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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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9.01.31 1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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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림삼의 초대시]

믿음

 

야훼여 !

저는 벌거벗고 있습니다.

 

삭풍이 다릿가지를 시리게 하는

빈 들판에서

알몸뚱이로 머물러 있습니다.

 

때론

머리 풀어 헤친 광풍이

한 줌 씩 모래를 눈으로 던져 올리고,

날아가다 걸릴 데 없는 파지쪼가리가

오직 불쌍한 마음 동원하여

치부를 가리워줄 뿐 저는

아무 곳에도 숨을 수 없습니다.

 

호산나 찬미하던 종려나무 가지도

성문 앞 보리수 그늘도 아닌

비록 찔리워 피 흘릴지언정

단 한 그루의 가시나무조차도 저에게는

벗 하도록 허락되지 않습니다.

 

혓바닥 날름대며 사탄의 말 하는

한 마리 뱀으로 남아

저주 받은 생명 이어 가야 하는 거라면,

야훼여 !

저에게 한 벌 옷이라도 남겨 주소서.

 

곱게 곱게 챙겨 두었다가

당신이 거두시어 다시 뵈올 그 날에

당신의 이름으로

정성스레 입겠나이다.

 

시의 창

목하 겨울의 한 가운데, 1월 하순이다. 이제 이번 주발이면 민족 최대의 명절인 음력 설 연휴가 시작된다. 각자 고향으로 떠나는 귀성행렬들로 인해 전국의 도로들이 몸살을 앓게 되겠지만, 이 기간을 통해서 분주하던 일상을 잠시 접고, 마음도 몸도 힐링을 경험하는 그런 기회로 삼기 위해서 모두들, 최상의 시간표와 코스를 궁리하느라 나름대로 머리가 복잡하다.

간혹 무리한 일정을 소화시키느라고 애를 쓰다가, 명절 후에는 휴식이나 쉼의 의미는 상실하고, 후유증에 시달리거나 피곤과 짜증만 배가되어 일상으로 복귀한 후에도 후회를 하는 사람들이 생겨나게 마련이다.

이런 명절 무렵에 필자는, 과연 진정한 쉼의 의미는 무엇일까 한 번 곰곰이 생각해본다. 어떤 상태의 쉼이 진정한 재충전과 활력의 원천이 되고, 정서적으로나 육체적으로 안정을 기할 수 있는 최선의 쉼일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다.

혹시 해야 할 일에 대한 중압감을 이기지 못해서, 피곤에 지쳐 쓰러져서 잠이 들어본 경험이 있는가? 해결해야 할 숙제는 잔뜩 밀려있는데, 하다 하다 어떻게 하는 수가 없어서, 너무 피곤에 지쳐서, 그냥 숙제도 못한 채 잠에 빠져 본 경험 말이다. 그런 경우의 잠자리는 쉬는 자리일 수가 없다.

깊은 잠에 빠져들 수가 없으니 악몽에 시달리기가 십상이다. 그러므로 그것은 건강한 잠이 아니다. 지쳐서 쓰러져 빠져버린 잠, 탈진해서 병든 자의 잠, 그야말로 이것은 죽음에 이르는 잠이다. 깨어 일어나 다시 이 세상을 보고 싶지 않다 하는 마음에 찾아드는 잠자리. 그건 그야말로 정녕 비참한 잠자리다.

심리학자들은 이런 심경의 상태를 ‘탈진 증후군’이라고 부른다. 한 마디로 이것은 심리적인 질병의 상태라는 것이다. 이 병은 일반적으로 너무 과중하고 어려운 일에 시달리는 경우가 원인이 된다. 또는 소위 ‘일 중독증’이라고 부르는 병에서 비롯되기도 한다.

특별히 요즘에는 후자의 경우, 다시 말해서 일 중독증의 원인이 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한다.

이 병에 걸리는 사람들은, 대부분 어떻게 해서든지 자기의 직업 세계에서 출세해보려고 하는 사람들이다. 그들은 가장 늦게까지 일하고, 또 힘을 다해서 지치도록 일을 해야 만족한다.

왜 그렇게 행동할까? 자기의 일을 통해서, 다른 사람들에게 존경이나 인정을 받고자 하는 강한 욕망이 있기 때문이다.

그 욕망이 그로 하여금 일에 대한 잦은 좌절을 가져다 준다. 그리고 그 좌절로 말미암은 신체적이고 정서적이고 행동적인 증상으로 나타나는 병이 탈진증후군이라는 병이다.

