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 /뉴시스

(이진화 기자) 최근 2차 북미정상회담이 2월 중순 베트남에서 열릴 것이라는 보도가 잇따르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의 입에서 비롯된 보도들이다.

외교가에서는 폼페이오 장관과 김영철 북한 노동당 부위원장 겸 통일전선부장 간 북미 고위급회담이 임박한 것으로 보고 있다.

그러나 북한은 김정은 위원장이 신년사에서 언급했듯이 "제재완화 없이 정상회담 없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오히려 '새로운 길'을 갈 수도 있다고 완곡하지만 분명하게 미국에 경고까지 날리고 있다.

이에 비해 미국은 다소 입장을 바꾸는 분위기다. 미국이 '완전한 핵리스트 신고 없이 제재완화도 없다'는 기존 입장을 수정 단계적 해결방안을 마련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일부에선 폼페이오 장관의 "궁극적인 목표는 미국민의 안전" 이라는 발언을 놓고 '현재 핵 무력화' 단계를 다시 나누어 우선 ICBM부터 폐기하고 핵무기 폐기는 그 다음에 하자는 뜻인 것으로 해석하기도 한다.

2차회담과 관련한 북한의 반응이 늦어지는 것은 미국이 제시한 단계적 해결 방안이 만족스럽지 못하거나 적어도 충분한 검토가 끝나지 않았음을 보여준다. 폼페이오 장관이 곧 회담이 열릴 것이라고 되풀이 전망하는 것은 미국이 북한에 단계적 해결 방안을 최근에 전달했음을 시사하며 제안을 받아들이라고 압박하려는 행동으로 분석된다.

폼페이오 장관의 발언은 미국이 과감하게 제재를 풀어나가겠다는 입장은 아닌 듯하다. 완전한 핵리스트 신고를 요구하던 것에서 단계적 해법을 받아들였다는 점에서 큰 변화를 보인 것은 맞지만 단계별 제재 완화의 내용이 북한이 만족할 수준일지는 불투명하다. 미국으로선 일단 제재완화가 시작되면 봇물이 터지는 것을 제어하기 어려울 수 있기 때문이다.

폼페이오 장관은 북미간에 논의가 계속되고 있다고 말하고 있다. 이 논의를 통해 북한이 2차 북미정상회담을 개최할 분위기가 마련됐다고 판단할 수 있어야 다음 절차가 진행될 것이다. 고위급회담은 열릴 수도 있고 열리지 않을 수도 있다. 북한 측 대표가 김영철 통전부장에서 리용호 외무상으로 바뀔 수도 있다.

한편 우리 정부는 북·미간에 진행중인 회담 내용에 대해 직접적으로 언급하는 것을 피하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10일 신년 기자회견에서 북중정상회담이 북미정상회담을 예고하는 것이라고 발언한 것이 사실상 전부다. 정부보다는 부담이 적은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 등이 나서서 분위기를 띄우는 정도다.

다만 문대통령은 지난 10일 기자회견에서 주목할 발언을 했다. "ICBM이나 IRBM(중거리 미사일)의 폐기라든지, 또는 그에 대한 생산라인의 폐기라든지, 또는 나아가서는 다른 핵단지들의 폐지라든지, 그런 것을 통해서 미국의 상응조치가 이루어지고 그 다음에 그 상응조치에 따라서 신뢰가 깊어지면 그때는 전반적인 신고를 통해서 전체적인 비핵화를 해나가고 이런 식의 프로세스들이 가능하다"고 발언한 것이다.

문대통령이 염두에 두고 있는 단계별 해법이 '미사일 폐기→미사일 생산라인 폐기→핵단지 폐기→전체적인 비핵화' 순서로 돼 있음을 알 수 있다. 이 역시 핵문제 해결은 차후 목표로 미루고 미사일부터 먼저 폐기한다는 점에서 폼페이오 장관이 미국민의 안전을 우선시한다고 한 발언과 비슷한 맥락이다. 다만 ICBM만이 아니라 IRBM까지 언급한 것이 한국과 일본에 대한 북한의 핵위협을 차단하는 것까지 포함하는 지는 현재로선 알기 어렵다.

폼페이오 장관과 문재인 대통령의 발언을 미루어볼 때 북한의 비핵화를 중장기적 목표로 늦추고 미사일 폐기부터 한 뒤 제재를 풀고 북미간에 충분한 신뢰관계가 마련(예를 들어, 평화협정 체결과 북미수교)된 이후에 북한이 보유한 핵무기를 폐기하자는 정도의 내용이 북한에 전달된 듯하다.

문대통령이 기자회견에서 언급한 내용은 연말 김정은위원장이 보낸 친서에 대한 답서에도 포함됐을 가능성이 있다. 물론 한미가 사전에 협의한 내용을 토대로 했을 것이다. 이런 정도라면 북한이 받아들일 가능성도 있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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