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진우기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미국 우선주의' 외교가 2차 세계 대전(1939~1945년) 이후 70년 넘게 국제 질서를 주도해 온 서구 동맹의 분열을 가속화하고 있다.

트럼프 취임 이후 미국이 일방적 탈퇴나 변경을 선언한 국제 협정들의 명단은 날이 갈수록 길어지고 있다. 그는 2017년 1월 취임 직후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의 주요 사업인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을 탈퇴했다. 그는 유엔의 역할을 비판하고 서구 집단 안보체제 나토(NATO. 북대서양조약기구)를 '무용지물'이라고 지적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올해 5월에는 이란 핵협정(JCPOA·포괄적공동행동계획)을 일방적으로 탈퇴했다.

트럼프가 키를 잡은 미국은 이달 유럽 동맹들에게까지 칼날을 겨줬다. 트럼프는 유럽연합(EU)과 캐나다산 철강·알루미늄 관세 부과를 강행하면서 미국의 독자적 이익을 최우선하겠다는 방침을 다시 한 번 보여줬다.

미국과 유럽의 갈등은 사실 트럼프 대통령이 등장하기 전부터 수면 아래에 쌓여 있었다. 트럼프라는 예측불가의 인물이 미국 대통령에 오르면서 그동안 숨어 있던 갈등의 불씨에 불이 붙은 것이다.

자유민주주의 가치를 공유하는 미국과 유럽은 이 같은 위기 속에서도 공동 이익 증진을 위해 더 많은 협력이 긴요하다고 보고 다자 협정과 자유무역 확대를 고수했지만 트럼프 대통령이 등장하면서 분위기는 180도 반전됐다.

트럼프로선 '미국 우선주의',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라는 공약을 충실하게 수행하고 있다.

트럼프는 그가 미국의 재건을 이끌 것이라고 주장한다. 미국이 국력 쇠퇴에도 여전히 군사경제적으로 비교할 데 없는 초강국이라는 점을 고려할 때 현 상황이 미국과 나머지 세계의 관계를 재정비하는 기회가 될 거란 전망도 나온다.

그러나 트럼프의 일방주의가 미국의 신뢰도를 낮춰 고립을 자초하고 있다는 우려와, 중국과 러시아 등 수정주의 국가들이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는 상황에서 서구 동맹 균열이 전 세계적 불안을 조성할 거란 경고가 이어지고 있다.

유럽은 초기에는 트럼프 달래기를 시도했지만, 미국이 이란과 거래하는 유럽 기업에 대해 제3국 제재를 추진하고 유럽산 수입품에 관세를 부과해 자신들의 직접적 이익이 침해될 위기에 처하자 강하게 발끈하고 나섰다.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는 미국에 안보를 기대지 않는 '유럽 홀로서기론'을 거듭 강조했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과 쥐스탱 트뤼도 캐나다 총리는 무역 문제를 놓고 트럼프 대통령과의 노골적 언쟁을 마다하지 않았다.

유럽이 역관세 부과나 미국 따돌리기로 강경한 역공세에 나설 경우 범대서양 동맹 간 긴장은 더욱 높아질 수밖에 없다. 유럽연합(EU)은 미국의 자국 기업 제재와 관세 부과에 보복하겠다고 경고했고, 지난해 12월에는 이미 회원국끼리의 안보기구인 '항구적안보협력체제'(PESCO)를 출범했다.

일각에선 유럽이 미국 의회의 협조를 구하며 신중하게 2020년 차기 미국 대선을 기다릴 거란 분석도 있다. 다만 트럼프가 재선에 실패해도 후유증이 상당할 거란 우려가 높으며, 만에하나 트럼프가 백악관 자리를 지킨다면 그에 대한 재평가가 불가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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