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설위원

농촌(農村)일손 돕기라. 참으로 오랜만에 들어보는 말이다. 호사(好事)는 나누면 배(培)가되고. 애사(哀事)는 나누면 반(半)으로 준다고 했던가? 그리고 백짓장도 맡 들면 가볍다는 속담이 있다.

이는 군민을 내 가족같이 생각하고 어려움을 돕는 태안군 농촌봉사(奉仕)를 두고 하는 말이다. 나(我)는 내 자신보다. 내 주위(周圍)를 먼저 돌아본다.

그리고 어려운 이웃에는 관심을 갖고 도움의 손길로 어려움을 나눈다. 이는 만인을 사랑하고 용서(容恕)로 보듬는다는 성경(聖經)에 나오는 구절(句節)이 아니다. 바로 6만4천군민의 곳간지기인 가세로 충남 태안군수가 마음속깊이 묻고 행하는 군정이다.

태안에 탯줄을 묻고. 태안에서 자라. 태안을 지키는 가세로 군수가 몸소 실천하는 군정(郡政)이다. 필자는 공직자에 대한 글을 자주 쓴다. 그때마다. 밥상위의 숟가락같이 쓰는 말이 있다. 바로 공직자의 사고(思考)가 바뀌면 세상(世上)이 달라진다는 말을 자주한다.

공직자의 사고(思考)가 어떻게 바뀌느냐에 따라 세상이 웃고. 울 수가 있다. 그래서 지도자(指導者)의 양심과 소신(所信)그리고 사고(思考)의 변화에 민초(民草)의 삶은 달라진다. 필자는 가세로 태안군수가 벌이고 있는 농촌일손 돕기를 보면서 절실히 느낀다.

한국의 도시형성(都市形成)은 충북이나 안양 시같이 바다가 없는 도농도시(都農都市)로 형성돼 있거나 태안군을 포함한 서해안(西海岸)과 동해안(東海岸)같이 해변(海邊)을 끼고 형성된 도시들이다. 그렇다보니 농어촌(農漁村)과 도시행정(都市行政)이 같이 가는 종합행정이 많다.

슬로시티 태안군도 예외가 아니다. 그래서 수확기(收穫期)를 맞아 일손이 부족한 농가 돕기에 팔을 걷어붙였다. 가을걷이철을 맞아 일손부족으로 어려움을 겪는 이웃을 돕는 가세로 군수와 700여 공직자 그리고 참여한 모든 군민들에게 박수를 보낸다.

저 멀리 백화 산 정상(頂上)을 넘어 사해(四海)까지 들리게 말이다. 필자는 태안군이 벌이고 있는 농촌일손 돕기라는 말에 감회(感懷)가 새롭다. 농촌일손 돕기라는 말은 초근목피(草根木皮)로 연명(延命)하며 맥령(麥嶺)에 터널을 뚫던 60~70년대에 많이 들어 귀에 익은 말이다.

소주밀식(小株密植)자연보호(自然保護)산림녹화(山林綠化)등과 같이 한 시대(時代)에는 주민등록증같이 몸에 달고 살았던 귀(耳)에 익은 말이다. 그러나 산업사회로 발전되면서 이런 말들은 역사(歷史)속으로 사라졌다.

그러나 역사 속에 숨어있는 산림녹화와 자연보호 또 일손 돕기는 세상이 변해도 우리의 몫이다. 그래서 그 몫을 가세로 군수와 700여 공직자. 그리고 관내유관 군민들은 하고 있다. 태안군은 111년 만에 최고 더웠다는 올 상반기부터 일손이 부족해 어려움을 격고 있는 농어가(農魚家)를 찾아가 일을 도와 왔다고 한다.

태안군 700여 공직자와 태안군 관내에 주둔하고 있는 군부대를 포함한 유관단체종사자1천여 명은 장애인(障碍人)과 부녀자(婦女子)또는 홀로 노인(老人)들이 짓는 농가를 찾아가 가을걷이를 돕고 있다.

새싹이 움트는 초여름의 모심기부터 서리발이 내리는 늦가을의 생강(生薑)캐기 등 철따라 달라지는 농작물(農作物) 수확(收穫)을 돕고 있다. 이런 일손 돕기에 관내 초중고 학생들의 참여가 있는지는 모른다. 노루꼬리보다도 짧다는 농촌(農村)의 가을하루에 입립신고(粒粒辛苦=곡식의 낟알마다 고생이 담김)한 농심(農心)의 걱정은 언제나 사라질까? 사해(四海)를 호령하는 백화산은 말해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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