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춘 그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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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9.02.11 09: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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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림삼의 초대시]

입춘 그리기

입춘날 아침이면
보여지는 모두 모두 촉촉하여라.
초목은 하나되어
환희로 새움 트고
흩날리는 노래들 소리 소리 마다엔
배어나는 생명일랑 꿈으로 피리.

길고 긴 겨울자욱 질곡 벗어나
신록 글썽이는 감촉
벅찬 향기 들으며
오늘 단 하루라도,
오늘 하루 만이라도,
희망에 들떠 들떠 그리 살으리.

너른 창공 비상하는 저 꾀꼬리도
입춘 노래 부르는 폼새
절기 아는 양
힘찬 날갯짓에 기운 서리니
봄이 오누나 꾀꼴 꾀꼴
새 봄 오네 꾀꾀꼴 -

 

시의 창

지난 주에 이미 입춘을 지나쳤다.

그러고보니 어느새 물경 봄의 내음이 천지에 지천이다.

24절기 중에서 가장 먼저의 자리를 차지하는 절기가 바로 입춘이다.

물론 1년을 주기로 계속해서 이어지는 절기인지라 실질적인 순서는 정하기도 애매하고 4계절 중에서 봄을 가장 먼저 칭하는 것은 맞지만 한 해가 시작되는 1월은 겨울의 한 가운데에 자리매김되어 있기 때문에 사실상의 차례가 다소 무의미하기는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두들 봄을 시작의 의미로 생각하고 인정하는 게 사실이다.

그래서 봄이 되면 모두들 심정적으로 조금은 흥분하고 신선한 충동에 빠져들기도 하며 무언가를 다시 시작하고픈 소박한 욕망에 사로잡히곤 한다.

하물며 시작을 시작하는 입춘임에야 -

이른바 ‘시작’이라고 하는 건 아직 아무것도 일어나지 않은 상태에서의 첫 번째 느껴지는 태동이나 보여지는 변화를 의미한다.

그리고 그 상황을 기점으로 소위 모든 것이 전개되고 바야흐로 새로움이라는 제목을 붙일 일들이 하나씩 벌어진다는 뜻인 것이다.

계절의 시작이 봄이듯이 어떠한 시간의 개념에도 시작은 있기 마련이다.

하루의 시작인 새벽을 깨우는 닭의 울음소리를 생각해본다.

아무런 의미도 없이, 아무런 목적도 없이, 그저 그렇게 아침마다 반복된 울음소리를 내고 있는 것이라면 그건 정말 안타깝고 비극적인 일이다.

그리고 만일 우리의 삶이 이와 같다면 그도 역시 참으로 애통할 만한 일이다.

새 봄이 왔는데도, 새 달이 시작되었는데도, 또 다른 하루가 열렸는데도 어제와 달라진 것이 없는 오늘을 기계적으로 끊임 없이 살아간다면, 지난 주와 다름없이 이번 주의 일과가 그렇게 맥없이 줄 서 있다면, 우리는 그런 삶을 보면서 결코 생명력 있는 오늘을 누리고 있다고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물론 변화라는 것이 모든 영역에서 일괄적으로 타당하게 그 가치를 단편적으로 적용시킬 수 없음은 자명하다.

그러나 매일 매일의 삶에 작은 미동의 변화도 없이, 주체의식은 배제된 채 피상적인 날들을 나열하듯이 맞이하고 보낸다는 건 우리의 삶에게 부끄러운 일임에 틀림없다.

너무 편안하고 안정된 삶의 단면만을 추구하다보니, 그런 통념에 오랜 시간 머무르며 호흡하다보니 그저 습관처럼 맹목적으로 익숙해지고 무뎌져버린 건 아닐까 ?

겉으로는 풍족하고 편리한 삶을 살아내고 있는 것 같아 보여도 내면을 들여다보면 진정한 삶의 기쁨과 희망, 정열의 환희 등은 경험하지도 못한 채 하루를 보내고 마치 남의 삶을 구경하듯이 자신의 삶을 그럭저럭 살고 있는 사람이 너무 많은 게 사실이다.

어찌보면 ‘살아 있다’라는 이름은 가졌으나 움직이지 못하고 머물러 있는 상태인 ‘살아있지 못하다’는 면목을 지니고 있으면서도 자각하지 못하게 된 것이다.

