐다는 게 청와대의 설명이다. 하지만 복잡하게 얽힌 한일 양국의 이해관계 속에 피차 소극적이었던 게 아니냐는 관측도 제기된다.

문 대통령 입장에서는 G20 이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의 한미 정상회담이 예정돼 있고, 본격적인 북미 비핵화 대화 재개를 위한 노력에 집중하기 위해 당장 급한 현안이 걸려있지 않은 한일 정상회담을 후순위로 미뤘을 수 있다.

강제징용 배상 판결 문제를 중재위원회에서 풀자는 일본의 제안에 우리 정부가 한일 기업이 참여하는 기금 조성으로 해결하자며 역제안 하는 것으로 최소한의 명분은 갖췄다는 평가다.

아베 총리로서는 한 달 앞으로 다가온 참의원 선거를 위해 한일 정상회담을 정치적으로 활용하는 것 외에는 필요성이 없었다. 따라서 가시적 성과를 담보하기 힘든 양자 회담을 무리하게 추진할 이유가 없다는 현실론이 지배적이다.

청와대는 당분간 냉랭한 한일 관계 회복을 위해 전면에 직접 나서기보다는 현재와 같이 외교부와 국무총리실을 중심으로 풀어간다는 방침인 것으로 알려졌다. 과거사 문제와 미래지향적 협력은 별개의 사안으로 '투 트랙'의 접근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청와대 관계자는 "우리가 한일 양국 민간기업의 자금을 출연하는 형태로 풀자고 제안한 것은 관계 개선을 위해 전향적인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고 봐야한다"며 "이를 수용하느냐의 여부는 전적으로 일본 측에 달려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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