이 병을 예방하기 위해서 의사들이 제시하는 몇 가지 방법들이 있다. 우리는 너나 할 것 없이 해당되는 주의사항들을, 주의를 기울여 눈 여겨 볼 필요가 있다.

첫 번째, 쉬는 법을 배워야 한다.

두 번째, 가끔 멀리 여행을 하거나 아무도 없는 곳에 가서 시간을 보낸다.

세 번째, 좋은 식이요법, 수면, 운동 등 바람직한 건강 습관들을 만들도록 한다. 네 번째, 가끔 재미있는 책을 읽거나 가벼운 레크리에이션을 한다.

다섯 번째, 할 수만 있다면 일과 가정을 분리하고 안식처로서의 가정을 지킨다.

여섯 번째, 요구에 우선 순위를 정하고, 거절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일곱 번째, 자신의 약점을 받아들이고 현실적인 한계를 인식한다.

여덟 번째, 생에 대해, 특히 자신에 대해 유머감각을 잃지 않도록 한다.

아홉 번째, 분노는 쌓아두지 말아야 한다.

열 번째, 노래 부르기를 즐기고 악기를 다룬다.

열한 번째, 스트레스와 대인 관계, 자신의 상태를 이해할 수 있는 심리학 지식을 훈련한다. 열두 번째, 부부사이를 점검한다.

마지막으로 배우자와 친구들이 포함된 정서적인 후원그룹을 유지하도록 한다.

혹자는, 일 중독에 빠지는 것 보다 이 방법들을 해나가는 것이 더 어렵다고 말한다. 물론 쉬운 일은 아니다. 그러나 이런 사항들을 통해서 우리가 어떤 삶을 살고 있는지 알 수 있는 것이다.

사실 이렇게 많은 분류로 나누었지만, 의사들의 충고를 한 마디로 집약해보면 ‘쉴 줄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즉 ‘쉬는 훈련이 되어 있어야 된다’는 것이다. 특히 그런 쉼 중에서, 누구에겐가 혹은 무엇에겐가 자기 자신을 의탁할 수 있어야, 내맡길 수 있어야 한다는 점이다.

진정한 쉼은 우선적으로 잘 먹고, 마시고, 편안하게 잠을 자는 육체적인 쉼이 우선이다. 그런데 현대인들은 이런 육체적인 쉼을 가볍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정신력으로 극복하면 되지’ 하는 생각을 내세우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누구나 경험해보았음직한, 육체적인 쉼이 이루어지지 않았을 경우를 되짚어보자. 육체적으로 피곤하고 지치게 되면 정신적으로도 안정이 될 수 없다. 정서가 메마르면 짜증이 나고, 삶을 역겨워하게 될 우려가 있다.

또한 잘 먹고 마신다는 의미는 고급스럽고 귀한 음식을 섭취해야 한다는 말이 아니다. 그리고 충분한 잠자리라고 하는 것도 호화스럽고 값비싼 침대나 이부자리를 뜻하는 말이 아니다. 마음 편하게 먹고 마시며, 쉴 수 있는 여건이 다른 무엇보다도 우선이다.

음식 이야기를 주제로 하면 때때로 필자의 어린 시절이 생각나곤 한다. 필자는 어릴 적 사남매가 함께 자랐다.

아버지께서는 한국전쟁 참전 용사로서 무공훈장을 수여하신 공훈자이셨는데, 애석하지만 그 중에서도 전쟁 중에 포탄에 의해 피해를 당하신 상이용사셨다. 평생을 전쟁의 흔적인 파편을 육체에 담고는 멍에를 걸머지고 살아오셨다.

그러다보니 변변한 직장생활이나 사업을 원만하게 경영하실 수 있는 상황이 아니셨고, 결국은 집안의 대표로 어머니께서 경제 일선에 나서서 가정을 꾸려나가셨다. 그런즉 자연 끼니를 제대로 챙기기가 쉽지 않은 형편이었다.

게다가 외부적인 요인도 만만치를 않아서, 전쟁이 끝난지 얼마 되지 않았기에, 폐허가 된 국토가 복구되기까지도 아직은 요원한 상태의 강원도 구석자리에서는 당연히 먹을거리가 풍족할 수가 없었다.

어느 해인가 어머니께서 과로로 며칠간 몸져 누우신 적이 있었다. 집 안에 비축되어있던 쌀도 충분치 못한 상황인지라, 여러 끼니를 멀건 죽으로 연명하다가 급기야는 그것마저도 떨어질 지경에 이르게 되었다.

