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이슬
아침 이슬
  • 서울일보 news@seoulilbo.com
  • 승인 2018.09.04 10:1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림삼의 초대시

아침 이슬

 

은방울 금방울 굴리어가며

아침 하늘 즐기려는

아기 구슬,

만지면 터질듯 아련히 반짝

 

간밤에 빛나던 별들

고스란히 내려앉았나 보다

 

한 번 구르면

반짝 빛나고,

울 아가 눈동자를 만들려는지

보석처럼 빛나는 그대, 이슬

 

한낮에는 소식도 없이

햇볕을 따라

하늘로 올라가나 보다

 

 

-시의 창

풀섶에 매달려있는 아침 이슬을 헤치고, 신선한 새벽 공기를 마시며 뒷산 약수터에 오른다.

숨 한 번 크게 내쉬며 간단한 몸풀기 체조로 시작하는 하루의 삶이 늘 경이롭고 신비하다.

언제까지 내게 이런 아름다운 삶의 페이지가 예비되어 있는 건지 나는 모른다.

다만 오늘 하루를 최선을 다하여 보람있는 삶이 되고자 노력할 뿐이다.

오늘 새벽에도 내 주변의 이웃들에게 인정받는 삶이 되어야겠다는 다짐으로 만나는 사람들마다에게 큰 소리로 활기찬 아침 인사를 건넨다.

그리고는 되돌아오는 웃음 띤 인사에 더없는 뿌듯함을 맛본다.

! 이렇게 오늘도 시작이다.

우리는 세상을 살아가면서 누구나 인정받기를 원하고 인정을 받을 때 비로서 인생을 의미있게 산다는 만족의 기쁨과 행복을 느끼게 된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우리가 다른 사람들로부터 인정을 받을 수 있을까 ?

첫째 비결은 성실해야 한다는 것이다.

매사에 진실하고 주어진 삶의 책임에 충성스러워야 한다는 의미로 볼 수 있다.

어떤 상황에서나 그리고 어떤 사람의 앞에서나 형식에 치우친 처신이라든지 임시방편을 위한 눈가림을 하지 않고 순간을 모면하기 위한 꾀를 부리지 않으며 모든 일에 중심을 기울여서 헌신의 태도로 살아야 한다.

둘째 비결은 겸손해야 한다는 것이다.

사람이 아무리 훌륭하고 학식이 많고 재능이 풍부하며 지위가 높고 권력을 손에 쥐고 있으며 또한 인물이 잘 생기고 가문이 좋고 명예가 높을지라도 성품이 교만하다면 한 마디로 사람들에게 인정은 받을 수 없다.

우리가 인생을 살면서 얼마나 많은 소원을 갖게 될까 ?

이런저런 여러가지 소원을 늘어놓을 수도 있으나 무엇보다도 건강하게 오래 살고 싶은 소원이 으뜸일 것이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과 사이 좋게 인정을 나누면서 풍요롭고 너그러운 삶의 모습으로 살아갈 수 있기를 소원하기도 한다.

그런 맥락에서 셋째 비결은 다른 사람들의 마음에 들게 살아야 한다는 것이다.

살다보면 본의 아니게 실수를 할 수도 있고 자의반 타의반으로 다른 사람들과 다투거나 사소한 오해로 낯을 붉히게 되는 경우도 있다.

그럴 때 주저하지 말고 먼저 사과하고 반성하며 관계 개선을 위한 노력에 누구의 눈치도 볼 것 없이 적극적으로 임해야 한다.

그런 모습을 보이는 그를 다른 사람들은 마음에 들어 할 것이다.

그리고 늘 칭찬과 다른 사람을 인정하는 습관도 게을리 하지 말아야 한다.

그렇게 인정받는 삶이 바로 보람과 기쁨과 희망과 축복이 차고 넘치는, 또한 이 세상에 밝은 빛과 사랑을 전하고 구현하여 절망하는 많은 사람들에게 행복을 안겨주는 복된 삶의 모습이리라고 생각한다.

오늘날의 시대는 과거 어느 시대보다 물질적으로 풍요를 누리는 시대라 할 수 있다.

