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착 국면에 빠진 북미협상 고려

트럼프에 대한 여전한 신뢰 강조

2차 북미 정상회담 의지 드러내

1인용 소파에 앉아 30분 간 낭독

김여정 등 신진 실세 밀착 수행

대외적으로 정상국가 면모 과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1일 오전 여동생인 김여정 당 선전선동부 제1부부장, 조용원 당 조직지도부 부부장(왼쪽), 김창선 국무위원회 부장(오른쪽)과 함께 노동당 청사에 마련된 신년사 발표장으로 향하고 있다. (사진=조선중앙TV 캡쳐)

(이진화 기자)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1일 신년사를 발표했다. 짙은 남색 줄무늬 양복 차림에 푸른빛이 감도는 넥타이를 맨 김 위원장은 1인용 소파에 앉아 30분간 신년사를 낭독했다. 예년과 확연하게 다른 연출이다.

이날 발표된 신년사에서 눈길을 끄는 대목은 미국이 자신들의 '인내심'을 오판하면 '새길'을 모색할 수 있다는 내용이다. 전문가들은 교착 국면에 빠진 현 상황을 타개하기 위한 미국의 전향적 태도를 촉구하기 위한 메시지라는 분석이다.

김 위원장은 이날 신년사에서 지난해 6월 싱가포르에서 열린 북미 정상회담 이후의 상황을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의 만남을 계기로 북미 관계가 극적으로 전환되면서 한반도와 지역의 평화 안전이 보장되기 시작했고, 이후 핵무기를 만들지도 시험하지도 않겠다는 약속을 실천하기 위한 조치를 취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김 위원장은 또한 새로운 북미 관계 수립과 한반도의 항구적 평화체제 구축, 그리고 완전한 비핵화 달성이 북한의 '불변한 입장'이며 '항구적 의지'라는 점도 거듭 확인했다. 더불어 "(트럼프 대통령과) 서로 안고 있는 우려와 뒤엉킨 문제 해결에 빠른 방도에 대하여 인식을 같이했다고 생각한다"며 트럼프 대통령에 대한 여전한 신뢰를 강조했다. 나아가 "언제든 또다시 미국 대통령과 마주 앉을 준비가 돼 있다"며 2차 북미 정상회담에 대한 의지도 드러냈다.

그러나 북미 간 비핵화 협상 진전 속도에 대해서는 아쉬움을 감추지 않았다. 북한은 지난해 9월 남북 평양공동선언에서 '상응조치' 조건부 영변 핵시설 폐기 의사를 밝히고 같은해 10월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의 4차 방북을 계기로 등가교환할 카드를 맞추려 했으나 성과를 내지 못했다. 북한은 상응조치로 미국의 제재 완화 조치를 요구하고 있으나, 미국은 검증 등 비핵화 조치 초기 단계에서는 제재를 완화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김 위원장은 "미국이 세계 앞에서 한 약속을 지키지 않고 인민의 인내심을 오판하면서 일방적으로 그 무엇을 강요하려 들고 공화국에 대한 제재와 압박에로 나간다면 어쩔 수 없이 나라의 자주권과 국가의 최고 이익을 수호하고, 조선반도의 평화와 안정을 이룩하기 위한 새로운 길을 모색하지 않을 수 없게 될 수도 있다"고 강조했다.

다만 김 위원장은 지난해까지 신년사에서 사용했던 '동방의 핵강국' 등의 표현은 자제하며 불필요한 논란을 최소화하려는 모습을 보였다. 이는 미국과의 비핵화 협상 교착 국면을 타개하고 대화로서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방침을 밝힌 것으로 볼 수 있다.

한편 이번 신년사에는 담긴 메시지 뿐 만 아니라 북한 정권의 신진 실세들을 가늠해 볼 수 있는 여러 장면들이 나와 눈길은 끌고 있다.

김 위원장 동선엔 여동생인 김여정 노동당 선전선동부 제1부부장과 조용원 당 조직지도부 부부장, 김창선 국무위원회 부장이 밀착 수행했다.

김 제1부부장과 김 부장은 외부에 잘 알려진 인물이다. 반면 조 부부장은 김정은 위원장이 각종 건설현장, 농업현장, 탄도미사일 시험발사 현장 등에서 현지지도를 할 때마다 모습을 보이는 인물로 대외적으로는 많이 알려지지 않았다.

발표 장소도 또한 이례적이다. 단상에서 꼿꼿하게 서서 진행됐던 예년 신년사 방송과 달리, 김 위원장은 집무실로 보이는 공간에서 갈색 가죽 소파에 앉아 편안한 모습으로 신년사를 읽었다.

이 같은 연출은 대내적으로 결속을 다지고 김 위원장의 한 해 업적을 과시하는 한편, 대외적으로 정상국가의 면모를 보여주는 것으로도 해석된다.

김 용현 동국대학교 북한학과 교수는 "이 같은 연출이 내부적으로 강조하는 측면이 있다"면서 "6·12 북미정상회담 당시 김 위원장의 대기실과 비슷한 이미지였다는 점에서 빠른 시간 내에 미국과 대화를 하자는 것을 우회적으로 표현한 세트로도 볼 수 있겠다"고 밝혔다.

방송에서도 김 위원장의 각 분야에 대한 평가에 맞춰서 트랙터 공장이나 평양의 주체사상탑, 9·9절 열병식 행사 모습, 북창화력발전소, 금속공장, 화학공업장, 댐 건설현장, 원산갈마해안관광지구 등의 북한 내 굵직한 내부사업 현장이 사진으로 방영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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