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한 은행원이 위안화와 달러화를 손에 들고 있는 모습./뉴시스

(이진화 기자) 원·달러 환율이 1200원선에 육박하며 우리 경제에 미칠 영향을 두고 갑론을박이 한창이다.

지난주 서울외환시장에서는 원·달러 환율이 1195원 선을 넘어서며 7거래일째 연고점을 갱신하고 있다.

원·달러 환율이 1200원선을 훌쩍 뛰어넘을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점점 더 커지고 있다. 다만 이 같은 원화 약세가 외국인 자본유출 등 경제에 악영향만 주는 것은 아니라는 의견도 나온다. '디플레이션'(Deflation) 가능성을 줄여주는 긍정적 측면이 있다는 것이다. 이와 함께 수출기업의 원가경쟁력이 높아져 기업의 실적 개선에 도움을 줄 수 있어 원화 약세가 반드시 나쁜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19일 업계에 따르면 원달러 환율은 지난 한 달간 60.9원(5.3%) 올랐다. 장 마감 기준 지난달 17일 1134.8원이던 환율은 지난 17일 1195.7원까지 올랐다. 7거래일 연속 상승한데다가 지난 2017년 1월11일 이후 약 2년4개월만에 가장 높은 금액이다.

일각에서는 환율 상승이 경제 문제로 불거진 디플레이션 우려를 해결하는 데에는 도움이 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수입 물가나 수입 원자재를 사용한 최종재의 물건 가격이 올라가기 때문이다.

디플레이션이란 물가가 지속적으로 하락해 경제활동이 침체되는 현상을 의미한다. 디플레이션이 발생할 경우 소비와 투자가 줄어 기업활동이 정체되고 실업자가 늘어날 수 있다.

지난 2일 통계청에 따르면 물가상승률은 지난 1월이래 4개월째 0%대를 기록하고 있다. 이에 지난 6일 현대경제연구원은 현 상황을 '준(準) 디플레이션'으로 정의했다. 8일에는 조동철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 위원이 "디플레이션 위험이 커지고 있다"고 경고하기도 했다.

환율이 오르면 다양한 경로를 통해 물가를 부양한다. 우선 수입 물가가 오른다. 환율이 1달러당 1100원에서 1200원으로 오르면 같은 달러 가격의 수입물품 가격도 100원 오르기 때문이다. 수출 물가 역시 상승한다. 수출물가를 계산할 때 원화를 이용하는데 달러당 원화 가격이 오르면 수출 물가 환산 가격도 같이 상승하게 된다.

수입 원자재를 이용해 만든 최종재 가격도 오르게 된다. 예를 들어 환율 상승으로 인해 원유 가격이 오르면 원유를 가공해 만든 휘발유나 경유, 플라스틱 등의 제조비가 상승해 최종재 가격에도 영향을 미친다.

다만 물가에 영향을 주기까지는 일정기간 시간이 걸릴 전망이다. 일반적으로 수출입 납품 계약 등은 6개월이나 1년 등 장기 단위로 이뤄지기 때문이다. 또한 국내 기업들이 환율 변화를 바로 최종 소비자 가격에 반영하기는 어렵기 때문에 물가에 바로 반영되진 않을 것으로 보인다.

일각에선 오히려 경기가 침체되는데 물가는 오르는 '스태그플레이션'(stagflation) 현상이 발생할 수 있다고 지적하기도 한다. 한 전문가는 "아직까지 환율 상승이나 경제 침체가 심각한 상황은 아니지만 지속적으로 환율이 오르고 경기 둔화가 장기화될 경우 그런 가능성도 있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국내 완성차 업계에선 내심 원화 약세를 반기는 듯한 모습도 감지된다. 국산자동차의 수출 경쟁력이 되살아나고 있는 것으로 나타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 3개월간 원·달러 환율은 5%대의 가파른 상승세를 이어갔다. 아르헨티나 페소, 터키 리라, 브라질 헤알 다음으로 상승폭이 컸다. 반면 중국과 대만, 싱가포르, 태국 등은 1% 상승세에 그쳤다. 한국 원화가 유독 약세를 보인 것이다.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미중 무역전쟁으로 안전자산 선호도가 높아진 것이 주요 원인이지만 한국 경제 성장 전망이 글로벌 시장에 비해 더욱 부정적인 것도 영향을 미쳤다"고 설명했다.

메리츠종금증권 김준성 연구원은 최근 '자동차-환율변동에 따른 이익민감도 중간점검' 보고서를 내고 "원화 약세는 외화부채 평가손실의 근거가 되기도 하지만 수출기업의 원가경쟁력 강화를 통한 판매량·수익성 증대로, 실적 개선에 기여하는 바가 더 크다"고 설명했다.

김 연구원은 "원·달러 환율이 10원 더 약세를 보이고 기타 통화들도 원·달러와 동일한 폭으로 약세가 진행된다고 가정할 때 기아차는 5.5%, 모비스는 2.9%, 현대차는 2.7%, 한온은 2.3% 위아는 1.9%, 만도는 1.2% 영업이익 상승효과를 보게 될 것"이라고 분석했다.

그는 "올해 신차 판매호조로 2015년 이후 4년 연속 역성장해온 현대·기아차의 국내공장 수출판매가 지난 1분기 8%로 성장 전환했다"며 "2분기 첫 달인 4월에도 양사 합산 전년 동기 대비 9%(현대차 5%·기아차 13%)의 수출 판매증가가 이뤄졌으며, 우호적 환율 환경과 팰리세이드·코나 등 신차 투입 확대 등이 지속되면 이같은 성장흐름이 이어질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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