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지만 확보한다고 기업 오지 않아

기존 지자체 사업과 중복도 문제점

전문가들 베드타운화 가능성 여전

세제지원 등 기업 유인책 더 늘려야

기업 안착 장기적 환경 조성도 필요

무조건 자족성 확보 논리도 안 맞아

국토교통부가 지난 19일 '2차 수도권 주택공급 계획 및 수도권 광역교통망 개선방안'을 발표하며 3기 신도시 예정지로 남양주 왕숙과 하남 교산, 과천, 인천 계양 등 4곳을 확정했다. 사진은 경기 남양주시 진건읍 신도시 예정부지. /뉴시스

(이진화 기자) 정부가 3기 신도시 건설 계획을 발표하면서 강조한 것 중 하나가 자족기능 강화다. 정부의 이 같은 언급은 일산·분당 등 1기 신도시가 ‘베드타운’에 그쳤다는 비판을 염두에 둔 것으로 보인다.

또한 역대 정권에서 추진한 신도시 사업 중 가장 성공한 곳으로 평가 받는 판교 신도시가 자족 기능까지 확보했기 때문으로 판단했을 것이다. 현재 판교테크노밸리에는 엔씨소프트, NHN 등 유망 정보기술(IT) 기업을 포함한 1270개 기업이 둥지를 틀어 7만 명의 일자리를 만들어냈다.

정부 입장에서 보면 판교 신도시는 3기 신도시 모델로 받아들일 만한 요소를 충분히 갖추고 있다.

하지만 개발계획이 발표된 직후 예정부지 4곳의 '자족도시' 성장 가능성에 대한 의문을 제기하는 전문가들이 많다. 제2의 '판교 신도시'가 탄생하기가 녹록하지 않을 것이라는 것이다. 베드타운화 될 가능성이 여전히 있다는 것이다. 게다가 지존 지방자치단체들이 사활을 걸고 추진중인 사업과도 충돌하는 부분도 있다.

23일 업계에 따르면 일단 도시지원시설용지 확보를 통해 자족기능을 확보하겠다는 시도에 대해서는 대체로 긍정적인 평가가 나온다.

남양주 '양숙지구'(1134만㎡)의 경우 예정부지중 29만㎡를 도시첨단산업단지 개발에 활용키로 했다. '하남 교산'지구(649만㎡)도 첨단산업융복합단지, 바이오웰빙특화단지 개발을 통해 기업 유치에 나서겠다는 포부다.'인천 계양 테크노벨리지구'(335만㎡)는 약 60만㎡를 도시첨단산단으로 중복지정해 기업 유치에 나서기로 했다. 과천도 자족용지 중 일부를 바이오산업, IT&데이터산업, 첨단R&CD 등 산업부지로 활용키로 한 상태다.

하지만 용지 확보만으로 기업이 둥지를 틀겠다고 들어올지는 미지수다. 판교 신도시 토지이용계획에서 상업·업무 지원시설은 전체 부지의 약 2%(약 16만5000㎡)에 불과하다.

함영진 직방 빅데이터랩장은 "단순히 택지지구 내 2배 이상의 도시지원시설용지를 확보한다고 해서 판교 신도시처럼 자족기능이 안착하고 자발적인 기업육성이 되진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권대중 명지대 부동산학과 교수도 "인천과 과천은 일부 자족기능을 갖추고 있지만 나머지 하남 교산, 남양주 왕숙지구는 산업용지가 32%밖에 되지 않아 부족한 편"이라며 "베드타운화될 가능성을 여전히 안고 있다"고 우려했다.

전문가들은 판교 신도시처럼 3기 신도시가 성공하려면 세금 및 임대료 인하 외에도 기업을 위한 다양한 행정지원과 문화·교육·업무 집적을 통해 장기적으로 기업이 안착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이 되는가 하는데 달려있다는 지적이다.

일부 전문가들은 판교 신도시의 경우 지자체에서 기업 유치를 위해 내건 지원책 외에도 경부고속도로, 외곽순환도로 등 교통 연결망을 확보한 것을 성공의 비결로 꼽기도 한다.

하지만 이번 3기 신도시의 교통대책은 수도권 광역급행철도(GTX) 등 대중교통을 통한 서울 접근성이 최우선 사항으로 고려돼 있어 오히려 교통 혼잡을 유발할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는 상황이다

지자체가 유치하겠다는 첨단산업군이 상당부분 겹쳐 지자체간 경쟁을 유발할 수도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남양주시는 왕숙지구에 스마트그리드 산업 중심의 에너지저장시스템(ESS), 정보통신기술(ICT) 사업 등을 유치하겠다고 발표했는데 하남 교산과 인천 계양 테크노벨리의 사업계획과 중복된다. 또 하남 교산지구가 추진한다는 바이오산업은 과천지구에서도 유치할 계획이다.

3기 신도시의 밑그림에 자족성이 등장한 배경에는 앞서 제1, 2기 신도시의 문제점으로 각각 지적돼온 '베드타운 전락'과 '광역교통망 부족' 등을 반면교사로 삼아 나름의 절충안을 내놓은 것으로 풀이된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서울 접근성이 높은데도 자족성을 확보하겠다는, 잘 납득이 가지 않는 결말로 귀결되고 있다. 서울과 가까워 기반시설에 대한 수요가 적은데도 굳이 자족성을 확보하겠다는 것은 논리상 상충된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수도권 집값을 잡고 주거에 자족 기능까지 겸비한 '3기 신도시'를 개발하겠다는 계획이 지나치게 장밋빛 미래 전망이 아니냐는 지적도 있다.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으려다 '모두 놓칠 수 있다는 것이다.

모든 신도시가 판교가 될 수 없고, 그럴 필요가 없다는 의견도 있다.

이창무 한양대 도시공학과 교수는 "대도시권내에서 중심과 주변부로, 위계가 나뉘듯 서울 25개 자치구 중 에서도 자족성이 낮은 곳이 있기 마련"이라며 "무작정 자족성을 확보해야 한다는 주장은 맞지 않고, 바란다고 이뤄지는 것도 아니다"라고 말했다.

이어 그는 "판교 신도시는 매우 특별한 케이스"라며 "모든 신도시가 판교 신도시가 될 필요는 없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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