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경렬 기자) 대야산이 여름 산행지로 이름 높은 것은 익히 알고 있던 터라 오래 전부터 산행의 기회를 엿보던 차에 드디어 오르게 되었다. 용추계곡으로 더 유명한 속리산국립공원 대야산(大耶山)을 오랜 지우와 오르기로 했다.

중복이 지났어도 염천의 무더위의 기세는 높기만 하다. 사상 초유의 무더위가 이어지고 있지만 산으로 들면 더위 따위는 잊는다. 여름도 막바지를 향해 긴 무더위의 터널을 빠져 나가고 있다. 들판에는 여름의 무더위와 비바람에 익어가는 곡식들이 출렁인다.

8월이 되고 처서가 지나면 벼가 제법 노란 빛으로 익어갈 것이다. 대야산으로 가는 517번 지방도로에 칠보산으로 오르는 산행객들이 즐비하다. 이제 대야산 용추곡이 가까워지고 있다.

속리산국립공원 대야산 용추계곡 용추폭의 아름다운 풍광(사진: 조경렬)

대야산 용추곡에서 흐르는 물은 다시 빼어난 경승지 선유동계곡으로 이어진다. 대야산은 이렇게 동쪽으로 용추곡을, 서쪽으로 화양구곡의 시발점을 이루며 속리산국립공원의 대야산 권역에 속한다.    

녹수는 성난 듯 소리쳐 흐르고
청산靑山은 찡그려 말이 없구나
산수山水의 깊은 뜻을 생각하노니
세파에 인연함을 저어하노라.

일찍이 조선의 성리학자 우암 송시열이 화양구곡에 은거하며 빼어난 산수와 자신의 심경을 이렇게 노래했다. 이 보다 앞서 신라시대 고운 최치원은 이미 화양구곡의 빼어난 경승에 취해 음풍농월하며 소요(逍遙)를 즐겼다. 화양계곡 화양구곡의 유래는 우암이 효종을 잃고 은거하며 주자의 무이구곡(武夷九谷)을 본떠 명소마다 이름을 붙여 지금까지 전한다.

구곡의 승경은 제1곡 경천벽을 시작으로 운영담(雲影潭), 읍궁암, 금사담, 첨성대, 능운대(凌雲臺), 와룡암, 학소대(鶴巢臺), 파천까지 9곡이다. 이 명소들은 대부분 바로 옆에서 옆으로 이어진다.

경천벽은 기암이 가파르게 솟아 마치 하늘을 떠받드는 형상을 하고 있어 자연의 오묘한 신비를 느끼기에 족하다. 입구의 화양동문(華陽洞門) 서체는 우암 자신의 필체이다.

화양구곡 동쪽으로 속리산을 사이에 두고 대야산 용추계곡이 있다. 대야산 용추폭포는 오랜 세월동안 폭포수의 낙하로 하트 모양으로 바위가 형성돼 자연의 신비한 풍광을 연출하고 있는 경승지이다.

대야산(930m)은 속리산국립공원에 속해 대야산 권역을 이루는 산으로 경북 문경 가은읍과 충북 괴산 청천면에 걸쳐 있는 중부권의 100대 명산이다. 백두대간 마루금을 지나는 대야산은 거친 듯 하면서도 아담하게 절제된 계곡미를 자랑한다.

대야산에서 둔덕산(970m)으로 이어지는 능선은 백두대간 곁가지에 뿌려놓은 수많은 암봉과 아름드리나무가 빼어난 산세를 자랑하며 용추계곡과 선유동계곡을 품고 있다.

대야산은 특히 용추폭의 기묘한 모습은 보는 이의 탄성을 자아내게 한다. 문경의 용추계곡에서 출발한 계류는 괴산의 선유구곡을 빚어내며 여름철 많은 피서객들을 불러들이고 있다.

깎아지른 암봉과 기암괴석이 울창한 숲으로 둘러싸인 아름다운 산세를 자랑하는 대야산 제일의 명소는 바로 문경8경의 하나인 용추계곡 선유동이다.