그러나 모든 것이 지나치게 풍족하고 차고 넘치는 과잉, 과용, 과대 현상으로 말미암아 오히려 건강한 삶이 파괴되고 인간의 존엄성이 허물어져가고 있는 위험한 사회가 되었음을 우리는 보게 된다.

빈부의 격차가 심해지면서 한 쪽에서는 수 많은 사람들이 기아에 허덕이며 굶주림 속에서 비참한 삶을 근근히 이어가고 있는 반면에 소위 기득권 층의 가진 자들은 더욱 더 많은 재산을 가지기 위하여 도덕이나 양심의 소리는 아예 외면한 채 부의 축적에만 탐닉하는 삶을 살고 있는 실정이다.

가지고 있는 재산을 쌓아둘 창고가 부족하여 더욱 더 큰 창고를 짓기 위한 권력과 금력을 사용하는 만행도 서슴치 않고 있다.

진실한 삶의 모습과 생명의 가치는 전혀 깨닫지 못한 채 어느 사이에 오직 물질만 추구하는 물질의 노예가 되어버린 것이다.

어차피 이 세상 삶이 끝나면 다 두고 떠나야 하는 게 인지상정이거늘 정말 한 치 앞도 못보는 근시안적 삶의 모습을 사는 그런 어리석은 사람들을 보면 안타깝기 짝이 없다.

그렇다면 이렇게 현대에 이르러 갑자기 급속도로 늘어나서 심각한 증상을 보이는 신종병 환자들의 근원적인 문제는 과연 무엇인가 ?

우선 그들의 공통점은 모든 것이 로만 쌓여 있는 사람이라는 것이다.

그들은 자기 욕심 만으로 가득 차 있어서 다른 사람은 물론 심지어는 자기 자신마저도 설 공간이 없는 인생의 단면을 간직하고 살아가고 있다.

오로지 내 재산, 내 건물, 내 창고, 내 회사와 같은 자기의 소유만을 내세우는 공식으로 세상을 보며 그런 잣대로 세상을 재는 삶을 살아간다.

그러나 자신의 재산을 축적하게 만든 것이 바로 세상이라는 것을 분명히 알아야 한다.

즉 자신이 막연한 자신만의 능력이나 운으로 재산을 모은 것이 아니라 이 세상의 모든 여건과 환경과 결과들이 아울러서 세상 속에 속해 있던 재산을 자신에게 임시로 맡겨놓은 것이니만큼 엄격하게 말하면 자신의 재산은 궁극적으로는 세상에 속한 것이기 때문에 이것을 모두 자기 것으로 아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것인가 하는 문제를 말하자는 것이다.

재산의 사회 환원이니 귀속이니 하는 용어들은 이런 의미에서 생겨난 것이다.

그러므로 자기밖에 모르는 사람들, 자기를 넘어서는 세상을 보지 못하고 있는 사람들의 문제는 바로 여기에서 기인한다.

그리고 그들의 또 다른 문제는 세상을 단편적으로 보고 있다는 것이다.

이 땅에서 살아가고 있는 삶의 진정한 목적이 자신만의 영달을 위한 삶이라고 간주하여 편안히 쉬고 먹고 마시며 즐기다가 자기 자식들에게 유산이라는 이름으로 남은 것을 물려주게 되는 그러한 순환이 올바른 삶의 역사를 만들어가는 고리라고 오판하고 있음이다.

에릭 프롬소유나 존재냐 (To have or to be)' 에서 말하기를 소유는 거짓된 인생의 의미를 준다.’ 라고 했다.

이것은 다시 말하면 어리석은 사람들은 헛된 행복의 추구에 매달려 있으면서 이웃들을 외면하다가 결국 자기 자신조차도 소외시키는 불행한 결말에 이르게 된다는 뜻이다.

로마의 격언에 재물은 소금물 같아서 마시면 마실수록 목이 탄다.’ 라는 말이 있다.

당대 가장 부자였던 ‘J.D.록펠러에게 신문기자가 당신은 현재 당신이 가진 재산에 만족하시나요 ?” 라고 질문 했더니 천만에요, 전혀 아닙니다.” 라고 답했다고 한다.

그러자 다시 신문기자가 그러면 얼마나 더 가져야 만족하시겠습니까 ?” 라고 하자 조금만 더요.” 라고 답했다고 한다.

