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설위원

지난 해 10월 대전 서구의 한 아파트 단지에서 발생한 교통사고로 어린 딸을 잃은 소방관 부부의 사연은 사각지대에 놓인 아파트 단지 내 교통안전문제를 점검하는 계기가 됐다. 정부가 최근 아파트 단지를 대상으로 정밀진단에 들어가기로 했다는 소식이다. 그렇지만 약속한 관련 법 개정은 아직도 감감무소식이다.

청와대 청원이 21만 명을 넘을 정도로 국민적 공분을 샀던 아파트 단지 내 교통사고 처리 문제는 허점이 많은 게 사실이다. 여아가 사망했음에도 아파트 단지 내 횡단보도가 사유지라는 이유로 사고를 낸 가해자가 처벌을 회피하고 있고, 도로교통법 상 12대 중과실에 해당되지 않는 것을 악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현행 도로교통법은 아파트 단지나 대학교 교내 등의 사유지를 도로 외 구역으로 분류해 교통사고 통계에도 잡히지 않는다. 이에 따라 그동안 아파트 단지 내에서 발생한 교통사고의 유형과 피해정도에 대한 정확한 분석조차 이뤄지지 않았다. 그만큼 아파트 단지 내 교통안전은 사각지대에 놓여있었음을 반증한다.

정부는 국민 청원이 쇄도하자 개선을 약속했다. 이철성 경찰청장이 지난달 14일 청와대 SNS 방송에 출연해 보행자 보호를 강화하겠다는 공식 답변을 내놨다. 당시 내용을 요약하면 도로 외 구역에서 보행자를 우선 보호하는 의무를 신설하는 내용의 도로교통법 개정을 적극 추진하고 이를 지키지 않을 경우 벌칙을 부여하는 방안을 적극 검토한다는 것이다.

정부는 이와는 별도로 아파트 단지 내 도로의 위험요소 등을 진단해 알려주는 무료 컨설팅을 진행하기로 했다. 국토교통부는 최근 전국 100개 아파트 단지를 대상으로 안전점검 서비스에 들어간다고 밝혔다. 아파트 단지 주민들은 이번 점검을 통해 보다 안전한 보행환경을 보장 받을 수 있을 것을 기대하고 있다.

하지만 아파트 단지 내 교통안전을 보장할 제도적 장치인 법 개정과 관련한 움직임은 벌써 수그러든 느낌이다. 국민들의 청원이 쇄도하자 개정하기로 약속한 도로교통법 개정은 국민적 관심이 수그러드는 분위기를 보이자 추진 속도도 한풀 꺾이는 모습이다.

물론 현재 국회 내에서도 몇몇 국회의원들이 이와 관련한 법 개정 발의가 잇따르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법 개정을 위해서는 국회의 통과가 필요한 만큼 국회의원들이 나서주면 될 수도 있다.

그러나 정부가 약속한 만큼 국회에 미루지 말고 보다 적극적으로 추진해야 한다. 대전의 아파트 단지에서 여아 사망사고가 발생한지 벌써 6개월이 다 되어간다. 이런 일들은 개정에 대한 국민적 공감대가 형성된 만큼 조기에 추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정부는 도로교통법 개정에 속도를 내 주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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