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기독교 복음주의의 대부인 빌리 그레이엄 목사가 21일(현지시간) 99세로 타계했다. 뉴욕타임스(NYT)와 CNN방송 등은 빌리 그레이엄 복음주의협회 대변인 제레미 블룸의 발표를 인용해 그레이엄 목사가 노스캐롤라이나의 몬트리트 자택에서 숨을 거두었다고 보도했다. 출처: CNN방송/뉴시스

(이태준 기자)미국 기독교 복음주의의 대부인 빌리 그레이엄 목사가 21일(현지시간) 99세로 타계했다. ‘개신교의 교황’ 혹은 ‘미국의 목자’로 불리는 그레이엄 목사는 오직 예수를 통해서만 구원받을 수 있다고 주장하며 성경의 권위를 강조했다.

빌리 그레이엄 목사는 한국과도 깊은 인연을 갖고 있다. 그가 처음 한국을 찾은 것은 한국전쟁 와중인 1952년 12월이었다. 당시 그는 부산에서 북한 출신 피란민 등을 상대로 설교를했다. 이어 1956년 다시 한국을 찾은 그레이엄 목사는 서울운동장에서 8만여 명이 운집한 가운데 설교를 했다. 

 세 번째 한국 방문기간인 1973년 5~6월엔 전국을 돌며 연인원 334만 명을 대상으로 설교하는 대기록을 세우기도 했다. 그해 12월 3일 서울 여의도에서 열린 전도대회에는 110만여 명의 인파가 운집했다.

 그레이엄 목사는 김일성 전 북한 국가주석 생존 당시인 1992년과 1994년 방북해 평양에서 설교를 하기도 했다.

 뉴욕타임스(NYT)와 CNN방송 등은 이날 빌리 그레이엄 복음주의협회 대변인 제레미 블룸의 발표를 인용해 그레이엄 목사가 노스캐롤라이나의 몬트리트 자택에서 숨을 거두었다고 보도했다. 그레이엄 목사는 지난 몇 년간 전립선 암, 파킨슨 병 등과 싸워왔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21일 트위터를 통해 “위대한 빌리 그레이엄이 죽었다. 그런 인물은 없었다. 모든 종교인들과 기독교인들이 그를 기릴 것이다. 그는 매우 특별한 분”이라고 애도했다. 

 마이크 펜스 부통령은 성명을 통해 “(나의 아내인) 카렌과 나는 20세기 가장 위대한 미국인 중 한분인 빌리 그레이엄 목사의 별세 소식을 전해 듣고 슬픔에 잠겼다”라고 밝혔다. 

 지미 카터 전 대통령도 성명을 통해 “나와 아내 로절린은 그레이엄 목사의 별세 소식을 듣고 깊은 슬픔에 잠겼다. 나는 그레이엄 목사를 친구이자 조언자로서 꼽을 수 있어서 기쁘다”라고 적었다. 

 CNN방송은 그레이엄 목사가 해리 트루먼에서 버락 오바마 대통령에 이르기까지 60여 년 동안 미국 역대 대통령들의 정신적 지도자 역할을 했다고 전했다. 조지 W. 부시 전 대통령은 "그레이엄 목사의 영향으로 젊은 시절 방황을 끝내고 기독교 신자로 거듭났다"고 입버릇처럼 말했다. 그레이엄 목사의 지난 95세 생일파티에는 당시 사업가였던 트럼프 대통령과 미디어 재벌 루퍼트 머독, 새라 페일린 전 알래스카 주지사 등 900여명이 참석했다.

 그레이엄 목사는 1972년 리처드 닉슨 전 대통령과 백악관 회동 때 유대인 비하 발언을 한 사실이 뒤늦게 공개돼 물의를 빚기도 했다. 2002년 3월 미 국립문서보관소가 공개한 두 사람의 회동 녹음테이프에는 “유대인은 포르노물을 만드는 사람들이다. 내가 이스라엘에 우호적이어서 내 주변에 유대인들이 몰리지만, 그들은 내가 그들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를 모른다”라는 육성이 담겨 있었다.
  
 그레이엄 목사는 1918년 11월 7일 노스캐롤라이나 주 샬럿에서 태어났다. 1940년 플로리다 성경대학을 졸업하고 남침례회에서 목사안수를 받았다. 1943년 일리노이주 휘튼대학을 졸업한 후 웨스턴스프링스 제일침례교회 목사로 사역의 길에 들어섰다. 이어 국제십대선교회(YFC)에 참가하면서 전도활동을 시작했다. 

 1947년 그는 자신의 첫 군중집회인 로스 LA 전도대회를 통해 미 전역에 이름을 알렸다. 1954년 영국 런던 전도대회를 성공적으로 마치면서 세계적인 부흥 전도사로 발돋움하기 시작했다. 이어 1950년 빌리 그레이엄 전도협회를 창설해 전 세계 전도대회를 후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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