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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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8.02.25 1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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림삼의 초대시

林森의 초대

달뫼

 

달뫼엔

밤으로 하냥

구름바다 흘러넘쳐

 

인간사

허섭쓰레기

마파람 불어 내몰고

 

승천하는

신선 눈동자

벌떼로 훨훨 나는데

 

바람폭포

고드름 마다

달송이 열리누나

 

시의 창

목하 새 봄이 가까워졌다.

도무지 물러날 줄 모르던 추위가 어느새 슬그머니 꼬리를 감추고, 순식간에 온 누리로 봄 내음이 슬슬 풍겨나기 시작한다.

유독 짧은 2월의 끝자락이 새삼 조급증을 불러일으킨다.

무릇 인생이란 게 별 거 아니어서 똑같은 길이의 시간들을 모아 하루씩 차례로 엮어 삶이라는 긴 여정을 만들어가는 거지만, 요즈음의 하루들은 웬지 모르게 하루라는 이름으로 막연하게 지내버리기에는 조금은 더 아쉽고 안타까운 기분이다.

정말 이렇게 살아도 되는 것인지, 해놓은 것 하나 없이 훌쩍 흘러버린 시간을 맥젓게 바라보며, 의미없이 지내는 나날들에 회한과 반성과 자탄을 얹어 불현듯 지는 해를 쫓아가 붙잡고 싶어지곤 한다.

하루가 24시간이 아니라 그 곱절이 되더라도, 그저 더디 가는 거라면 쌍수를 들어 환영하고픈 건 유독 필자에게만 느껴지게 되는 얄팍한 감상인 걸까?

어떤 이가 인생을 80년으로 보고, 그것을 하루 24시간 안에 축소해보았더니 이런 결과가 나왔다고 한다.

나이가 30세면 오후 2시 25분이고, 40세면 오후 4시 16분, 45세면 오후 5시 43분이 되는 셈이다.

또 나이가 50세면 오후 7시가 되고, 55세면 저녁 8시, 60세면 밤 9시가 된다.

그러다 70세가 되면 밤 10시의 종이 울린다는 것이다.

필자는 지금 몇시의 삶을 살고 있는 걸까?

퇴근 시간대는 지났으며 저녁식사는 했을테고, 그렇다면 이불을 펼 때가 된 셈인 건가?

인생은 결코 길지 않아 어쩌면 하루살이에 불과할지 모른다.

누구나 곧 날이 저물어 깜깜한 밤시간대에 이르게 될 것이고, 언젠가는 자정을 알리는 괘종소리를 듣게 될 것이다.

그러니 찰나조차도 아까이 허송해서는 안되겠다는 생각이 불현듯 드는데. 또한 다른 건 제껴놓더라도 날이 추울수록 웬지 홀로 남겨진 것 같은 느낌이 싫어진다.

가는 시간을 하루하루 헤아리며 마치 자신의 삶의 구경꾼이 된 듯 물러나 앉아 고독해 하기는 더 싫어지니, 언뜻 사람이 더욱 그리워지는 요즈음이다.

그러고 보니 나이를 먹어갈수록 사람 사귀는 일이 여간 어려운 게 아니다.

사람을 사귀고 알아간다는 것이 더 없이 소중하고 행복한 일임을 말면서도 사람과 사람의 관계만큼 복잡한 것도 없기에, 서로에게 다가가기가 무엇보다 신중할 수 밖에 없는 터수다.

그래도 새삼스레 생각해보니, 여러 사람들과 어울려 우리라는 이름으로 살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푸근한 위안이며 기쁨이며 큰 행복인지 모른다.

실상 우리라는 이름만큼 넉넉하고 편안한 불리움이 또 있을까?

사람이 서로 어울려 우리라는 이름으로 살아갈 때라야 더러는 고달픈 삶이라 할지라도 궁극적으로는 푸르름이 가득한 삶의 정원을 가꿀 수 있을 것이며, 사랑과 믿음이 꽃피는 하루하루의 꽃밭에 그 어떤 꽃보다도 향긋한 사람의 향기가 비로소 꽃인 양 머무를 수 있을 게다.

