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9일 서울 송파구 공인중개사 사무실 앞에는 ‘급매’ 안내 게시물이 부착돼 있다. /뉴시스

(이진화 기자) 서울 '집값 바닥론'이 힘을 받고 있다. 아파트값의 낙폭이 시간이 갈수록 줄고 있는데다 속속 발표되는 통계지표도 이를 뒷받침하고 있다. 그렇다고 서두를 건 없다는 게 전문가들의 진단이다.

다만 지난해 단기 급등한 것과 달리 하락 속도는 더뎌 실수요자들의 애를 태우고 있다. 청약시장도 수백대 1의 경쟁률을 뚫어야 하는 데다 고분양가 논란, 광역교통망 착공 등 변수가 많은 상황. 수요자들의 내 집 마련 셈범도 복잡해질 수밖에 없게 됐다.

주변 시세보다 낮은 공공택지 물량에 대한 수요자들의 관심은 뜨겁다. 정부와 지자체가 내년부터 수도권에 순차적으로 분양하는 공공택지 물량은 '수도권 30만호'를 포함해 모두 36만2000호다. 그러나 북위례 등은 청약자가 대거 몰린 반면 인천 검단 등은 미분양이 나는 등 온도차가 크다.

12일 부동산 전문가들의 말을 종합하면, 우선 서울 집값이 급격한 하락세가 나타나긴 어련다는 점에서 내 집 장만을 서두르지 말라는 의견이 대세다.

여전히 무거운 양도소득세 중과와 당초 예고보다 가벼운 보유세로 다주택자들의 소유의 매물 출현이 제한적이다. 보유세 과세 기준일인 6월1일 이전 다주택자들의 막판 급매물이 쏟아질 수도 있으나 사실상 가능성은 낮을 것이라는 평가가 많다.

오히려 봄 이사철 등 계절적인 수요로 연초 대비 시장이 회복세를 나타내고, 경기 위축 국면으로 추경 논의까지 진행되고, 신흥국 기준금리 인하 기조 속에서 급격한 이자부담 증가에서는 벗어나는 분위기다.

반면 전월세 시장은 유래 없는 안정세다. 수도권과 서울의 연평균(2018년~2022년) 아파트 입주물량은 각각 24만9000호, 4만3000호로, 5년 평균보다 30~40% 정도 많기 때문이다. 향후 최소 2년간은 낮은 주거비용으로 안정적으로 거주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된 것이다.

무리해서 서두를 이유는 전혀 없다는 의견이 주를 이룬다.

함영진 직방 빅데이터 랩장은 "올해도 공급물량이 많아 집값이 오르기보다는 조정되는 양상이지만, 서울 등 특정 지역은 낙폭이 둔화 내지 보합으로 옮아가는 분위기"라며 "지방보다는 수도권을 내 집 마련의 타깃으로 하되, 급할 것은 전혀 없고 본인 자금 사정을 따져서 전세가율(매맷가 대비 전세가격) 60% 수준에서 급매물을 노리는 편이 좋다"고 말했다.

양지영 양지영R&C연구소장도 "시장은 앞으로 더 안 좋아질 것이기 때문에, 기다릴 수 있을 때까지 가격 조정을 대기해 야한다"면서 "특히 갭투자자들의 접근이 많았던 입주물량 증가하는 지역에서 급매물 위주로 접근하고, 경매를 통해서도 내 집 마련 전략을 고민하는 것도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이 같은 상황에서 정부의 잇딴 청약제도 개편은 내 집 마련을 준비 중인 실수요자에게는 단비 같은 소식이다.

정부와 지자체는 내년부터 남양주진접(1만2600호), 시흥거모(1만1100호) 등 주거복지로드맵, 청년·신혼부부 주거지원방안을 통해 발표한 신혼희망타운 등 14개 지구 6만2000호를 공급할 예정이다. 또 최근 확정된 수도권 3기 신도시 등 30만호 공급방안에 따라 중소규모 택지는 내년부터, 고양창릉(3만8000호), 남양주왕숙(6만6000호), 부천대장(2만호), 인천계양(1만7000호), 하남교산등 수도권 3기 신도시는 2022년부터 공급에 나선다.

하지만 치열한 경쟁을 뚫어야 해 낙관할 수 없는 상황이다.

특히 대출규제에 막혀 여전히 분양 문턱이 높다.정부가 지난해 무주택자의 내집 마련 기회를 확대하겠다면서 무순위 청약 등 개편에 나섰지만 '현금부자' 위주의 시장으로 전락했다.

예비당첨차 확대 등 제도 개선안을 마련한 상태지만, 이제는 '점수부자' 중심의 시장이 열리게 됐다.

박원갑 KB국민은행 WM스타자문단 부동산전문위원은 "수도권 30만 가구가 공급되더라도 철저하게 장기 무주택자에게 돌아갈 가능성이 높다"면서 "또 인기지역은 된다는 보장도 없어 한층 내 집 장만 전략 짜기가 어려운 시장이 됐다"고 말했다.

박 위원은 "서울 집값의 급격한 하락을 기대하기도 쉽지 않다"면서 "현재로서는 장기 무주택자의 틈바구니에서 당첨 확률을 높이기 위해, 당분간 자격조건을 획득하고 가입기간을 늘리는 데 주력하는 수밖에 없을 것 같다"고 말했다.

권일 부동산인포 팀장도 "공공택지 물량은 자격조건이 중요하기 때문에 거주를 이주한다든지 청약 당첨 확률을 높이기 위한 대응이 필요하다"면서 "예비청약비율 확대로 무주택자 청약 여건이 좋아졌기 때문에 무리하지 않는 수준에서 적극적으로 청약에 나서는 것이 좋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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