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경렬 기자) 산에 오르는 것을 늘 두려움으로 시작하곤 한다. 거대한 자연에 비하면 인간은 얼마나 나약하고 보잘 것 없는 미물인가. 대자연의 한 부분인 산은 늘 그 자리에 서 있다. 그러나 늘 시시각각 다른 모습으로 보이는 게 산이 아닌가.
 
이번 설악산 산행 길에서 한계령쪽 서북능선을 오르는 내내 짙은 운무로 애를 먹었다. 거기에다 태풍처럼 몰아치는 거센 바람이 눈을 뜨기 힘들게 했다. 이 자연의 조화를 누가 막을 수 있겠는가. 인간의 미약하고 작은 힘이 자연의 웅대한 위력에 어찌 견주겠는가. 누가 거부 할 수 있겠는가. 다만 인간이 지혜롭게 받아들여야 자연의 아름다움을 즐길 수 있다.

설악산 서북능선에서 내려다 본 흑선동계곡 모습

필자가 산행을 처음 시작할 때에는 앞만 보고 걷는 일에만 온 신경을 썼다. 아마도 산행에 경험이 조금 부족한 산행자는 그냥 맹목적으로 산에 오르내리는데 급급하게 된다. 그저 어느 산에 갔다 왔다는 의미만 부여하는 것만으로도 만족하게 된다.

그 만족이 즐겁다면 행복한 산행이다. 그러나 좀 산을 다녔다면 이제 그 간다는 의미에서 벗어나 배우는 산행이 된다. 어느 능선에 무슨 야생화가 자생하고, 지형지세는 어떻고, 주능선과 산맥은 어디로 이이지고 등 형세를 살피게 된다.

산에 가서 즐기면 됐지 뭘 배우느냐고 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산행자는 산에서 좋은 느낌을 얻으면 그것으로 족하다. 하지만 보다 더 깊고 넓게 산을 알려면 그 산에 대해서 여러 가지 정보를 배워야 한다는 게 필자의 생각이다.

십이선녀탕 계류의 상류(사진: 조경렬)

필자는 이날 서북능선을 타고 있었다. 인제 북면 한계리 한계령 휴게소에서 오전 4시쯤 출발한 산행 길, 칠흑 같은 어둠속에 새벽안개가 자욱했다. 짙은 안개는 옷자락에 맺혀 이슬방울로 방울방울 떨어진다. 왜 이런 고생을 사서 하는 것일까. 그러나 깊은 밤 산길을 오르는 맛은 산행자만이 느낄 수 있다.
 
먼동이 터 오고 이슬은 풀잎과 나뭇잎에 맺혀 바짓가랑이를 함초롬히 적셨다. 길은 오솔길이라 옷소매도 무사하지 못했다. 0.5Km에 달하는 긴 너덜지대와 7Km의 능선 길에서 새벽바람을 가슴으로 맞으며 터벅터벅 오르니 짙은 안개는 11시쯤 서북능선 중간에서야 걷히기 시작했다.

설악산 12선녀들이 노怒했는지 좀처럼 산의 모습을 보여주지 않다가 정오가 다 되어서야 얼굴을 빠끔히 내놓는 것도 산의 신비스러운 모습이다. 바람 속을 걸어 정오 쯤 귀떼기청봉(1577m)에 다다랐다.

설악산 야생화 '가는다리장구채'의 앙증맞은 모습

안개 낀 바위틈에 작고 앙증맞게 핀 야생화가 고개를 내밀고 있다. 하얀 야생화 가는다리장구채(Silene jenisseensis)였다. 강원 산간 고산지대에만 서식하는 귀한 야생화이다. ‘아, 반갑구나 장구채야!’ 하얀 꽃으로 작게 피는 놈이라 안개에 가려 아름다운 모습을 못보고 지나칠 뻔 했다.

안개가 걷히니 멀리 큰귀떼기골 아래 축성암 터가 울창한 숲과 절벽 사이로 내려다보인다. 참 아름답고 정겨운 풍광이다. 인가도 없는 심산유곡에 작은 암자의 모습은 산행객의 막연한 그리움을 부른다.

이슬로 그런 건지 아니면 새벽에 안개비기 왔는지 능선 길도 물에 젖어 질펀했다. 서북능선의 곳곳에 멧돼지가 나무뿌리나 풀뿌리를 캐먹느라 밭을 갈듯 마구 파헤쳐 놓았다. 초본식물들은 생존을 위협 받기에 충분한 상황이다. 이런 정황으로 보아 야생 멧돼지 개체가 부지기수로 많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드디어 대승령(1210m)에 도착해 간식으로 과일을 펼치니 야생 벌들이 줄줄이 날아든다. 산에서는 곤충도 조심해야 한다. 이제 여기서 부터가 십이선녀탕 계곡으로 가는 갈림길이다.

서쪽으로 비껴선 안산(1430m)에 들러 올 수도 있지만 시간이 허락하지 않아 다음 기회로 미루고 두문폭포로 내려간다. 귀떼기청봉쪽 서북능선에서 보면 오른쪽으로는 백담사로 내려가는 흑선동계곡이고 왼쪽으로는 대승폭포로 내려가는 장수대길이다.

직진방향은 십이선녀탕 계곡길이다. 개성의 박연폭포, 금강산의 구룡폭포와 더불어 우리나라 3대 폭포에 속하는 길이 88m의 대승폭포를 보지 못하는 아쉬움을 뒤로하고 십이선녀탕 계곡을 향해 하산 길로 접어들었다. 흑선동길은 아직 산행 금지 구간이다.
 
