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하리 작가.

(박진우 기자) “인간의 감정은 사람의 사고와 행동에 특별한 색채를 더해주는 주관적 관념이다.”

닥종이끈 작가이며 스토리텔링 작가인 김하리 작가의 개인전 ‘감정의 향연’이 3일부터 9일까지 서울 인사동 갤러리라메르에서 열리고 있다.

한국의 닥종이끈과 유럽의 개념주의 미술, 미국의 추상화를 혼합 가미하여 새롭게 탄생한 작품들이 관람객들에게 강렬한 자극을 주고 있다.

김하리 작가는 캔버스 위에 닥종이끈으로 그리는 닥종이끈 예술을 세계 최초로 창시했다.

관람객들은 이번 전시 작품들을 통하여 다양한 감정의 위치에서 그림화한 느낌들을 만나볼 수 있는 좋은 기회다.

김하리 작가는 경희대학교 대학원 졸업하고 서울대학교 국제대학원 글로벌 최고경영자과정 수료했으며 한국미술협회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전시회로는 ▲2012년 Hong Kong Art Fair, Grand Hyatt Hong ▲2016년 SCAF Art Fair, 롯데호텔(소공동 본점) ▲2017년 '아름다운 우리 섬 독도' 국제 초대전, 예술의 전당 서예박물관 ▲2018년 한국미술협회전 52회, 예술의 전당 한가람 미술관 외 9회 등 다수의 전시회를 개최했다.

 

모두가 예라고 말할 때 아니라고 말할 수 있을까?

작품명: 모두가 예라고 말할 때 아니라고 말할 수 있을까?

영문: Can I say no when everyone says yes?

재료: paper mulberry string on canvas

크기: 130.3x130.3cm

연도: 2018년

 

모두가 예라고 말할 때 아니라고 말할 수 있을까?

모두가 예라고 말할 때 아니라고 말하고 싶은 순간은 없었는가?

욕구나 생각을 멈추는 것은 <나>의 작용을 정지시키는 것이다.

아무런 생각과 욕구도 없이 인지와 동기를 내려놓고 뚜렷한 주관도 없는 자신의 이 상태를 이해하거나 깨닫기는 쉽지가 않다.

또는 권력, 시기심 등을 원인으로 다수자로부터 내편이 아니라는 낙인을 피하기 위해 예라고 말할 수도 있다.

이것은 나를 보호하려는 본능 작용이기에 단순히 <나쁘다>라고 말하기는 어려운 일인 것 같다.

 

본심

작품명: 본심

영문: One's real intention

재료: paper mulberry string on canvas

크기: 130.3x130.3cm

연도: 2018년

 

본심은 질투, 분노, 애정표현 등으로부터 발현 된다

누군가에게 축하한다고 말을 전할 때 다른 마음을 느낄 때가 있지 않은가?

수면 위를 입으로 후 하고 불면 물결치듯 하나의 마음 바탕이 움직임으로 전개 되어 많은 파생을 일으킨다.

축하한다는 말 뒤에 따라오는 질투와 부러움, 슬픔이 그것들이다.

본심은 무조건 음흉하고 혼탁한 마음이라고 한정할 것이 아니라 누구에게나 흔하게 일어날 수 있는 마음 세계의 다른 면들이다.

 

위선

작품명: 위선

영문: Hypocrisy

재료: paper mulberry string on canvas

크기: 193.9x112.1cm

연도: 2018년

 

선은 좋은 것이나 마음에 드는 것을 말한다.

플라톤은 이런 선의 이데아를 초감성적 최고의 실재로 이념화 하였다.

철학적으로 승화된 선의 고지는 달콤한 유혹의 매체로 쓰이기도 한다.

위선은 자신의 속마음을 숨기고 사실과 어긋나게 말하거나 사실처럼 꾸미는 거짓을 말한다.

또한 이것은 사소한 일에서부터 스케일이 아주 큰 일을 이루기까지 다양하게 발현된다.

사람 관계에서 상대방으로부터 자신을 숨기기 위한 수단으로 쓰이는데

복잡한 인간관계에서 보면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흔한 감정이기도 하다.

이것은 부족한 인간이기에 불쑥 발현되는 티끌만한 마음의 움직임일 수도 있기에 결코 나쁘다고만 한정지을 수는 없다.

우리는 위선의 존재에서 인간의 본성 안에 내재 되어 있는 감정의 다양성을 깨닫게 된다.

 

중용

작품명: 중용

영문: Middle way

재료: paper mulberry string on canvas

크기: 193.9x130.3cm

연도: 2018년

 

내 속에는 나도 어찌해 볼 수 없는 '자기'가 있다.

중용은 바로 이 자기 성실을 축으로 구축되어 있다.

사람들은 자신의 마음 밖을 향해 온통 신경 쓰기에 자기 안의 존재에 주시하지 않는다.

그 존재는 우리의 오랜 습성인 타자적 습관으로 인해 곧 바로 깨닫지 못한다.

그러므로 자신의 존재를 자각하려는 주시와 자기 반성이 필요하다.

중(中)이란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는다는 것이고 용(庸)이란 평상(平常)을 뜻하는 것이다.

사람과 사람의 감정이 서로 나쁜 쪽으로 얽히지 않도록 하는 것이고

대립되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이것은 중간자의 역할도 하지만, 대의를 내건 조직의 권력자의 역할을 하기도 한다.

그러므로 중용은 모두를 어루만져 줄 수 있어야 하기에 가장 중요한 마음자리라고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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