그런가 하면 별세한 현대그룹의 창업자인 정주영씨에게 어느 기자가 종교가 있습니까 ?” 라고 물었더니 지금보다 더 부자가 되게 하는 종교가 있으면 믿겠다.” 라고 하는 말을 한 것이 오래 전에 인터뷰 기사로 나온 일이 있다.

사람의 욕심을 근본적으로 채울 수 있는 길은 사실 어디에도 없다.

세상의 모든 사람들과 세상의 도리, 이치를 다 담을 수 있는 큰 마음의 울타리를 가져야 그 속에서 모은 재산도 축복이 되고 행복이 되는 것이지 울타리는 작은데 재산만 많으면 그것은 축복이 아니라 부메랑으로 되돌아오는 저주가 될 수도 있다고 이해를 하고 싶다.

우리 인생의 참다운 의미와 가치, 그리고 목적을 다시 회복하는 도전의 자세가 필요하다.

늘 감사의 마음을 가지고 멋있게 사는 삶의 모습을 보이다 보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울타리가 저절로 커져갈 수 있다는 걸 믿어야 한다.

에모리 대학교 총장과 주한 미국대사를 역임한 바 있는 제임스 레이니대사 부부가 결혼 50주년을 맞아 축하 잔치를 어떻게 할까 의논한 결과 대사 부부는 물론 자녀 손자들 모두 동원하여 무숙자들을 위한 쉼터를 개설하여 봉사활동을 한 적이 있다.

자신들의 삶의 울타리가 넓어짐은 물론이거니와 자녀들을 위한 삶의 가르침 면에서도 이보다 더 효율적이고 바람직한 방법이 어디 있겠는가 ?

과연 우리가 우리 자신만의 보잘 것 없이 작은 힘으로 오늘 이 시대의 문화를 얼마나 변화시킬 수 있을 지는 잘 모르겠다.

우리 아이들의 관심을 쇼핑몰이나 게임방에서 가정으로, 학교로, 바른 길로 어떻게 돌릴 것인가 하는 것이 오늘을 사는 기성세대의 가장 큰 과제이며 당면한 현안이다.

우리의 아이들이 자연을 즐기고 봉사 활동을 하며 어려서부터 인간의 인간다움 (human decency)'더불어 사는 시민정신 (civility)'을 배우며 살아가는 데에 모범이 되고 귀감이 되는 부모 세대가 될 수 있기를 바란다.

작은 참여가 나아가서 큰 역사를 만드는 시작이며 첩경이 된다는 교훈을 잊어서는 안 된다.

인간은 사회성이 강한 동물이다.

더불어 산다는 것은 우리가 늘 일상 속에서 접하는 말이다.

이 세상에 무엇이건 홀로 이루어지는 것은 없다.

영화나 드라마에서 주인공이 존재함은 바로 수많은 엑스트라가 있을 때에 가능한 것이고, 각 사람마다 주어진 역할에 성실할 때에 주인공이나 각 배역을 맡은 사람들 또한 있는 자리에서 모두 돋보이는 것이다.

지극히 상호보완적이면서도 서로의 독립성을 인정해 줄 때에 작품의 완성도나 진정한 가치가 높아진다고나 할까 ?

우리의 삶의 이치도 그와 같다고 생각한다.

내가 아닌 타인을 진실로 인정하고 그 인정되어진 이를 통하여 나를 바라보는 것.

이것이 바로 관계라고 말하는 것이다.

서로를 인정하는 성숙한 인간 관계를 경영함이야말로 우리의 삶을 성공적으로 이끄는 지름길이라 여긴다.

가을을 재촉하는 비가 자주 내리는 간절기의 하루가 흐르고 있다.

일 터에서 가정에서 각자 자기의 몫에 성실하고 서로의 부족함을 채워주는, 그래서 함께 하는 삶이 기쁨이 되는 그런 한 날이 되었으면 한다.

한낮에는 햇볕을 따라 하늘로 올라가는 영롱한 아침 이슬처럼 맑고 투명하며 신선한 기쁨과 청아한 아름다움이 꽃처럼 피어나는 오늘이 되었으면 한다.

그런 삶의 모습이 바로 내 삶이라면 좋겠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