그래서라도 필자는 이 새봄의 역사적인 시점에 즈음하여 다시 한 번 깨닫고 다시 한 번 활발하게 날아오르자는 의미에서 ‘재기 (再起)’라는 화두를 제시하고자 한다.

우리는 이제부터 어제와는 다른 오늘을 일어나 살아야 한다.

그럼으로 이전의 게으르고 나태하며 폐쇄적인 삶의 모습을 직시하고 인정하며 묵은 옷, 두꺼운 옷을 훌훌 벗어던지면서 과감하게 햇살을 향해 나아가는 재기가 우리들 가운데 있어져야 하는 거다.

우선은 하늘을 올려다보며 행복한 마음 속에 뜨거운 심장의 맥박이 뛰도록 해야 한다.

그러면 새 생명이 움트는 소리가 들려날 것이다.

시큰둥하게 인사치레로 새 봄을 말하지 말고 바로 자신에게 새 생명의 역사가 일어날 좋은 조짐의 소식으로 봄을 맞이하며 노래해야 한다.

그런 가운데 잠자던 심장은 다시 고동치기 시작할테고 온 몸의 실핏줄까지 생명과 희망의 피가 콸콸거리며 흐르게 될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이제부터 전보다는 훨씬 더 밝게 사고하는 습관을 길러야 한다.

들에 피는 꽃을 자세히 관찰해보면 햇살이 비치는 쪽을 향해 피는 것을 알 수 있다.

또한 꽃을 실내에 꽂아두어도 빛이 들어오는 쪽으로 방향을 바꾸어 피어나는 것을 우리는 보게 된다.

감정이 없는 식물까지도 밝은 쪽을 좋아하는 것이다.

그런데 하물며 인간이라면 누구든지 태생적으로 음 보다는 양을 좋아하는 것이 당연지사다.

우울하고 어두운 삶을 사는 사람은 호감을 사지 못한다.

반면에 밝고 쾌활한 사람의 주변에는 사람들이 몰리게 되어 있다.

웃으며 명랑하게 살아도 한 평생, 어두운 얼굴을 하고 탄식만 하면서 지내도 한 평생, 어차피 한 번뿐인 인생이라면 누구든지 매일매일에 즐겁고 신나는 일만 있어지기를 바랄 것이다.

그렇다면 스스로 일상 속에 즐거운 일, 신나는 일이 생겨나도록 노력해야 한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어째서 우리는 틈만 나면 우울해지고 걱정 근심에 인상을 찌푸리기를 즐겨 하는지 모르겠다.

무슨 일에서나 남의 탓을 하고 주변이나 여건의 핑계를 대면서 웃을 수 없는 이유를 나열하는 버릇에 흠뻑 빠져 있는 건지 모르겠다.

많이 웃고, 많이 기뻐하며 밝은 미소의 사고방식을 습관화하는 삶으로 살아야 할 것이다.

알게 모르게 우리 스스로가 만들어오고 이어온 우리네 삶의 얼굴, 어쩌다 보니 실수와 넘어짐의 반복 뿐이던 일상, 그래서 그런지는 몰라도 실패만 되풀이되던 시간들, 그런데도 불구하고 그냥 그게 인생이려니, 남들도 다 나와 같으려니 하면서 우리는 오랜 세월을 보내왔다.

새 삶에 대한 기대나 소망은 애저녁에 포기한 채로 말이다.

그러나 이제는 다르다.

우리에게 지금 경쾌한 율동으로 새 봄이 오고 있으며 우리 삶에 새로운 기회의 장이 활짝 열리고 있는 것이다.

긴 긴 겨울의 질곡에 굳게 뿌리박고 서서 이제까지 우리의 길을 막던 난관과 역경의 그림자가 걷우어지고 새 삶을 열어줄 새 소식의 소망을 가득 담은 새 봄이 우뚝 일어서고 있는 모습이 지금 생생하게 보여지고 있다.

저기 우리에게 삶의 재기를 권유하며 새 봄이 따스한 손을 내밀고 있다.

그리고는 늦기 전에 얼른 힘차게 이 손을 잡으라고 목청 높여 소리한다.

목하 입춘지절이 하마 도래한 누리로구나.

立春大吉 建陽多慶, 萬事如意亨通이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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