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진우기자)  서지현 창원지검 통영지청 검사가 활시위를 당긴 '미투'(metoo·나도 당했다) 운동이 공연계를초토화 시켰다. 거장으로 인정받는 연출가부터 유명 배우의 성추문 등이 뒤섞이며 오명을 뒤집어썼다.

연극계 거장으로 통한 이윤택 전 극단 연희단거리패 예술감독이 시한폭탄이었다. 김수희 극단 미인 대표가 지난 14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10년 전 연극 '오구' 지방 공연 당시 여관에서 이 전 감독으로부터 안마 요구를 받은 뒤 성추행을 당했다고 쓰면서 폭탄의 버튼이 눌러졌다. 이후 이 전 감독에 대한 각종 성추행, 심지어 성폭력 의혹이 끊임없이 제기됐다.

이 전 감독은 19일 기자회견을 열고 사과를 했으나 성폭력에 대해서는 인정하지 않으면서 더 큰 논란에 휩싸였다.

이어 연극계 또 다른 거장인 오태석 극단 목화 레퍼토리 컴퍼니 대표에 이어 뮤지컬대부 윤호진, 국립극장장 유력 후보이던 김석만 전 한예종 교수, 연기력으로 소문난 배우들인 한명구, 최일화, 최용민, 김태훈 등 공연계 명망 있는 인사들이 대거 성추문에 휩싸이면서 공연계는 일대 패닉에 빠졌다.

이번 미투 운동으로 인해 공연계는 민낯이 까발려졌다다. 가해자의 추악함과 함께 해당 분야의 폐쇄적인 문화와 삐뚤어진 시스템이 만들어낸 결과물이라는 것이 중론이다.

우선 연희단거리패처럼 밀양연극촌에서 일정 기간 합숙을 하며 이윤택 전 감독이 좌지우지하는 연극 공동체 생활을 하는 곳에서는 그의 명령은 곧 법전과 같았다.

폐쇄적인 환경에서 공동작업을 해야만 하는 연극계 환경에서 연출가 또는 예술감독은 전권을 쥐고 있다.

아울러 가해자들이 대부분 귄력을 쥔 교수라는 신분을 갖고 있었다는 점도 톺아볼 만하다. 오태석, 김석만, 윤호진, 한명구, 최일화, 최용민, 김태훈 등이 모두 교수였다.

대중 매체 배우인 동시에 연극제작자로 명성이 드높았던 조재현과 대중매체에서 할동하는 조민기 역시 교수 신분을 가지고 있었다. 이들은 갑의 지위로 을이 될 수밖에 없는 여학생들을 성추행했다.

서울예대와 한국예술종합학교 등 성추행 추문에 얽힌 교수들이 상당수 재직돼 있던 명문 예술학교들은 구조적인 문제에 책임을 통감한다며 공식적으로 사과문을 발표했다.

공연계에는 성추문에 휩쓸린 가해자들이 배우나 스태프로 참여하는 공연들에 대한 관객들의 보이콧 조짐이 일고 있다. 연극·뮤지컬 관객이 중심이 된 '연극·뮤지컬관객 #위드유(WithYou)' 측은 지난달 25일 오후 공연계 성지인 대학로 마로니에 공원에서 미투를 응원하는 집회를 열었다.

피해자와 연대하는 이들이 원하는 건 가해자들의 진정성 있는 사과와 동시에 이들에 대한 정당한 법적 처벌 요구다. 실제 김수희 극단 미인 대표 등 피해자 16명은 2월28일 서울중앙지검에 이윤택 전 감독을 상대로 한 형사고소장을 냈다.

재단법인이지만 아직 문체부의 상당한 지원을 받고 있는 국립극단 역시 계약서 내 성폭력 관련 조항을 체계적이고, 명확하게 보완하기 위해 법률자문 진행 등을 약속했다.

공연계는 업계에서 미투 운동이 한동안 이어질 것이라 보고 있다. 이 기회에 구조적으로 만연한 만행의 고리를 끊자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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