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랑 국장

 옛날 증삼(曾參)의 아내가 시장에 갔을 때, 따라 온 딸이 울음을 터뜨려 시장을 온통 시끄럽게 했다. 증삼의 아내가 다급한 나머지 딸에게 이렇게 말했다.

“먼저 집에 가 있으면 엄마가 돼지를 잡아줄게.”

아내가 시장에서 돌아오니 증삼이 돼지를 잡을 채비를 하고 있었다. 아내가 깜짝 놀라 말했다.

“애한테 농담으로 한 말인데 진짜 돼지를 잡으려고요?”

증삼이 말하였다.

“아이한테 되는 대로 농담을 해서는 안 되오. 아이들은 아는 게 없으니 부모님의 가르침을 받아야 하오. 그러니 당신이 아이에게 거짓말을 하면 아이가 그 거짓말을 배울 게 아니겠소, 또한 당신이 아이를 속이면 아이는 더 이상 당신을 믿지 않을 걸요.”

사람은 반드시 신의로 사람을 대해야 한다. 부모가 아이에게 신의를 지켜야 하듯이 통치자도 반드시 신하에게 신의를 지켜야 한다.

진나라 문공(文公)이 군대를 일으켜 열흘 분량의 식량을 갖고 원(原)지방을 공격했다. 그는 백성들에게 열흘 만에 전투를 끝낼 거라고 약정했다. 그런데 열흘이 지나 원 지방의 함락을 코앞에 둔 상태에서 그는 병사들에게 퇴각 명령을 내렸다. 영토를 얻지 못할지언정 백성들에게 신의를 잃지 않기 위해서였다.

초나라 여왕(厲王)이 비상상태를 알리는 북을 만들었다. 그런데 한 번은 술에 취하여 신하들과 함께 그 북을 치고 놀았다. 그러자 북소리를 들은 백성들은 외적이 침입한 줄 알고 벌떼처럼 몰려들었다. 그들은 여왕이 진상을 규명하자 그만 맥이 풀려 버렸다. 나중에 여왕이 정말로 북을 쳤을 때, 또 작란인 줄 알고 아무도 나라를 지키려고 달려 나오지 않았다.

이것들은 모두 사소한 일인 것 같지만 사실 그렇지 않다. 통치자가 말을 하면 반드시 행동으로 옮기고, 행동을 하면 반드시 끝을 본다는 걸 백성들이 안다면, 그들은 기꺼이 통치자를 따를 것이다.

사람은 마땅히 신의로 사람을 대해야 한다. 신의가 없으면 사람이 바로 서지 못한다. 옛날의 군주는 신하와 백성들을 신의로 대하였다. 지금도 위정자가 부하를 대할 때나 상급자가 하급자를 대할 때 역시 신의로 대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부하와 하급자가 위정자와 상급자를 믿지 못하여 모든 일을 적당히 대충대충 때울 것이다. 그러면 사업도 진척되지 않고 회사나 기업도 발전할 수 없다.

통치자는 언제 어디서나 자신의 위치를 충실하게 인식하고 있어야 한다. 통치자가 분명하게 말하든 말하지 안 하든, 그의 행위는 신하와 백성들의 모범이 되며 마치 깃발처럼 사람들을 이끌고 나아간다.

제나라 환공은 자색 옷을 즐겨 입었다고 한다. 그래서 온 나라 사람들이 그를 따라 자색 옷을 입었다. 당시에는 다섯 필의 흰 비단을 가지고도 자색 비단 한 필과 바꿀 수 없었다고 한다. 환공이 관중(管仲)에게 말했다.

“내가 자색 옷을 즐겨 입어 그 값이 엄청나게 뛰었다더군. 백성들이 전부 내 옷을 따라 입으니 어떻게 하면 좋겠는가?”

관중이 대답했다.

“주군께서 그것을 막고자 하신다면 우선 자색 옷을 입지 마십시오. 그리고 주변 사람들에게 자색 옷이 싫다고 말씀하십시오.”

때마침 어떤 사람이 자색 옷을 입고 환공을 찾아왔다. 환공이 짐짓 엄숙하게 꾸짖으며 말했다.

“뒤로 물러 서거라. 나는 자색 옷이 싫도다.”

그날 이후로 조정에서는 자색 옷을 입는 사람이 한 명도 없었다. 이 소문은 나라 안으로 급속히 퍼져서 백성들도 자색 옷을 입지 않게 되었다. 아랫사람이 윗사람의 행동을 본받는 것은 그만큼 신뢰하기 때문이다. 통치자가 몸소 행하지 않는 일은 백성들이 신뢰하지 않는다. 달리 말해 백성들은 통치자의 실제 행동을 신뢰한다. 듣기 좋은 소리만으로는 백성들의 신뢰를 얻을 수 없는 것이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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