문경 가은읍 완장리 버스 주차장에서 작은 고개를 넘어야만 용추계곡 입구 산행로가 나타난다. 등산로 입구에 넓은 공간이 없어 작은 둔덕 너머에 주차장을 개설했다. 계곡에 이르니 수량이 의외로 빈약했다.

얼마 전 큰비가 왔는데도 풍부한 수량을 만들지 못했나 보다. 계곡 입구에서부터 숲이 우거져 울창했다. 삼복염천에도 더위를 잊을 정도로 수목이 하늘을 가리며 하늘로 솟구쳤다.  

수심이 깊은 무당소에서 계곡의 옆구리를 돌아 오르니 용추폭이 거대한 반석을 타고 철철 흐른다. 거대한 화강암반을 뚫고 쏟아지는 폭포 아래에 하트형으로 패인 소沼가 윗용추이며, 물이 소에 잠시 머물 새도 없이 매끈한 암반을 타고 흘러내리면서 그림 같은 아랫용추를 빚어내고 있다.

이 용추는 에메랄드 빛 투명한 물이 넘쳐흐르고 있어 신비감을 더한다. 이 폭포에는 암수 두 마리의 용이 하늘로 승천했다는 설화가 있다. 폭포 양쪽의 큰 바위에는 두 마리의 용이 승천 할 때 남긴 용비늘 자국이 전설처럼 남아 있다.

폭포에서 쏟아져 푸른빛을 띤 맑은 물은 좁은 바위 틈 홈을 타고 그 아래 용소로 떨어진다. 그 아래에는 용이 승천하기 전 알을 품었다고 하는 움푹 파인 웅덩이가 있다. 이 용추폭 아래의 무당소는 수심이 3m 정도로 100여 년 전 물을 긷던 새색시가 빠져 죽은 후 그의 넋을 위해 굿을 하던 무당마저 빠져 죽었다는 이야기가 전한다. 

이곳 용추에서 소요하며 오솔길을 따라 20분쯤 오르면 월영대가 길손을 반긴다. 달이 뜨는 밤이면 바위와 계곡에 달빛이 그윽하게 비친다 하여 월영대月影臺라고 했다. 여기가 산행의 분기점으로 오른쪽으로 곧장 오르면 밀재에 이르고, 왼쪽으로 오르면 피아골로 대야산 정상까지 깎아지른 오르막길이다.

대야산 중턱에 솟은 대문바위

오늘 산행 길은 무당소를 출발하여 용추폭포-월영대삼거리-밀재-거북바위-대문바위-전망대-삿갓바위-대야산 정상-피아골-월영대-무당소 원점회귀 코스이다.

이 대야산 용추의 계류는 무당소를 지나 문경 선유동으로 흘러든다. 선유동 계곡에는 ‘학천정’이라는 아름다운 정자가 있다. 숙종 때의 학자인 이재(李縡)를 기리기 위해 1906년에 세운 것이다. 학천정 앞의 큰 바위에는 선유동문이라는 글씨가 새겨져 있는데 여기서부터 선유구곡이 시작된다.

옥석대, 난생뢰, 영귀암, 탁청대 등의 음각글씨는 신라시대 최치원이 남긴 글씨로 알려진다. 또 용추계곡 여러 바위 면에도 세심대 활청담 옥하대 영차석 등의 음각 글씨 역시 고운孤雲의 서체이다. 예전의 대야산은 대하산, 상대산 등으로도 불렸고 1789년에 발행된 『문경현지』에서 부터는 대야산으로 적고 있다.

특히 철종 때 '대동지지(大東地志)'에는 “大耶山 曦陽山南支上峯曰毘盧爲仙遊洞主山西距淸州華陽洞三十里: 대야산은 희양산의 남쪽 갈래로 제일 높은 봉우리가 비로봉이고, 선유동의 주산이다. 서쪽의 청주 화양동이 삼십 리이다.”라고 기록하고 있어 대야산 정상을 비로봉으로 불렀음을 알 수 있다.

월령대의 넓은 반석에는 이미 많은 피서객들로 왁자지껄 했다. 하산 길에 다시 앉아 보기로 하고 산행을 재촉한다. 밀재를 향해 숲속 길로 향했다.

