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수남 국장

광명(光明)은 언제쯤이면 품은 빛을 볼 수(發光)있을까? 품은 것이 확실한가? 일제강점도36년 만에 끝나 광복(光復)을 했다. 이렇듯 광명시도 개청한지36년이 지났다. 그런데 품고 있는 빛은 볼 수가 없다. 최근의 광명시의원들의 기사를 보면서 하는 말이다.

양기대(梁基大)광명시장은 기대(基大)라는 이름처럼 34만시민이 빚(債務)걱정 않고 편히 살 수 있는 큰(大)터(基)를 닦았다. 그래서 시민의 기대(企待)에 부응한 기대시장이 됐다. 앞으로도 집행부와 의회가 바라는 기대(企待)를 버리지 않는 기대시장이 돼주기를 기대(企待)한다.

이런 기대는 필자만은 아닐 것이다. 34만시민은 물론이고 광명을 사랑하고 관심 있는 모두의 바람일 것이다. 명심했으면 한다.

또 이병주의장도 이병주라는 이름처럼 광명시와 광명시의회라는 두병(二甁)의 주인노릇을 확실하게 해서 불빛처럼 빛(炳)나는 기둥(柱)이 되라. 광명시의회는 그 동안 시민들의 귀를 멍멍 하게 하는 굉음(轟音)을 많이 냈다. 최근에도 빛을 품었다는 광명시의원의 기사가 시민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했다.

이해가 안 된다. 그들이 입에 달고 사는 시민들의 대표요. 시민의 머슴이라고 생각했다면 이런 추태와 불미스런 굉음(轟音)이 날까? 광명시의원들은 해넘이를 보는 임기지만 배신 없이 한주인만을 지키는 무술년(戊戌年)개띠 해를 맞아 반성을 해봐라. 내가 과연 광명시 34만 주인을 보살피고 지켰는가.

또 임기동안 주민들의 박수를 받을 의정을 했는가? 했다면 박수를 받으며 높이 평가(評價)가 돼야한다. 반면 혈세로 호의호식(好衣好食)하고 무형의 권력까지 누리며 밥값을 못했으면 책임을 저야 한다.

그리고 창피(猖披)를 알고 반성(反省)과 수신(修身)과 책임을 저야 한다. 의원들 중에는 열심히 의정활동을 한의원들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신성한 본회의장에서 고성과 추태 또 삼일천하(三日天下)로 끝난 감투싸움은 없었는가?

또 고소고발을 지역 행사처럼 하지는 안했는가? 광명시 의원들은 가슴에 손을 얹고 반성해보라. 본란은 실수(失手)나 실언(失言)또 잘못을 당연시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누구도 살다보면 잘못과 실수 또는 실언과 고소고발을 할 수도 있다. 그러나 고소고발은 최후의 방법이다. 대화가 우선이다. 노력해도 안 되면 법으로 해결하는 것이 맞다.

예로부터 송사(訟事)를 좋아하면 송사로 망(亡)하고 물(水)을 좋아 하면 물에서 사(死)한다고 했다. 어떤 조직도 상대를 인정 않고 싸움만하면 발전이 없다. 광명시의회도 예외가 아니다. 광명시민의 행복과 광명시발전을 위해 노력했을 의원들은 지금까지의 의정에 대한 대차대조표(貸借對照表)를 작성해보라.

과연 내가 충직하고 배신을 모르는 개(犬)처럼 주인인 시민을 잘 지켰는가? 또 밥값은 했고? 시민에게 피해는 끼치지 안했는가? 내가 시민과 조직 또 집행부를 속이지 않고 양심적인 의정을 했는가? 나의 이기심 때문에 공직자들이 피곤한 의정은 안했는가? 또 공무원 앞에 갑(甲)질 의정이나 무리한 부탁은 없었는가? 나의 정치가 무술년의 상징인 개(犬)처럼 시민이라는 주인을 지켰는지 양심의 결산을 해보라.

고관대작(高官大爵)때 만난 주인이 수갑(手匣)을 차도 반기고. 재벌 때 만난주인이 야숙자(野宿者)가 돼도 지키고 따르는 충직한 개처럼 주인인 시민을 지켰나? 또 무전무직이라고 한 눈팔며 가정을 등한이 하는 인간들과는 달리 한주인만을 따르고 섬기는 개보다 나은 것이 있는가를 반성해보라.

물론 의원들이 개라는 의미는 아니다. 개의 충직을 비유하는 것이다. 이는 모든 정치인들에게 하는 말로 동류합오(同流合汚)라는 성어가 생각난다. 필자는 양기대 시장과 이병주의장과는 일면식도 없다. 그래서 호감(好感)이나 반감(反感)이 있을 수가 없다. 또 광명시민이 아니라서 행정과 의정에 무관하다. 다만 여러 사람들이 쏟아내는 소리를 듣고 느낀 객설이다. 그렇다보니 광명발전을 책임지는 두 지도자의 고명(高名)을 거론할 뿐이다.

그래서 필자는 34만 시민들의 곳간지기인 양기대 시장과 집행부에 대한 견제와 감시의 틀을 짜는 이병주의장께 양해를 구한다. 두 수장(首長)과는 비록일면식은 없지만 광명과는 지난70년대부터 연고를 맺고 있는 지역이다.

그래서 지금도 광명시에 거주하는 지인들과 친인척들이 많다. 그래서 그들을 만나기 위해 자주왕래하고 지리적으로도 가까운 곳에서 거주한다. 그렇다보니 양기대 시정과 이병주 의정에 대해 많은 소리를 듣는다. 그래서 객설을 하는 것이다. 결례라면 용서를 바란다. 광명시내 곳곳에 매달려 춤을 추는 현수막과 광명시가 발행하는 공문에는 빛(光)을 품은 광명(光名)이라는 홍보문구가 있다.

또 광명을 보면 대한민국이 보인다(?)라는 문구도 본 것 같다. 필자는 이런 문구를 보면서 의문이 있다. 언제쯤이면 광명시가 품고 있는 빛(光)이 어떤 조직처럼 발광(發狂)이 아닌 발광(發光)이 될까하는 기대를 한다. 또 언제쯤이면 34만 시민의 바람인 발광(發光)할까를 기대한다. 또 광명을 보면 대한민국이 과연 보일까?

이제는 광명시가 빛을 품었다면 발광(發光)해서 온 누리를 비추고 천부소지(千夫所指=모두가 손가락질 하는.)의정은 지양하고 발광(發光)해서발광(發狂)은 차단하라.

언제까지 빛을 품고만 있을 것인가? 병아리도 한 달이면 부화(孵化)되고 1주일을 울다가는 매미도 7년이면 햇빛을 본단다. 그런데 개청36년을 품은 광명의 빛은 언제쯤 발광(發光)할 가? 자못 궁금하다.(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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