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치원 회계 투명성 강화 이견 여전

한국당, 바른미래당 절충안도 거부

국민적 관심 높아 방치는 힘들 듯

김상환 임명동의 野 반대 땐 불가능

선거구제로 틀어진 3당 협조 미지수

표대결서 패배 땐 정부 리더십 타격

선거제 개편 수용 없이 2019년 예산안을 잠정 합의한 것에 반발해 나흘째 단식농성중인 바른미래당 손학규 대표가 9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로텐더홀에 마련된 농성장에서 전화통화를 하고 있다. /뉴시스

(이진화 기자) 더불어민주당과 자유한국당이 야3당의 맹비난 속에서 내년도 예산안을 가까스로 통과시키면서 급한 불은 껐지만 국회는 아직 ‘숙제’를 남긴 상황이다. 사립유치원 비리 근절을 위한 '유치원3법'과 김상환 대법관 후보자에 대한 임명동의안 굵직한 현안을 끝내 해결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임시국회나 원포인트 국회가 열릴 수 있을지 관심이다.

국회는 지난해 12월에도 정기국회가 끝난 뒤 남은 '숙제'를 마무리하기 위해 임시국회를 소집한 바 있어 올해에도 그 가능성이 없는 건 아니다.

8일 정치권에 따르면 국회 교육위원회 법안심사소위 여야 의원들은 전날 본회의에 유치원 3법(사립학교법·유아교육법·학교급식법 일부 개정 법률안)을 본회의에 올려놓기 위해 수차례 협상을 거듭했지만 이견을 좁히지 못해 법안 처리가 무산됐다.

주된 쟁점인 회계 투명성 강화를 위한 교비유용 처벌규정과 교육비의 국가회계 관리 일원화를 놓고 민주당과 한국당이 접점을 찾지 못하면서 법안심사소위는 열지도 못했다.

여야 3당 교섭단체 원내대표들은 당초 최소한의 처벌 조항을 넣는 절충안에 공감대를 형성한 것으로 알려졌다. 민주당과 바른미래당은 유치원 회계에 속하는 수입과 재산의 교육목적 외 사용 시 처벌 규정을 신설하되, 개정 규정은 공포 후 1년6개월이 경과한 날로부터 시행하는 잠정안을 마련했다.

반면 한국당 의원들은 정부 지원금과 학부모 분담금에 대한 처벌규정 차등화 등을 요구하면서 협상이 표류하면서 결국 합의점을 찾지 못하고 결렬됐다. 정부가 주는 지원금은 형사처벌을 가하더라도 학부모분담금은 나랏돈이 아닌 만큼 행정처분 등 다른 제재 수단을 검토하자는 게 한국당의 입장이다.

올해 정기국회에서 법안 통과가 무산된 만큼 유치원 3법을 처리하려면 국회가 별도의 임시회를 소집해야 하지만, 세부적인 쟁점에 대한 합의에 실패하면서 유치원3법 연내 통과가 사실상 물 건너간 게 아니냐는 관측에도 무게가 실린다.

한국당이 예산 협상 과정에서는 민주당과 전략적으로 '동맹'을 맺었지만, 유치원3법의 경우 두 당의 시각차가 명확한 만큼 이를 좁히는 데에 상당한 진통이 따를 수도 있다.

그럼에도 사립유치원 비리가 사회적으로 큰 파장을 몰고 오면서 정치권이 팔을 걷어 붙여 중점적으로 추진한 법안인 만큼 일부 이견만 좁혀진다면 임시국회를 열어 유치원3법을 처리할 가능성도 적지 않다는 낙관론도 나온다. 국민적 관심이 높은 중요 현안이라 여론의 부담을 의식한 정치권에서 법안이 무기한 표류하도록 방치하지 못할 것이라는 지적이다.

여권에서는 김상환 대법관 후보자에 대한 임명동의안 처리를 놓고 적절한 '타이밍'을 고르는 것도 상당한 부담이 따를 것으로 보인다.

국회 인사청문특별위원회는 지난 4일 김 후보자에 대한 인사청문회를 마쳤으나 인사청문경과보고서 채택은 불발됐다. 당시 민주당은 적격 의견으로 보고서 채택을 제안했으나, 한국당은 다운계약서, 위장전입 등을 이유로 대법관으로서 부적격하다고 판단해 보고서 채택마저 거부했다. 당초 보고서 채택에 우호적이었던 바른미래당도 선거제개편 논의가 진척이 없자 반대로 돌아섰다.

민주당으로서는 빠른 시일 내에 임시국회나 원포인트 본회의라도 열어 대법관 후보자에 대한 임명동의안 처리에 나설 가능성도 있으나, 야당으로부터 원만한 협조를 이끌어낼 수 있을지가 불투명하다.

연동형비례대표제 도입을 골자로 한 선거제 개편안을 예산안과 연계 처리해야 한다는 야(野)3당의 요구를 민주당이 묵살한 만큼 본회의 표결에 부치더라도 부결될 가능성이 높다는 게 정치권의 중론이다.

정책기조가 비슷해 아군이나 다름없던 민주평화·정의당이 '예산파동' 이후 여당에 잔뜩 독기를 품고 있는 데다, 쟁점이 첨예하게 대립하는 사안에서 캐스팅보트를 행사해온 바른미래당도 민주당에 등을 돌린 만큼 여당으로서는 '협치'를 기대하기 힘든 게 현실이다.

만약 민주당이 김 대법관 후보자에 대한 표결을 밀어붙이더라도 한국당을 비롯한 다른 야3당이 무더기로 반대표를 던져 고의적으로 부결시킨다면 정부 여당에서 책임론을 둘러싼 후폭풍도 만만찮을 전망이다.

지난해 김이수 전 헌법재판소장 후보자 사례처럼 본회의 표대결에서 민주당이 밀릴 경우 문재인 정부의 리더십에 타격을 주는 것은 물론 집권여당도 체면을 구길 수 있다. 이럴 경우 얼어붙은 정국이 더 급속도로 급랭될 수 있다.

이 때문에 민주당이 이런 정치적 유불리를 계산해 야3당과 협상 테이블에 마주 앉아 선거제개편에 관한 '딜'을 할 수 있다는 관측도 조심스레 나오고 있다. 앞으로 야3당을 파트너로 삼아 정국을 원활하게 이끌어가기 위해서는 야3당이 강하게 요구하고 있는 선거제 개편 논의가 불가피하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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