설악산은 아름다운 산이라기에 앞서 신비로운 산이다. 백두대간의 등뼈인 설악산은 능선과 봉우리 마다 곳곳에 수많은 계곡을 품고 수많은 폭포를 만들어 놓고 있다. 그중 가장 서쪽에 위치한 십이선녀탕 계곡은 대승령(1260m)과 안산에서 발원하여 인제군 북면 남교리 까지 이어진 8km에 이르는 장대하고 수려한 계곡이다.

십이선녀탕 계곡은 ‘지리곡’, ‘탕수골’ 또는 ‘탕수동계곡’으로 불리어왔다. 그러던 것이 50년대 말부터 지금의 이름으로 부르게 되었다.

십이선녀탕은 8km의 십이선녀탕 계곡 중간 지점에 위치해 있는데 폭포와 탕의 연속으로 구슬 같은 푸른 물이 변화무쌍한 변화와 기교를 부리면서 유구히 흐르고 있다.

12선녀탕계곡의 두문폭포 모습

옛말에 12탕 12폭이 있다 하여 또는 밤에 12선녀가 내려와 목욕을 했다는 설화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라고도 하지만 실제 탕은 8개 밖에 없다. 탕의 모양이 장구한 세월에 거친 하상작용에 의해 오목하거나 반석이 넓고 깊은 웅덩이를 형성하는 등 신기하고 기이한 모양이다.

그중 폭포 아래 복숭아 형태의 깊은 구멍을 형성하고 있는 일곱 번째 탕인 복숭아탕이 백미로 꼽힌다. 조선조 정조 때 성해응(1760~1839)은 그의 유산기 '동국명산기'에서 설악산의 여러 명소 중 십이선녀탕을 첫 손에 꼽았다.

12선녀탕곅곡에서 가장 뛰어난 풍광을 자랑하는 복숭아탕 모습

하류에서 오르자면 강원 인제 북면 남교리에서 3km 쯤에서부터 실제의 십이선녀탕 계곡이 시작된다. 이곳에서부터 넓은 반석 위에 두터운 골이 일곱 번 굽이쳐 흐르며 신비로운 물소리를 들려준다는 칠음대, 칠음대를 지나 10여분 쯤 더 오르면 아홉 번이나 좌우로 굽이쳐 흐른다는 구선대가 나온다.

우거진 숲속으로 암반을 타고 흐르는 맑은 물은 바위를 깎아 내리며 탕湯을 만들고 탕마다 넘치는 물은 폭포를 이룬다. 이런 자연 속에 있노라면 옛 선비가 노래한 산수 간의 풍류가 떠오른다.

步逐閒雲入翠林   한가한 구름 따라 숲 속에 들어서니
松風澗水洗塵襟   솔바람 냇물소리 옷깃을 씻어 주네.   
悠悠淨世無知己   뜬 세상에 이 흥취 아는 사람 누구 있나
只有山禽解我心   다만 저 산새만이 내 마음 알아주리.
                                                                   -유창의 칠언절구 〈유흥幽興〉 전문

호탕하게 홀로 걸으며 소요하는 흥취에 빠져들 풍치가 계속하여 이어진다. 하류에서부터 보자면 첫 번째 탕인 독탕을 시작으로 둘째 북탕, 셋째가 무지개탕으로 탕마다 제각기 다른 아름다움을 지니고 있다.

12선녀탕계곡은 수많은 폭포와 탕을 이루며 아름다운 풍광을 이룬다

첫 번째 탕에서 1시간여 오르는 동안 8탕 8폭을 뚜렷하게 구경할 수 있다. 맨 끝 탕은 두문폭포탕이다. 폭포 옆으로 설치된 가파른 철계단을 올라 계곡을 따라가면 물줄기도 시원한 두문폭포에 닿는다.

그 위로 가장 큰 탕이 그윽한 자태를 드러낸다. 폭포와 탕이 연이어진 이 계곡은 여름의 계곡산행, 가을의 단풍산행으로 인기가 높아 연중 찾는 사람들이 많다. 호젓한 산행을 즐기려면 겨울산행이 좋다.

대승령에서 십이선녀탕 계곡을 하산 길로 한다면 곳곳에서 계곡을 가로질러야 한다. 철제 구름다리가 설치돼 하산에 어려움은 없지만 비가 오면 갑자기 많은 물이 불어나므로 유의해야 한다.

12선녀탕 계류 풍경

하산 길의 두 번째 구름다리를 건너는 오른쪽에 가톨릭의대 산악회원 위령비가 서 있다. 1968년 10월에 갑자기 쏟아진 폭우로 물이 불어난 계곡을 건너다 7명의 대학생들이 희생된 곳이다.

이렇게 능선과 계곡을 따라 17Km의 산길을 새벽부터 걷고 나니 다리가 뻐근해 왔다. 십이선녀탕 계곡의 시원지인 대승령 아래 바위틈에서 나오는 석간수는 너무 차가와 얼음 같았다. 상류의 계곡물은 이렇게 한여름에도 손발을 담그지 못한다. 물은 계류를 이루며 하류로 내려가면서 협곡의 이쪽저쪽과 부대끼며 그 냉기도 차차 식혀지는 것이다.

인간의 삶도 그러하듯이 젊은 시절엔 모든 게 원칙과 규정에 의해서만 해결하려 들다가도 세월이 지나 나이가 들어 갈수록 원만하고 폭 넓게 수용하려는 모양새를 갖추게 된다. 자연의 순리가 그렇지 않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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