가난에 빠지게 되면 어린 아이들도 눈치가 빤하게 된다. 서로 아무 말도 없었지만, ‘이제 우리는 죽마저도 먹을 수 없게 되었구나’ 하는 마음이 들었다.

그러자 자연스럽게 우리 사남매의 여덟 개의 눈동자가 약속이나 한 듯 일제히 아버지만을 쳐다보고 있었다.

가장인 아버지의 심사는 당시 어떠했을까? 아버지라고 어떤 방책이 있을리 만무였다. 그런데 한참을 묵묵히 앉아서 궁리하시던 아버지께서 다락으로 올라가셨다. 그리고 상자 하나를 꺼내셨다.

그 상자 안에는 집안의 제사를 드릴 때 사용하던 놋그릇 몇 벌이 담겨 있었다. 말하자면 집 안에서 돈이 될 만한 것 중에 남아있는 최후의 마지막 물건들이었다. 짊어지고 나가신 한참 후에 아버지는 그걸 다 팔아서, 쌀을 두어 말 정도 사오셨다.

그런데 어머니는 무슨 생각이 드셨는지 주섬주섬 자리를 털고 일어나시더니, 그 얼마 안되는 쌀을 갖고, 죽이 아닌 밥을 지으셨다.

그리고는 우리 형제들에게 큰 소리로 말씀을 하셨다. “모두 와서 밥을 실컷들 먹어라.” 반찬은 아무것도 없는 상에 가운데 간장종지 하나 덩그라니 놓였고, 하얀 쌀밥이 수북히 담긴 밥공기가 여섯 개가 늘어섰다.

그 때 그 밥상, 반찬은 아무것도 없었지만, 기름기가 자르르르 하고 흐르던 그 쌀밥공기가 주던 행복감을 필자는 영원히 잊지 못한다.

요즘은 먹을 것이 없어서 끼니를 거르는 사람들은 거의 없다. 오히려 먹을 것이 넘쳐나는 세상이다. 물론 개인적으로 그 혜택을 누리지 못하는 일부 소외된 계층이 있기는 하지만. 밥상을 대할 때 마다 느끼는 바지만, 필자는 웬 일인지 이 나이에도 밥맛이 너무 좋다. 제아무리 몸이 아파도 여간해서는 밥을 굶지 않는다. 어쩌면 밥맛을 잃지 않기 때문에 잔병치레를 하지 않는지도 모른다.

그런데 아주 가끔씩 밥맛이 없다 하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그 때는 바로 그 순간, 김이 모락모락 오르던 밥공기에서 기름기가 좔좔 흐르던 당시의 쌀밥을 기억해내면 망치로 뒤통수를 맞은 것처럼 정신이 번쩍 나곤 한다.

그리고 밥을 먹을 수 있는 행복감은, 음식의 내용에 있지 않다는 걸 재삼 확인하곤 한다.

마찬가지로 진정한 쉼이라 하면, 쉬는 장소나 여건 등의 외부적인 요인에 의해서 좌우되는 것이 아니다.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진실한 안정과 평온의 상태가 육체적으로 그대로 전달되는 이른바 심신의 동반휴식이 이루어지는 그곳이, 그 때가, 바로 최상의 쉼터이며 쉼의 시간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누군가를 생각하면 피난처나 기댈 곳으로 여겨진다든지, 장소를 떠올리면 아련한 추억이나 회상으로 평안을 추구할 수 있다든지, 아니면 신앙이나 믿음 등으로 마음의 안정을 기할 계기를 갖게 된다든지, 여하튼 많은 여러 가지 요인들이 작용하되, 결과는 하나로 이어지게 되는, 곧 편안한 쉼이 진실한 삶의 화두이다.

모처럼 일상을 떠나 그리웠던 사람들과 만나고 휴식하는 시간이다. 가족, 친지들과의 만남과 동행에 서로를 배려함이란, 말 그대로 진정한 쉼을 위한 첩경이며 모범답안이다. 아울러 그렇게 서로 먼저 양보하고 기꺼이 협력하는 자발적 마음가짐들이 모여 모여서 이루어진 가정이, 진솔한 믿음의 원천이 될테고, 나아가서는 천국을 이루는 가장 가까운 지름길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올 설 명절에는 진정한 쉼으로 삶을 다시금 살아나게 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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