등산로 양 옆으로 조릿대가 오솔길을 만들고 있다. 겨우 한 사람만 빠져 나갈 수 있는 작은 길만 허락하며 온통 조릿대가 숲을 이루었다. 필자가 가장 좋아하는 오솔길이다. 간간이 조릿대 숲 틈새로 오전 햇살이 아름다운 환희의 풍광에 감탄한다. 

대야산 삿갓바위. 바위와 바위 사이 좁은 틈새로 등산로가 이어진다

밀재에 이르니 벌써 이른 점심을 먹는 산행객으로 붐빈다. 여기에서부터 거북바위까지는 통나무계단 오르막길이다. 산행 길에서 규칙적인 오르막길은 허벅다리가 뻐근할 정도로 임팩트를 준다. 거북바위, 옆모습이 마치 큰 거북을 닮아 거북바위라 했다.

머리 모양까지 흡사하게 닮았다. 대야산은 아직까지도 넓은 조망을 허락하지 않고 있었다. 좀 더 오르면 대문바위가 나올 것이다. 대문바위에선 사방으로 전망이 좋다. 바위가 마치 솟을대문처럼 3m 높이로 솟아 겨우 한사람만 빠져나갈 수 있도록 허락한다. 아래로는 수십 길의 벼랑이다. 소나무와 솟을대문 바위와 파란 하늘이 어우러진 진경산수화이다.

맑고 파란 하늘 아래 대야산 능선이 사선으로 흘러내리고 있다(사진: 조경렬)

이런 절경을 어찌 산행이 아니고서야 구경할 수 있으랴. 눈앞의 암봉 자락이 뭉게구름에 걸렸다. 오전에 흐리던 하늘이 화창하게 열리며 두둥실 뭉게구름을 띄우고 있다. 저 멀리 첩첩이 쌓인 산과 산들의 아름다운 곡선이 선계仙界를 꾸며내고 있다.

여기에서 다시 능선을 따라 돌아가니 삿갓바위가 나왔다. 마치 삿갓 모양을 닮았다 하여 삿갓바위이다. 우리 국토의 산야에는 이렇게 여러 형상으로 피조물을 닮은 바위가 많고, 수많은 전설과 설화를 품고 억겁의 세월을 달려왔다. 그 이름도 아름답고 신비한 바위들이다. 수많은 산행객이 오르내리며 이들을 사랑하고 그리워하며 오갔을 것이다.

대야산 정상. 여기가 한반도의 등뼈 백두대간의 밀재-대야산 구간이다. 남쪽으로 조항산, 북쪽으로 촛대봉으로 이어진다.

이제 멀리 대야산 정상이 보인다. 좁은 정상에 수많은 산행객의 모습이 빼곡하다. 필자도 이제 30분이면 정상에 다다를 것 같다. 이글거리는 8월의 뜨거운 태양이 산정을 달구며 대야산 피아골, 다래골로 미끄러져 내리고 있다. 여기가 한반도의 등뼈 백두대간의 밀재-대야산 구간이다. 남쪽으로 조항산, 북쪽으로 촛대봉으로 이어진다.

정상에서 사방을 향하여 사진 촬영을 하느라 더위도 잊었다. 이 대야산 정상에서 피아골 하산 길은 매우 급경사면을 이룬다. 급경사에다 길이 정비되지 않아 곳곳에 로프가 설치되어 있지만 세심한 주의가 필요하다.

피아골은 3Km 이상이 급경사면이다. 숲이 우거져 하늘이 보이지 않을 정도이지만 계곡의 수량은 많지 않다. 한여름 산행은 계류의 시원한 물소리로 더위를 잊는다.

숲이 우거진 계류의 암반에 앉아 발을 담그며 탁족(濯足)으로 소요하는 풍류는 산행의 또 다른 즐거움이요 산객의 특권이다. 허나 피아골은 가뭄에 건천이라 아쉬웠다. 이제 계곡 물소리가 제법 커지는 것을 보니 월영대가 가까워지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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