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중앙취재본부장 조대형

정미홍 전 아나운서가(전 대한애국당 사무총장)이 7월 25일 새벽에 별세하였다.

“정미홍 전 아나운서는 난치병을 앓고 있던 가운데 완치 판정을 받았지만, 사실상 면역 기능이 저하된 데다가, 이재명 경기지사 및 김성환 전 노원구청장과의 소송전 등의 여파로 2015년 1월에 폐암 판정을 받았다는 게 정설이다. 그런 와중에도 회생의 투혼을 불사르며 한편 삶을 정리하고 있었다.

정미홍 전 사무총장은 1982년부터 1993년까지 KBS 아나운서로 활동하며 서울시 최초 홍보 담당관을 역임하였다.

지난해 7월 조원진 대표와 변희재 미디어워치 대표고문 등과 손잡고 보수신당 대한애국당을 창당했다.

박 전 대통령의 탄핵을 반대하는 태극기 집회에 지속적으로 참여하며 "탄핵 인용 시 목숨이라도 내어 놓겠다"는 발언으로 화제가 된 인물이다.

이후에는 박 전 대통령의 무죄 석방 요구에 앞장서 왔다. 한마디로 보수정치의 여전사의 삶을 살았지만, 우리는 정미홍의 어제와 오늘과 내일을 생각하기 전에 그제는 어떠했는지를 생각지 않을 수 없다.

정미홍은 보수정치의 아이콘이었다. 그럼에도 왜 정미홍은 한국 정치에 불편한 존재가 되어야만 했을까. 현재 시점에서 정미홍을 비판적으로 조롱하는 시각, ‘한 전직 여자 아나운서의 교양 있는-왕비-코스프레’라는 시각은 어느 정도 시대적·공간적 배경을 고려하며 교정되어야만 한다. 또 하나의 비판은 한국 정치의 드문 지식인으로서 정미홍의 국가에 대한 관심을 사소하게 취급했다든지 냉담하게 거리감을 두었다는 데서 찾을 수 있다.

사실 지적 허영과 자의식 과잉으로 평가받아온 정미홍에 대한 이미지는 ‘편집된 진실’이다.

동경과 기대감 없이 살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 그리움은 무너져버려도 슬픈 아름다움을 지니고 있다. 정미홍은 이미 일탈된 보수정치를 온전하게 살려내고자 했던 보수정치의 아이콘이다. 부박한 한국 정치현실에서 기성세대들의 언어와 풍속, 관념과 관례 속에서 새로운 세계를 번역하고자 했던 지식인의 초상이었다. 사정이 이러하기 때문에 정미홍의 정치에 대한 열광적 열기가 쉽사리 식지 않는 것이다.

정미홍의 죽음은 보수정치의 실존적 죽음이다. 그는 스스로 실존주의자가 아닌 존재론자라고 하지만 존재론적 실존주의자라고 부르고 싶다. 그녀는 육체라는 살덩이에 우리의 순수한 의식 갇혀 있는 것을 큰 비극으로 생각했고, 결국 그러한 실존 속에서라도 고양된 정치의식을 갖는 것, 그래서 어떤 절정의 순간, 그런 찰나를 경험해보는 것을 "초월" 이라고 생각했고, 초월의 경지를 인생 최대의 목표로 생각했던 것 같다.

보수정치라는 것의 범주가 넓어서 어떻게 단정적으로 말할 수는 없지만, 필자는 여기에서 보수정치의 실패의 한 단면을 본다. 삶에 대한 강렬한 열정과 주체할 수 없는 지적 욕망, 기괴한 삶에 이어진 전설 같은 죽음은 그녀를 하나의 전설로 남게 했다. 정미홍(1958~2018), 공인되고 있는 그녀의 직업은 방송인이자 정치인이지만, 실상 우리에게 각인돼 있는 정미홍은 불꽃같은 삶을 살다간 인물이다.

59세의 젊은 나이에 스러져간 비운의 여성 '정미홍'. 그 정치적인 독보성과 더불어 개인사적 비극이 한데 엮여 만들어진 '정미홍'이라는 정치적 텍스트의 생명력은 오히려 그가 죽은 후에 명맥이 끊이지 않고 있다.

정미홍의 보수정치 중심주의와 개인주의적 성향의 한계를 보면서도 그가 추구한 정치가 현재의 속물성에서 스스로를 방어하기 위한 하나의 선택이었다고 진단하고 싶다. 스스로 "의식 밑의 심층에 뿌리박히는 선자(先者) 의식이 콤플렉스가 되어버리고 커갈수록 고립주의와 독선주의"가 강했던 정미홍은 결국 21세기 한국정치의 속물성과 끝내 불화할 수밖에 없었다. 때문에 정미홍과 불화한 보수정치의 실패를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 더 이상 '정미홍'을 배제할 수 없을 것이다. 한국정치에서 정미홍의 존재를 배제시키는 논리의 저변에는 한국정치 제도의 보수성과 편협성이 작동하고 있다. 필자는 기성 정치인들의 통과의례로 읽혔던 정미홍에 대한 열광보다 더 많이 들리는 ‘빈정거림’을 변호하고 싶다.

이제 정치인 정미홍은 이 세상과 절연했다. 내가 아는 한, 정미홍의 죽음은 가장 아름다운 사유다. 이런 사유 속에서 죽음은 아무런 이미지를 갖지 않는다. 그것은 생각할 필요가 없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비트겐슈타인이 죽어가면서 남긴 마지막 말은 ‘이 정도면 충분해’였다. 정열을 다해 삶을 산 자들은 ‘죽음’을 앞에 두고서도 죽음 ‘이후’를 생각하지 않는다.

혼란스러운 시국이다. 하지만 많은 이들이 주목하고 있기에 희망이 있다고 사람들은 말한다. 자유주의적 보수주의의 아버지로 추앙받는 영국의 에드먼드 버크는 말했다. “악이 승리하는 데 필요한 조건은 오직 선한 자들의 무관심이다.”

대국민적 관심이 요구되는 시점에 보수정치의 한 획을 그었던 정미홍의 이 세상과의 작별은 그래서 슬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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