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대영기자)  “지역 자활기관 일에 관여하면서 가난한 사람들은 물적 토대가 약해 변화할 수 없다는 사실을 새삼 깨달았습니다. 지역재단을 간단히 말하면 ‘돈을 모으는 것은 변화를 만드는 것(Making Money is Making Change)’, 꿈을 갖지 못한 사람에게 꿈을 주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올해 5월 행정안전부 인가를 받고 지난달 창립기념식을 가진 한국지역재단협의회 장건 협의회 이사장을 성남시립의료원 건립공사가 진행되고 있는 구 성남시청사 옆 성남이로운재단 사무실에서 만났다.

◇지역공동체 문제 해결 모금 전문기관
한국지역재단협의회는 풀뿌리희망재단(천안)을 비롯해 부천희망재단, 성남이로운재단, 안산희망재단, 남동이행복한지역재단, 강원살림, 충북시민재단, 광주희망재단, 희망나눔생명재단(순천) 등 9개 지역재단이 가입돼 있다.
성남이로운재단 이사장인 장건 협의회장은 지난 2012년 재단을 설립하고 5년간 경험하면서 지역재단의 전국적 확산 필요성을 느꼈다고 말한다. 사람과 자본이 중앙으로 몰리는 우리나라의 현실에서 지역 시민사회 비영리조직(NPO)이 건강한 성장을 하도록 하기 위해서는 보다 체계적이고 조직적인 대응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지역재단은 말 그대로 지역공동체 문제를 해결하고 지역사회의 지속가능한 변화와 발전을 이끄는 모금 전문기관이다. 모금을 통해 지역에서 활동하는 비영리조직을 지원하고 공동체 정신을 회복하면서 어려운 이웃에게 나눔을 실천하는 풀뿌리재단이다.
지역재단은 복지 외에 지역사회의 다양한 영역을 지원하며 개인에게 직접 배분하기보다 필요한 단체나 사업에 배분한다. 물고기를 주기보다 물고기 잡는 법을 가르치는 곳이라고 할 수 있다. 한국에서는 지난 2006년 천안풀뿌리희망재단이 설립된 이후 부천희망재단, 성남이로운재단, 안산희망재단, 인천남동이행복한재단 등이 지역재단으로 이름을 올렸고 지역의 공익활동 생태계를 보다 풍부하게 다져나가고 있다.
“지역재단은 지역에서 생산 소비하는 로컬푸드, 일본의 지산지소(地山地消) 운동에 다름 아닙니다. 지역에서 성장한 사람이나 지역에 소재한 기업이 가지고 있는 잉여가치를 지역 안에서 의미있게 소비하자는 사회적기금 플랫폼이라고 하겠습니다”

◇가난 대물림 고민하다 ‘지역재단’ 확신
장건 협의회장이 살고 있는 경기도 성남지역은 구 시청사가 위치한 원도심과 분당ㆍ판교 신시가지의 경제적 양극화 현상이 심각한 수준이다.
아이들 성장에 부모의 능력이 직결돼 있다는 문제의식을 가지고 있던 그가 처음 지역재단 설립을 생각한 것은 원도심과 신시가지 아이들이 경험하는 게 너무 다르다는 상황인식이었다. 어려운 환경의 아이들도 그렇지 않은 아이들과 함께 자랄 수 있는 물적 토대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일용직 건설노동자, 노점상, 비정규직 저임금 단순노동의 학부모들이 아이들을 제대로 교육시키기란 어렵고 결국 부모들 가난을 대물림하는 경우를 보면서 장건 협의회장은 기금을 만들어 그들을 지원해야겠다는 비전을 품게 됐다.
그 즈음, 현 서울시장인 박원순 희망제작소 상임이사를 만나 그의 저서 ‘지역재단이란 무엇인가?’를 권유받으면서 지역재단에 대한 확신을 갖게 됐다. 박 시장이 책자에서 제안한 지역재단 운동은 ‘지역공동체를 만들어가는 것은 지역에 살고 있는 주민이 핵심’이라는 사실이었다.
장건 협의회장은 박원순 상임이사에게 “한 번 만들어볼테니 아름다운재단의 경험을 나눠달라”며 도움을 요청했고 지역에서 뜻을 같이 하는 이들과 기업인, 개인 네트워크를 활용해 이듬해인 2012년 126명을 발기인으로 성남이로운재단을 창립했다.

