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이 교착상태에 빠진 북·미 비핵화 협상 재개를 위한 한·미 정상 간의 '톱다운' 외교전을 시작했다. /뉴시스

(이진화 기자) 문재인 대통령이 교착상태에 빠진 북·미 비핵화 협상 재개를 위한 한·미 정상 간의 '톱다운' 외교전을 시작했다. 이번 한·미 정상회담은 '하노이 노딜' 이후 북·미 대화 재개 여부를 판가름하는 중요한 분수령으로 평가된다.

문 대통령은 10일(이하 현지시각) 미국 워싱턴DC에 도착 1박3일간의 방미 일정에 들어갔다.

이런 가운데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이 11일(현지시간) 열리는 한·미 정상회담을 앞두고 "(대북 제재에) 약간의 여지를 두고 싶다"는 발언을 내놓으면서 양국 정상이 북한 비핵화 해법을 내놓는 데도 긍정적 요인이 될 것으로 기대감이 높아지고 있다.

폼페이오 장관은 10일 상원 외교위원회 청문회에 출석해 '북한이 완전하고 검증가능하며 불가역적인 비핵화(CVID)에 대한 약속을 입증하기 전까지 제재 해제를 하면 안된다는 데 동의하느냐'는 질문을 받고 "나는 약간의 여지를 남겨두길 원한다"고 답했다.

이 같은 폼페이오 장관의 북한 관련 발언은 하루 만에 크게 바뀐 것이다. 일각에서는 폼페이오 장관의 발언 수위 조절이 대북 제재에 유연성을 발휘할 수 있음을 시사한 것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문 대통령은 정상회담에 앞서 폼페이오 장관과, 존 볼턴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 마이크 펜스 부통령을 차례로 만날 예정이다. 또 2시간에 걸쳐 트럼프 대통령과 단독·확대 정상회담과 업무 오찬 등을 한다.

문 대통령은 정상회담에서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는 양국의 입장을 조율한 '굿 이너프 딜' 방안을 설득하는데 주력할 것으로 보인다.

북·미가 비핵화의 모든 프로세스가 담긴 로드맵을 작성하고, 이에 대한 포괄적 합의를 먼저 이룬 뒤 단계별로 상응 조치를 교환할 수 있다는 게 청와대의 구상이다. 또 이번 정상회담에서 북한이 영변 핵시설 폐기에 풍계리 핵실험장 검증 등 '알파(α)'를 수용하고 미국이 이에 상응하는 조치를 주고받는 구체적인 해법도 논의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한편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한반도 비핵화' 협상 국면을 자신의 구상대로 끌고 가기 위해 안팎으로 배수진을 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김 위원장은 지난 10일 당 중앙위원회 제7기 제4차 전원회의에서 지난해 비핵화 결단 이후 내부 우려를 무마시키며 '하노이회담'을 강행했으나 성과를 내지 못하게 되자 공개 석상에서 회담 과정 전반을 설명하며 전략적 노선을 바꾸지 않을 것임을 분명히 했다고 조선중앙통신이 11일 보도했다.

또한 '자력갱생'으로 제재 국면을 돌파하겠다는 의지를 밝힘으로써 내부 결속을 독려하는 동시에 '미국의 계산법'을 수용하지 않겠다는 대외 메시지도 우회적으로 냈다.

김 위원장이 이번 전원회의에서 2차 북미 정상회담 취지를 설명하고, 이에 대한 당의 입장을 밝힌 것은 더 이상 수뇌부의 의지만으로는 현재의 엄중한 상황을 관리하기 쉽지 않게 됐다는 판단에 따른 행동으로 풀이된다. 권력층의 커져가는 의구심을 누그러뜨리기 위해서는 제한된 정보에 따른 오해를 미연에 방지할 필요성이 커졌다는 것이다.

홍민 통일연구원 북한연구실장은 "김 위원장이 (미국과의) 협상 판을 깨지 않겠다는, 전략적 노선을 번복하지 않겠다는 당의 전략을 밝히면서도 '제재'로 목을 죄는 방식의 협상에 굴하지 않고 가겠다는 배수진을 친 것"이라며 "내부적으로는 대북제재가 장기화될 경우 경제적으로 궁핍한 상태가 오래갈 수 있으니 자력갱생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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