그렇게 이치상으로는 잘 알면서도, 나이를 먹어갈수록 만남이 점점 더 어려워지는 이유는 아마도 세월의 무게만큼 아집이 쌓여가는 탓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곤 한다.
얼마 전 모처럼 짬을 내서, 오래 묵은 친구들과 만나 즐거운 시간을 가졌다.

그렇지 않아도 바쁘고 복잡한 현대인으로 살면서 남들에게 뒤쳐질 수도 없는 노릇인지라, 언제부터인지 첨단화된 전자기기와 스마트폰, 인터넷 등을 생활 속에 들여놓으면서 살게 되었고, 돌이켜보니 그로 인해서 이것 저것 얻어진 것도 많지만, 실은 필자의 경우는 얻어진 것 이상으로 잃어진 것 또한 많은 듯 하다.

사람~ 오랜 지인들과의 만남이 적조해진 것이 그 중의 으뜸이다.

정형화된 생활 습관 탓에 어중간한 건 그냥 기계에게 맡기면서도 전혀 불편함을 못느끼고 사는 게 현실이다 보니, 실질적인 만남을 가질 여유를 만들어내기가 웬만해서는 가당치 않다는 사실 자체를 깨닫지도 못하고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그래도 역시 해묵은 친구들은 오랜만에 만났음에도 늘 푸근하고, 마치 어제 본 듯 익숙해서 편안하고 정겨웠다.

‘나이를 먹어가니 사람이 그립고 때로는 외롭네.’

필자만 그런가 했더니 친구들의 마음도 필자와 별반 다르지 않음을 확인하는 자리였다.

‘이젠 서서히 인맥 관리를 해야 할 나이인 것 같아.’

우스갯소리 삼아 이야기를 했지만 정말 나이를 먹어가면서 사람의 체온이 절실하다는 생각과, 우리라는 관계의 형성에 목마른 이 느낌은 지울 수가 없는 것 같다.

그렇다면 씁쓰레한 후회에 매달려서 겅중거리기 보다는 당장 한 살이라도 덜 먹었을 때 얼른 나서야겠다.

그래서 가능한 한 더 많은 좋은 이들과 어울려 우리라는 이름으로 하나이 되어져, 사람 냄새가 물씬 풍기는 세상, 사람이 꽃보다 아름다운 세상, 비단 꿈속에서 누렸던 세상만은 아닌 꿈결 같은 현실 세상을 만드는 데 한 몫 거들어야겠다.

얼굴은 달라도 서로의 꽃이 될 수 있고, 생각은 달라도 서로의 나무가 될 수 있으며, 삶의 색깔은 달라도 서로의 숲이 될 수 있는 우리라는 모듬체.

모질지 않게, 모나지 않게, 섭섭지 않게, 배려와 조화로 함께 어우러지는 우리라는 관계.

황무지 같고 모래알 같은 각박한 세상 속에서도 우리라는 이름으로 부르며 기꺼이 서로를 사랑할 수 있는 삶의 모습들을 만드는 데 주역이 되어 작은 힘이라도 보태야겠다.

그렇게 물소리가 정겨운 인생의 개여울로 일상의 작고 소박한 이야기가 잔잔히 흐를 때, 손에 손을 잡은 우리는 모두가 어깨를 걸고 서로의 세상을 격려하며 사랑의 징검다리를 건널 수 있을 거다.

허접쓰레기 같은 미련과 집착은 바람으로 내몰고 그 어떤 세파와 역경에서도 굴하지 않을 아름다운 인연의 우리는, 상처를 보듬어 새 삶을 설계하며 구름바다 흘러넘치는 사랑의 달뫼에 오를 수 있을 거다.
승천하는 신선 눈동자처럼 영롱하며, 꽃잎 수놓은 예쁜 손수건처럼 소중한 사연들로 엮은 삶의 손을 들어 송알송알 땀방울 맺힌 서로의 이마를 닦아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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