◇지역재단 지원 사격 ‘마을공동체기본법’
장건 협의회장은 지역재단을 공부하면서 돈이라는 것이 사람을 변화시킬 수 있는 중요한 요인 가운데 하나라는 것을 절감했다. 더욱이 빈익빈부익부 불평등이 심화되는 상황에서 사실 세금으로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있는 그런 시대는 지나가고 있다는 생각이다.
아울러 정부에서 지난해부터 논의에 들어갔고 자유한국당 유민봉 의원과 더민주당 진선미 의원이 발의한 지역재단 활성화 ‘마을공동체기본법’은 국민들이 가진 재원을 세금 이외의 지역공동체 소통 대안으로 고려하고 있다는 반증 아니겠냐고 설명한다.
도시화ㆍ산업화에 따른 지역공동체의 약화 및 국가 주도의 지역문제 정책 추진에 대한 인식변화와 맞물려 지역민들의 주도적이고 자발적인 지역문제 해결 의지가 주목받고 있다는 것이다.
정부는 현재 최소 기초단체로 구 단위의 주민들이 가진 자본이나 인적ㆍ물적 토대를 모아 필요한 곳에 배분하는 계획을 추진 중에 있다.
기초단체 중심이면 220개 정도 지역재단이 설립될 수 있는데, 개인과 법인이 납부하는 주민세 등의 재원을 주민들이 쓸 수 있도록 한다면 지역재단의 지역공동체 혁신이 이뤄지지 않겠냐는 입장이다.

◇노동운동ㆍ협동조합이 지역재단의 기초
장건 협의회장은 젊은 시절 한국외국어대 교직원으로 외대 최초의 노동조합을 결성했고 노조지부장을 수행하면서 전국대학노조위원장에 당선돼 노동자의 권익을 노동운동의 전면에서 대변했다.
성남시 시민운동 1세대인 그는 1981년 성남으로 이주해 주민생협을 만들었고 두레생협연합회 회장을 거쳐 2005년 생협전국연합회 회장에 당선됐다. 50대 초입이었던 당시 25년간 재직했던 외국어대를 조기 은퇴했고 4년간 생협운동을 전개하다 1년간 요양을 하게 된다. 2007년 소비자생활협동조합 소비자 대표로 FTA에 반대하는 농민단체와 1주일 이상 지지 단식농성을 벌이다 얻은 결과였다. 생협전국연합회 회장 임기를 마치고 요양에 들어간 것이 그나마의 위안이었다.
노동운동을 할 때는 노동자의 문제가 뭔지 고민했고 협동조합 활동을 하면서는 필요한 부분을 협동의 방식으로 해결하는 방법을 배워 지역 조직화의 실타래를 풀어나갈 수 있었다는 장건 협의회장. 조직의 방식을 많이 체득했기에 매 순간마다 필요한 일을 발견, 그것을 같이할 사람을 모으는 달란트가 있었다고 말한다.

◇진보적 프로테스탄트 소속 주민교회 출석
한국의 진보적 프로테스탄트 한국기독교장로회 소속 주민교회를 섬기고 있는 장건 협의회장은 어떤 문제들 들여다볼 때 예수라면 어떻게 할 것인가를 늘 고민한다.
이어 그 일을 풀어가는 데는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빌2:5)’라는 성경구절처럼 예수의 마음을 가지려 부단히 스스로에게 물으며 자신의 내면 속으로 들어간다고 고백한다.
“인도에는 소유라는 단어가 없답니다. 물질은 곁에 있는 것이지, 누가 가질 수 있는 게 아니랍니다. 돈이 없으면 돈 있는 사람을 곁에 두고 노래를 못해도 음악 잘 하는 사람을 옆에 두면 된다는 것입니다. 지역재단은 소유의 리트머스 시험지입니다. 지역공동체에서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나’ 자신을 벗어난 배려와 나눔이 지상의 천국을 꿈꾸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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